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17-01-09 04:53:06
조회수 13,034

뇌전증 환자로 살면서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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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뇌전증 환자다. 

뇌전증이 무어냐 하면 ??? 할 것이다.

뇌전증은 간질이다. 순우리말로 하면 지랄병이다.

어떤 병인가?

뇌의 어떤 부분이 영 좋지 않아서 뇌 신호가 폭주한다.

그러면 발작을 일으키는데, 상당히 고통스럽다.

지켜보는 타인에게도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지랄병, 신병(신내림으로 보기도 한단다) 등 대우가 영 좋지 않은 병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증상이 나타났다.

중학교 2학년 때 확진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며

지금 햇수로 8년차 환자다.


2. 

어떻게 얼마나 아픈가?

평상시엔 별 문제가 없다.

다른 일반인들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

같은 일을 할 수 있고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발작을 일으킨다는 거다.

뇌전증으로 인해 발작을 일으키게 되면 온 몸의 근육이 수축된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어느정도냐 하면 혀가 밖으로 내진 상태에서 입을 닫은 상태로 발작이 일어나면

혀가 잘리거나(좀 극단적;) 너덜너덜 해지거나(경험, 검붉은 멍이 들어서 혀를 못 움직일 정도) 

피가 많이 나와서 아찔할 수도 있다.

주먹을 쥐며 힘이 많이 들어가서 손톱이 깨진다던지

손가락이 이리저리 꼬여서 남들이 풀어줘야 할 정도로 경직이남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모든 근육을 한방에 수축했다가 놓기 때문에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토를 한다.

최소 4시간~ 최대 9시간까지 해봤다. 


가장 위험한 것은 뇌전증 그 자체다.

으사아조시께서 말하길 발작이 일어날 때, 뇌로 산소가 통하지 않게 된단다.

발작이 3분인가 5분 지속되면 뇌세포가 죽어서 좀 아쉬워진다는데

몇분이 지나게 되면 정말로 위험해진다고 한다.

그래도 난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발작 때문인지 점점 멍청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엄청난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냥 내가 첨부터 멍청한 것인가보다 하고 넘어가고 있다.


3.

뇌전증 환자로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지능 감퇴도 아니었고, 육체적 고통도 아니었다.

토를 몇시간씩 해서 식도염에 걸리든

혀를 깨물어서 입 안에서 피가 줄줄 나든

제멋대로 엉켜 굳어버린 손가락을 억지로 펴든

그냥 며칠 지나면 다 나았으니 문제될 게 아니었다.

지능 문제는 난 원래 멍청했으니 해결될 문제다.

사회적 인식이 문제였다. 


"군대는 다녀오셨나요?"

아뇨. 

"빨리 가는 게 좋아요."

면제입니다.

"왜요?"

뇌전증 환자거든요.

"뇌전증이 뭐예요?"

간질이요.

"아... 그렇군요."


이 짧은 대화에서 느껴지는 동정의 시선.

그리고 뒤따르는 불편한 배려들.

거기에 불이익까지.


대한뇌전증협회에 따르면

자신이 뇌전증이라고 밝힐 경우 취업에 실패할 확률이 60%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할 확률이 40%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자신있고 남들만큼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도 있는데


4.

난 뇌전증 환자라는 사실을 최대한 잊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을 때마다 환자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할 때마다 주변에서 만류하며 거절당할 때마다 느껴졌다.

너무나도 슬프고 한스러워서 여태 얼마나 베갯잇을 적셨는지 모르겠다.

장기적으로 병을 앓다보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작을 일으켜서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도 찾아왔다.

아직도 사람이 많은 곳엔 혼자 가기 힘들다.

혼자 밥을 먹고 다니지만 어지러움과 불안감을 느끼며 다녔다 


5.

뇌전증 환자로 살면서 얻은 게 뭐냐.

사회경제적 불이익, 주변의 동정과 안타까운 눈빛, 육체적 고통과 정신병.


긍정적인 것은 수능 공부를 하면서 얻은 한가지 교훈이다.

아파서 못한 게 아니라 아파도 해냈다.

그런데 이마저 무너져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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