Cantata [348885] · MS 2010 (수정됨) · 쪽지

2017-11-26 20: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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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성적이 진짜 실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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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들었던 생각을 좀 정리해볼까 합니다.


수능이 끝나면 어김없이 평소보다 대폭 떨어진 학생들이 많이 보여 안타깝습니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든지, 실수를 유난히 많이 했다든지, 그냥 문제가 잘 안풀렸다든지 등등


각자 사연도 다양합니다.


그에 대해 '실수를 했건 긴장을 했건 수능 점수가 진짜 실력이다.'라고 결과를 겸허히 인정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 모습을 최근 몇 년이 아니라


제가 현역으로 수능을 보던 시절, 심지어 수험생이 되기 전 선배들이 수능을 보던 모습까지 


거진 10년 가량을 지켜보고 있고, 그 때나 지금이나 수능 성적이 아쉬운 이들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능 점수가 진짜 실력일까?'라는 의문을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능 성적이 진짜 실력일까?


그에 앞서 진짜 실력이란 무엇일까?


또 그 실력을 어떻게 측정해야할까?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의 진짜 실력은 고작 시험 하나로 측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 실력을 '상위 X%'와 같이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낸다면,


시험 성적은 여러분의 실력에 대한 하나의 표본이기 때문입니다.


통계를 공부하면서 배웠던 것을 떠올려봅시다.


어떤 집단에서 모평균을 구하려 합니다.


그런데 여건상 그 모평균을 도저히 구할 방법이 없다면


표본을 추출하여 표본평균을 구하고 


그 표본평균의 평균 및 표준편차를 이용하여 모평균이 속하는 범위를 추정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말하는 '진짜 실력'이라는 것은 앞서 든 예시에서 모평균과 같습니다.


진짜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자기 자신만 어렴풋이 알고 있고,


그마저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먼 훗날 뇌를 열어보면 측정할 수 있으려나요?


이 때, 측정할 수 없는 '진짜 실력'이라는 수치가 발현된 것이 시험 점수입니다.


여기서의 시험 점수는 앞서 든 예시에서 표본평균과 같습니다.


'진짜 실력'이라는 모집단에서 임의로 추출한 하나의 값일 뿐이죠.


따라서 '수능실력이 진짜 실력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표본을 모평균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개의 표본평균으로부터 구한 표본평균을 모평균이라고 주장해도 틀린 말인데 말이죠. 


마치


'오르비에 70만번째로 가입한 사람의 수학 성적이 전국 평균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진짜 실력'이라는 것을 시험성적을 통해 추정하는 것이라면,


그 값은 필연적으로 일정한 값이 아니라 어떠한 범위를 가질 것입니다.


표본평균의 분포로부터 구한 모평균이 일정한 값이 아니라 일정한 신뢰도에서 범위를 가졌던 것처럼요.


예컨대 '나의 수학실력은 가형 수험생들 중 상위 10%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수학실력은 신뢰도 90% 수준에서 가형 수험생들 중 상위 23%~4%이다.'


와 같이 나타내는게 옳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수능을 만약 100번을 볼 수 있다고 하면


그 중 90번 정도는 상위 4%에서 상위 23%사이의 성적이 나올 것이고,


나머지 10번 중 운이 좋은 5번은 1등급이 나올 것이며


나머지 5번은 4등급 이하의 성적이 나올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뽑기를 잘하면 1등급이고 그러지 못하면 4등급인 셈이죠.



이런식으로 '실력이라는 것은 일정한 수치가 아니라 어떠한 범위를 갖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단 한번의 수능 점수로 대학이 결정되는 구조는 잔인하다고 할 수 있죠.


표본도 개수가 많아야 그 표본평균의 표준편차가 작아지고 그 결과 추정하는 모평균의 범위도 작아져서


모평균을 보다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것인데,


단 하나의 표본으로 모평균을 대표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니까요.


물론 현실적으로 수능을 여러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받아들여야하는 면도 있겠지요.


그건 여건상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누군가


'그런건 다 핑계고 이번 수능 성적이 당신의 진짜 실력입니다.'


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말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무례한 말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진짜 실력은 자신이 더욱 잘 알아요.


과목마다 '내 실력보다 잘 나온 것 같다.' 혹은 '내 실력에 비해 못봤다.'와 같은 느낌이 있으니까요.


단지 그 진짜 실력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측정해서 보여줄 수 없을 뿐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수능날 운도 아주 중요합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수학실력이 신뢰도 90% 수준에서 상위 23%~4%인 학생 A가 있고,


신뢰도 90% 수준에서 상위 50%~23%인 또 다른 학생 B가 있다고 해봅시다.


진짜 실력은 명백히 A가 앞섭니다.


하지만 수능 날 100번 중에 5번 꼴로 발동되는 크리티컬이 터져서 B가 상위 23%안에 들고,


A는 100번 중 5번 꼴로 발동되는 역 크리티컬을 먹고 상위 23%안에 못들면


B가 A를 이기게 됩니다.


이 경우 '수능 성적이 진짜 실력이다.'라고 한다면 A가 아주 억울하겠죠.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운에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인 실력을 만들어라.'


하지만 최상위권이라고 해서 실력이 가령 '상위 0.1%'와 같이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운의 영향을 받습니다.


예컨대 '신뢰도 90% 수준에서 상위 0.3%~0.05%'와 같이 말이죠.


그 폭은 적어질지라도 실력이라는 것은 어느 성적대에서던 범위로 나타내집니다.


따라서 '운에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인 실력을 만들어라.'라는 말은


정확히 얘기해서


'운에 좌우되더라도 아쉽지 않을 절대적인 실력을 만들어라.'


라고 번역해서 듣는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만약 A의 실력이 '신뢰도 90% 수준에서 상위 0.3%~0.05%'였다면


실력이 '신뢰도 90% 수준에서 상위 50%~23%'인 B에게 질 확률은 극히 희박할 것입니다.


이것이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운에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인 실력'이죠.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짜 실력'이라는 것이 갖는 수치는 반드시 범위로서 나타내어지고, 


쉽게 측정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함부로 단정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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