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 의외로 다들 몰랐던 6.25 전쟁 여러 에피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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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사람인 닐 암스트롱이 6.25 전쟁 참전용사인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미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는군요.
2. 북한의 남침 1시간전,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1950 브라질 월드컵의 첫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인류 최대의 축제와 인류 최악의 비극이 겹친 날이었죠.
3. 한국전쟁의 전세가 또다시 공산측으로 역전된 계기를 '인해전술'로 대표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배웠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참전병력 숫자는 UN측과 공산측이 비등비등합니다. 오히려 자료에 따라선 UN측 병력이 더 많게 산출되기도 합니다.
4. 6.25 전쟁은 인류 전체 역사로 따져도 매우 큰 전쟁이었습니다. 양측 군인, 민간인을 합쳐 약 4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어마어마한 참전국 숫자와 그와 함께 엄청난 양의 화력이 퍼부어진 전쟁이었습니다. 평양 한 도시에 퍼부어진 폭탄량이 태평양전쟁에서 사용된 전체 폭탄량보다 더 많았습니다. (태평양전쟁 : 핵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그 전쟁입니다.)
5. 인도는 UN측 의료지원국으로 참전했지만, 그와 동시에 공산측 지원국으로도 참전했습니다.
6. 이건 많이들 아실듯 한데, 대한민국은 휴전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완전 미국에 복속당해버린 한국..!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이승만이 죽어도 저 문서에는 서명 안하겠다고 한 결과였다군요.
7. 중공군 개입이후 만약 계속 전선이 밀려버려서 적화통일이 이루어졌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서사모아 제도에 옮겨질 예정이었습니다. ㄱ-..
8. 흔히들 북한군은 독립군 출신이 주를 이루었고, 한국군은 일본군 출신이 주를 이루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실상은 북한군 역시 일본군 출신이 중심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군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모두 일본군 출신이었습니다.
9. 세계 최초로 제트기간의 공중전이 벌어진 전쟁입니다.
10. 이것 역시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휴전협정 성사직후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각 부대에 전보를 쳤던 사람이 바로 전국노래자랑의 mc이신 송해 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 당시 상급부대의 통신병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때문에 이런 역사적 순간의 주인공이 되었다는군요. 전국노래자랑 mc 이전에 이미 전쟁을 멈추신 mc였습니다.
나름 머릿 속에 떠오르는대로 글을 써봤는데.. 입시생 사이트에서 이런 글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싶겠지만
한번쯤 알고가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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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저승에가라..
정치적 발언은 안돼요 ㅠ
여러분 저승은 안전합니다.
저승 요즘 좋다던데요?
다 이승가서 한적하고 땅값도싸데요
여러분!!! 저승은.. 안전합니다..! 드드듣드ㅡ드ㅡ드드드드ㅡㄷㄱ
저승만
헐 8번 ㄷㄷ
정치 상위층이야 독립운동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겠지만, 군대는 사정이 달랐죠. 독립 직후 군인력이 모자랐던 것은 북한도 똑같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념경쟁이 시작되었으니 당연히 일본군 출신들이 중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긴 그렇긴하겠네요,, 오랜만에 배워갑니당.
밍
3번 중공군 UN군 병력은 비슷하지만 UN국가중에서 지원국으로 참가한 국가가 많아서 실제 전투병력은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요?
3번은 일부러 궁금증을 자아내기 위해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님의 말씀이 정확합니다. UN군 병력은 지원병력이 많았고, 중공군이 극단적으로 특정 지역에 병력을 집중하는 전술을 사용했기에 실제 전장에서는 중공군의 병력이 더 많게 보여졌습니다.
다만 그만큼 중공군의 전투 지속 능력은 공세 초기를 제외하면 매우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 잡학상식 추가 : 한국을 지원한 국가 중에는 쿠바(식량, 자금)도 있었습니다. 이후에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면서 쿠바가 공산화되었다는 것을 볼 때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오호 처음 알았네요.
7번 뭔가 되게 무섭네요
'예정'까진 아니고 여러 제안 사항 중 하나였을 거예요.
미국도 최악에 상황을 대비해야 했겠죠 ㅜㅜ
와...가져오신정보인줄알았는데...
잘 읽고가요!
5는뭐지
국가 단위의 지원이 이루어지려면 확실히 자국의 국익이 있어야만 하는데.. 6.25 전쟁 자체가 확실한 이념 전쟁이었음을 생각하면, 양측 모두를 지원한 사실이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3번은 국군과 연합군이 주둔해있는 병력하고 비교도 못할정도로 많아서 밀린건데...총 병력수는 왜비교... 애초에 그때 상황도 많이 좋지않았고 맥아더가 거의 억지로 진격중이여서...
일부러 궁금증을 자아내기 위해 부연설명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총 병력수는 비슷했지만 UN군 병력은 지원병력이 많았고, 중공군이 극단적으로 특정 지역에 병력을 집중하는 전술을 사용했기에 실제 전장에서는 중공군의 병력이 더 많게 보여졌습니다. 다만 그만큼 중공군의 전투 지속 능력은 공세 초기를 제외하면 매우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눈누루님의 말씀대로, 맥아더가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오직 진격에만 몰두한 탓에 전선 사이사이 구멍이 상당히 컸습니다. 1950년 말 중공군 개입 당시에만 하더라도, 한반도에 주둔해있던 국군, un군 병력은 30만명이 넘었지만 이러한 전술적 실책으로 사이사이의 구멍을 통해 전방부대들이 순식간에 포위를 당했고, 10만명의 중공군에게 밀려버렸죠.
1.4 후퇴로 un군이 전열을 다듬은 후부턴 중공군은 더이상 이전처럼의 기적적인 진격을 보여주지 못했고, 공세때마다 감당못할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3번 - 중공군의 기본 전술은 포위 및 섬멸이었죠. 동원된 전체 병력수는 비슷했을지라도 전투지역에서는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죠. 다만 지원병력이 적고 보급이 허술해서 전투지속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매우 정확하게 알고계시네요.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미국이 살려냈다 해도 과언이 아님
중공의 인해전술로 밀린 것이 맞습니다. 연합군 참전 병력은 누적으로 산출한 것인데 중공군은 1달 동안 누적 연합군 병력만큼을 투입한 것입니다. 오지게 많이 간거죠.
1달동안 누적 연합군 병력만큼을 투입했다기엔, 중공군도 전선이 고착화될때면 전부대 단위의 병력 교체를 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4후퇴 이후 진격을 2개월씩이나 멈추고, 피로가 누적된 주력 부대를 모두 본토로 빼낸 후 그 자리를 신규 부대로 채워넣은 사례가 있죠.
매우 많은 중공군이 참전한 것은 확실하지만, 고작 1달이라는 시간동안 누적 연합군 병력만큼 투입했다는 자료는 아직 못보았기에 이렇게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당시 실제 전선에 있었던 연합군보다 중공군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한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중공군이 전선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했다는 것은, 사실관계를 파악해보면 항상 옳은 명제는 아닙니다.
그저 중공군의 극단적인 병력집중 전략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 뿐이예요.
공세지점을 제외한 지역에선, 중공군은 압도적으로 수적 우위를 점한 적이 없습니다. 결코 그럴만한 여력도 되지 않았고요.
한 예로 1.4후퇴 당시 서울 방면을 공격할 때, 강원도 전선에서의 공산군과 un군의 병력 비율 차이는 오히려 un군이 더 많을 때도 있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포위를 하고, 자연스레 타전선의 un군의 후퇴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중공군의 전략이었습니다.
1951년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전선이 고착화되어버린 상황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수행하는 것을 훨씬 더 용이하게 해주었죠.
또한 1951년 휴전회담이 시작된 후, 전쟁은 정말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띄기 시작했고, 휴전회담에 영향을 줄만큼 큰 전투들이 당연히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전투에선 공상군은 어김없이 무리할 정도로 가용할 전력을 모두 짜내어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공격을 했었고요.
지금 많은 사료들이 중공군이 압도적인 병력우위를 통하여 공격을 해왔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들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래저래 너무나도 딱딱하게 역사적 토론을 하듯이 댓글을 작성했는데, 일반적 통념 이상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댓글을 달게되었네요.
이승만은 솔직히 깔 것도 많지만 빨 것도 있다고 봄
+ 흥남철수작전시 수송선에 군인과 민간인은 물론 소와 송아지까지 태우고도 무사히 철수에 성공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