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팍 소설보고가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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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9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일-
방안에는 퍼거슨과 박지성 둘만 남아있었다. 박지성은 의자에 앉은채로, 퍼거슨은 반대 방향으로 벽을 향해 있었다.
퍼거슨은 평소에는 잘 피지 않던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며 불을 붙였다.
작년과 비교해도 현저히 늘어난 주름살이 눈에 띄였다.
박지성은 그런 퍼거슨을 보며 내심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지(Ji). 자네가 올해 열심히 한 사실을 잘 알고 있네. 아니, 자네는 늘 열심히 였지."
"...................."
지성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퍼거슨은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인 후 말을 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자네는 내 전략에 들어가 있지 않다네."
퍼거슨의 그 말이 잔인한 비수가 되어 박지성의 심장을 찔러왔다. 붉은 유니폼, 그 가슴에 선명하게 나 있는 맨체스터의 엠블럼이 작게 요동쳤다.
"그.....그럴수가...."
지성은 사실 몇주전부터 불안했었다. 혹시나, 지난 챔스리그 결승전처럼, 결장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지금 현실이 되었다.
퍼거슨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 그리고 나아가 분노감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성의 손이 작게 주먹을 쥔채 떨렸다.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는 모두가 인정하듯 '맨유맨'이야. 개인보다 팀이 먼저가 아니겠나. 나를 용서하게나."
맨체스터와의 재계약마저 불명확한 이 시점에서 마지막 챔피언스리그가 될지 모를 오늘이기에, 지성의 실망감은 너무나도 컸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축구선수라면 누가나가 서보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 지성은 결코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해 미칠지경이다.
세상은 지성에게 늘 불합리했다. 작고 못생긴 아이에게는 실력이 있더라도 프로는 커녕 대학의 문은 턱없이 높았다.
한국에서 축구를 계속할 수조차 없었던 자신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일본의 2부 리그 팀으로 가야만 했다.
대학을 갈 수 없었던 아이가 테니스부 정원으로 들어가 대학교에갔고,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던 3류 대학축구 선수가 운이 좋아 올림픽대표로 선발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주변의 비난과 모욕은 계속되었다.
'만약 내가 안정환만큼 잘생겼다면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아인트호벤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영표와 비교하더라도 자신을 조롱하고 욕하는 이들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피해의식일지도 모르지만, 볼품없는 자신의 외모때문에 스스로의 실력보다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 일념으로 수 많은 모욕에도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뼈를 깍는 고통을 감수하며 노력했다.
'서서히 인정받는 타입...'
히딩크 감독은 자신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지성도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남들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며 자신을 다스렸다. 그렇게 지성은 아인트호벤에서 성공할 수 있었고, 지금의 멘체스터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팀에 입단한 지성은 이제야 주위에서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주위 반응은 싸늘했다. 현지에서는 동양에서 온 티셔츠 판매원이라며 조롱했고, 심지어 고국에서도 그를 '벤치성'이라며 곧 방출 될 것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대 아시아 마케팅용 선수.
끊임없이 지난 수년동안 지성을 괴롭혔던 말이었다.
그리고 지난 첼시와의 쳄피언스리그 결승전 제외는 잔인한 현실이었다. 혹, 유럽 축구인들의 축제에서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냉대 받는 것은 아닌가하고 서러움에 며칠을 눈물로
지샜다.
'기필코 인정하게 만들겠어. 유럽인들도 그리고 날 비난하는 고국의 안티팬들도.'
그러한 각오로 지성은 지금까지 달려왔다.그런데도 퍼거슨은 지금 다시 한번 잔혹한 말을 지성에게 내뱉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지성의 눈에서 서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잠시의 침묵. 퍼거슨은 더이상의 고요가 부담스러웠는지,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박지성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퍼거슨의 소매를 움켜 잡았다.
"감독님."
"지(JI)...."
"감독님은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습니까?"
아직도 지성은 입술을 꽉 물며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참고 또 참으며 말을 이었다.
"..............."
"국가대표 시절이었습니까?"
퍼거슨은 고개를 돌려 지성을 쳐다보았다. 일그러진 얼굴. 작은 동양인의 눈에서는 어느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성은 애써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전.....전 지금입니다."
순간, 퍼거슨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감독인 자신이 선수에게 감정적으로 동화될 수는 없었다. 그는 최대한 평소의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번 결승에서 바로셀로나를 이기기 위해서는 공격력이 우수해야 해. 지금은 좀 더 적극적인 선수가 필요한 시점이야. 자네는 팀을 위한 배려는 놀라울 정도지만, 그 때문에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안돼. 내 말 무슨말인지 알겠나?"
" 그렇지 않습니다! 오...오늘은 제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반드시 골을 넣어보이겠습니다!"
퍼거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성은 방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쳤다. 박지성의 눈에는 결연한 각오와 의지가 나타나 있었다.
백발의 퍼거슨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기회를 주지. 스스로를 증명해봐. 하지만 명심하게나. 자네의 플레이가 소극적이거나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전반 5분이라도 과감히 교체할 걸세."
지성은 그의 말에 두 주먹을 불끈쥐었다. 마치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 같은 사람의 표정으로...
"고맙습니다! 감독님! 고맙습니다!!"
"자네도 이제 다른 선수들과 합류하게나."
"네! 알겠습니다!"
지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른 동료들이 있는 대기실로 뛰어갔다. 퍼거슨은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긱스가 퍼거슨에게 다가왔다.
"감독님. 지(Ji)는 이미 선발 예정이었지 않았나요?"
긱스의 말에 퍼거슨은 빙그레 웃음지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그 모습이 훈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잘보게나. 친구. 오늘 우리는 유럽 축구역사상 최강이라는 바로셀로나를 격파할 거야.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한 동양인 선수가 영웅으로 등극하겠지."
긱스는 그제야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지성이 간 자리를 바라본다. 지성이 충분한 골결정력과 슈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랜동안 함께한 긱스로서 잘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성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팀 동료에게 양보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점이 지성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생각해 왔다. 퍼거슨은 바로 이러한 점을 간파한 것이다. 실로 교활한 여우였다.
".......비밀병기라는 말씀이시군요. 이거 지(ji)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바르셀로나 녀석들 고생 좀 하겠는데요. 하하하!"
퍼거슨은 주머니에 있던 껌을 꺼내 입에 넣었다.
"자. 이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가지러 갈 시간이군. 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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