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해피엔딩 - 3. 박한이는 정신병자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132324
새벽 6시,
2009년과 2010년을 통틀어
단 한번도 일어난 적 없던 시간에 일어났다.
그날 아침은 몹시 추워서
아침을 대충 먹고 나온 내 귓가에 내 입김이 돌았다.
아빠와 함께 조대부고로 가는 택시 안
그 곳은 고사장 이상의 정적이 맴돌았다
대략 30분이 걸려 도착한 고사장
5분을 걸어걸어 도착한 고사장 문앞에서
나는 운신의 폭을 다하고 오겠노라 말했다.
웃으면서.
3. 박한이는 정신병자
* 위의 말은 김응용 사장이 박한이가 본헤드 플레이를 하고 온 날 언론 인터뷰에서 직격탄을 날린 말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야구 명언으로 떠도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절대 박한이의 안티팬이 아니며, 저는 일전에 디시인사이드 LG트윈스 갤러리에 '박한이를 영입해야 한다' 라는 장문의 글을 남긴 적이 있음을 밝힙니다.
추락이라는 단어는 상승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에 생길 수 있는 개념이고,
나에겐 상승이 먼저 존재했기에 남는 것은 추락 뿐이였다.
그 뿐이였다. 몇 번 본 모의고사가 전부 망해버린 지점 수능 D-5 지점.
어딜 가서든 울고 싶지만 참으며 이규환 선생님이 알려주신 D-5,4,3,2,1 을 지푸라기 잡는듯 실천했다.
한 번 더 풀어본 모의고사라 점수는 490점대에 육박했다. 하지만 마음의 위안은 조금조차 되지 않았다. 문제를 읽기도 전에 답이 나와버렸다. 오히려 이렇게 적응된 시험지들을 가지고 500을 맞지 못하는 나를 끊임없이 자책했다.
긴장이 되지 않았다.
간담이 미칠듯히 서늘해 덜덜 떤다면 오히려 내가 걱정한다는 반증이라도 나오는거지.
나는 그런 것 조차 없었다. 심연 한가운데에 아직도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던 것이다.
수능 이틀 전, 나는 집에서 슬러거를 했다. 다섯 판 정도를 하고 나서 게임을 끄려는 찰나에 -
나는 그제서야 ‘등골이 시렵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너가 이러고도 인간인가. 무엇에 의지하기에 이리도 당당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사실’ 의 선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2010수능을 망칠 것이 자명한 인간이였다.
평가원은 망했지, 사설도 망했지, 그런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그 순간 나는 엄청난 비현실주의자였다. 마음에 모르핀을 꽂은 것처럼 행동했다.
다 잘될거야, 썩어도 준치라고- 설마 그래도 기본은 치겠지
그렇게 푸념했다. 손으로는 5일간 끊임없이 평가원을 풀었지만 머리에는 이러한 생각만 맴돌았다.
그렇게 허무한 시간은 흘렀다. 수능 전 날이 온것이다.
친척분들이 집에 들렸다 가시고, 몇몇 군데에서 전화가 왔다. 일일이 다 받았다.
어짜피 그 순간에 공부해봐야 오를건 별로 없을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순간까지 긴장하지 않았다. 편했다. 다 잘될 거라는 믿음뿐.
밤 10시, 우리집은 평소에는 상상할수 없던 이 시간에 소등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열여덟인생 평생 어느 순간에 그토록 정신이 말똥했을까.
어두운 천장이 스크린이 되었다.
어릴적 내가 가진 나의 첫 번째 기억부터 차례대로 상영되었다.
겨우 수능 전날에 무슨 호들갑을 떠는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기억의 흐름 중간에 잠을 잤다. 마지막으로 그날 생각해 보았던 기억은
중3 그날이였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날.
날이 밝았다.
내가 보기로 한 고사장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밥은 가볍게 먹었다. 맵게 풀어낸 된장국에 밥. 아침을 대충 먹고 도시락 챙기고, 옷 입고 가방 메고, 신발 신고 집 밖으로 나왔다.
아빠랑 함께 걸어갔다.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해서 그런지, 10분동안 별 얘기는 하지 않았다.
후배들과 선생님들이 나와 있었다. 적당히 인사하고, 후배들이 준 초콜렛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그때 쓴 글이 더욱더 진솔할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수능날이 됬다.
우리 학교에서 이과생은 모두 한 학교에서 시험을 봤기 때문에,
난 30명 정도 되는 교실에서 20명은 내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편했다.
1교시 언어
너무 쉬웠다. 내가 개인적으로 즐겨쓰는 '왼손으로 풀어도 100점!' 드립이 나올 정도였다. 현역때 부터 98점 위로는 맞아 본 적이 없었는데, 무슨 근자감인지 100점이라고 확신하고 기분좋게 넘겼다.
2교시 수리
...악몽. 하나도 안풀렸다. 이 정신병자 자식. 10분이 남고 8문제가 남았는데 천하 태평으로 시험 끝나고 나가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결국 2분 남기고 6문제를 찍어 버렸다.
풀면서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옆자리 친구에게 난이도를 물어보았다
( 그 친구는 성대 반도체에 들어간 친구로, 역시 공부를 잘 하던 친구였다)
난 그 친구가 왼손드립을 칠 줄은 몰랐다.( 걔는 96점을 맞았다.)
불안해졌다. 수리 까지 나를 지배하던 근거없던 자신감이 사라졌다.
3교시부터는 제대로 하지 않다가는, 생각도 하기 싫던 재수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 그 뒤로는 별 기억이 없다. 정말로, 정말로 치열하게 문제를 풀었다. 풀면 풀수록 좀 전의 내가 한심해졌다.
생2를 다 풀고 3분 후쯤엔가 종이 울렸다.
난 그 순간 무슨 자신감인지 ‘나의 입시는 끝이다’ 라는 생각을 품었다.
정신병자였다.
이제 남은건, 메가스터디 성적입력
손으로 가채점표를 응시하며 숫자를 눌렀다
언어오십수리삼십외국어오십과탐이백글자 도합삼백삼십글자.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에서 이런새끼를 맡은 오이카와입니다 안녕하세요
-
넵
-
얼버기 4
-
이거 꿈꾼거임? 10
혹시 모르니 이따 글삭함 거실에서 잤는데 아빠가 라면 끓이는 소리 들리길래 아빠아빠...
-
(서울대 합격 / 합격자인증)(스누라이프) 서울대 25학번을 찾습니다. 0
안녕하세요. 서울대 커뮤니티 SNULife 오픈챗 준비팀입니다. 서울대 25학번...
-
대학에 처음등록해봐서 모르는게 많습니다. 혹시 희망한다면, 3~4학년 전공수업을 들어도 될까요?
-
부산대 인식이 8
부산에서랑 타지에서랑 많이다름?
-
교제 0
N수생 중에 용돈 못 받는 사람들은 교제 어케 해결해요? 텔그 ㅇㅂ만 사용해서...
-
다들 ㅈㄴ꾸미려나
-
전 영어 4등급인데 1등급한테 조언해준 적 있음 ㅇㅇ
-
교재신청 들어가서 결제 누르면 그대로이지 왜....
-
경찰행정 vs 시스탬반도체 문과임.. 반도체가서 학점 잘 딸수 있을까요..?
-
오늘 문득 느낀 건데 아부지 어무니 다들 훈훈하게 생기셨는데 왜 나는 이런 외모인...
-
다른 질문은 없고 13
특정하려고만하네
-
모두 좋은하루되세요 어제보다 더 나을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
얼리버드 1
-
예전에는 독서 문학 나눠져 있었어서 그 때 권장시간이랑 다를거 같은데 그래도...
-
가사가 상당히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며 퇴폐적이네 蒼天井に歪んだ光を見たのだ。푸른 천정에...
-
러셀 ㄱㄱ 1
기서 만나도록
-
언매임 100점~2등급 왔다갔다 해서 고정 높1로 만들고 싶은데 어느 강사가...
-
빨간 날치알이랑 김가루까지 뿌려서
-
심심풀이로 레서 어플 사용하고 있습니다 좀 쉬운 게 흠이긴 하지만 꾸준히 글 읽고...
-
후 2
구수구ㅜ수
-
ㅇㅂㄱ 5
오늘은 공부를 좀 빨리 시작해보겠습니다
-
오늘은 맞춰야함 ..
-
밤낮바꾸니까 5
정신건강도 좋아지고 공부도 더 잘됨 몸이 개운함
-
당장 다음주부터 브릿지 시즌 시작임?? 궁금ㅇㅇ 브릿지 듣는다면 누구추천함? 겨울엔...
-
아직도 지구가 멸망을 안했네...
-
너프좀...진짜
-
어차피 보조배터리 잃어버려서 선택지 없네 편의점에서 1회용 사지 뭐..
-
2025학년도 사관학교 영어 1차 시험 기출문제 12번 한줄해석 1
2025학년도 사관학교 영어 1차 시험 기출문제 12번 해설 ( 선명하게 출력해서...
-
전시우 방송 보다보니까 6시임 이게 말이 안된다니까?? 도사님 방송 - 시우 방송...
-
아직까진 심장이 윈터쪽으로 뛰긴해요
-
금손존나부럽다 4
나도최소10년은했는데 9등급손임ㅅㅂ
-
저 왔음요! 3
하이
-
모닝 2
5시 30분에 기상함 7시 부터 공부시작
-
3월 초중반쯤부터 다닐 것 같은데 내신 대비로 다닐것같아요. 어디가 괜찮은가요?...
-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득템못했지만 오히려도파민러쉬
-
못생긴거 ㅇㅈ 1
-
낼은 신라면 투우움바도 먹어보고 수학을 많이해야징
-
집에 6
가자
-
기차지나간당 7
부지런행
-
은 바로 작년 요루시카 콘서트 간거… 12월에 한거였는데, 봄도둑 하이라이트 나올때...
-
7-8시간 잤긴했는데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 26일 유럽연합(EU)에 대한 관세를 조만간...
-
아프지 망고 oh 아프지 망고
-
아아야아아아 2
나갈준비하기개귀찮아
-
김과외 채팅오류 1
이거 왜이러나요 어제부터 계속 이러는데 w같네 진자
18 + 년 이 금지어라니...흠
ㅋㅋㅋ 비추상쇄하고감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다음편도 보고싶어요.
2010 수리가는 풀때는 정말 쉽다는 감이 왔는데
점수는 그대로였지요'ㅅ'...아오 그때 생각나네
아 올1등급의 수기. 다음편 기대되요^^
아 작년수능 근자감ㅋㅋㅋ 심하게 공감
근데 저게 망한걸 직감하면서도 안깨졌다는게 문제 ㅁㄴㅇㄹ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아 재밌엉 ㅠ.ㅠ...라며니글짱잘쓰는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