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대숲)컴공과의 소개팅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0090497
여자가 거울 앞에 앉은 지 한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여자의 얼굴은 속눈썹 한올까지도 완벽하게 정리된 상태다. 오늘은 여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개팅을 가는 날이다.
상대는 서울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학부 3학년. 여자는 이번 소개팅에 기대가 매우 크다. 친구가 보내준 남자의 사진을 보니,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 이미지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또 마침 여자는 얼마 전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지적인 남자가 섹시해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알파고 같은 것을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컴퓨터 공학과라니, 얼마나 섹시한가. 부푼 기대를 가득 안고, 여자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얼마 전에 산 입생로랑 립스틱을 꼼꼼히 바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준비를 마쳤다.
지하철을 타고 홍대 입구로 가는 내내 여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눈빛은 이미테이션 게임에 나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반짝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약간은 무뚝뚝하면서도 자상한 사람이지 않을까. 그런데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사실, 여자는 남자를 소개받고 카톡으로 약속을 잡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톡을 보내면 답장시간이 기본 1시간이 넘어갔고, 만날 날짜를 잡으려고 물어보면 하면 항상 그날에 시험이 있다고 했다. 여자는 한 학기에 시험을 4번 본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혹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파고를 만들려면 그 정도 공부는 해야 하나보다 하고 너그럽게 이해했다.
여자는 약속장속에 도착하기 10분전 확인 차 카톡을 보낸다. &“저는 6시 정시에 도착할 것 같아요, 혹시 도착 하셨나요?&” 그러자 남자와 카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곧바로 답장이 왔다. &“네, 홍대 입구역 9번 출구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20m 떨어진 곳 벤치에 있어요.&” 메시지를 받은 여자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서쪽? 왼쪽을 말하는 것인가.’ 다소 생소한 표현이었지만, 자신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상세하게 배려해주는 남자의 모습에 살짝 호감도가 상승했다.
여자는 역에 도착하자, 화장실에 잠시 들러 본인의 모습을 최종으로 확인한다. 아이라인이 조금은 높게 그려진 듯 싶지만, 이정도면 만족스럽다 느끼고 당당하게 9번출구로 나간다. 여자가 출구로 나가자 정확히 출구에서 왼쪽으로 20m 떨어진 곳의 밴치에 푸른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보니, 친구가 보내준 사진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남자였다. 여자는 속으로 ‘정말 정직한데?’ 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포토샵이 가미된 자신의 사진에 조금은 죄책감을 느꼈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가 방긋 웃으며 &“소개팅 나오신 분 맞으시죠?&” 라고 물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남자는 여자를 보고 멋쩍게 웃으며 &“네, 맞아요.&”라고 대답한다. 잠시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부끄러운 듯이 여자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여자는 살짝 답답함을 느끼지만, 순진한 구석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하며, 먼저 &“아, 그럼 어디로 갈까요? 식사는 하셨나요?&”하고 질문을 건냈다. 남자가 대답한다. &“아.. 식사.. 아직 안했어요. 뭐먹을까요? 음.. 파스타 어떠세요? 파스타.. 요즘 여대생들은 그런 거 많이 먹는다고 하던데. 파스타 좋아하세요?&” 여자는 속으로 표현이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지만, 남자가 처음으로 대답다운 대답을 해준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마웠다. &“네, 파스타 좋아요. 이 근처에 맛있는 집 아는 데 거기로 가요!&&” 여자는 활기차게 대답한 후에 남자를 이끌고 자신의 단골 파스타 집으로 간다.
파스타 집에 도착하자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남자는 카운터로 가서 점원에게 대기번호를 받아서 여자에게 돌아왔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여자와 남자는 잠깐 머뭇거리다 가게 앞의 의자에 앉았다. 여자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 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웬일인지 남자가 먼저 대화를 걸었다. &“음식점 대기줄이 꼭 FIFO queue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여자는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 졌다. ‘음 파이포?? 그게 뭐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여자는 일단 질문을 떠넘긴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그러자 남자가 말을 시작한다. 저는 &“shortest time first를 사용하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세요, 고지식하게 항상 먼저오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야할 필요가 꼭 있을 까요. 식사시간이 짧은 사람이 먼저 들어가게 하면 식당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짧은 시간안에 받을 수 있으니까 좋지 않을 까요?&” 여자는 당최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모른다고 하면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재밌네요. 저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남자는 여자의 대답을 듣자, 한층 더 신이 난 듯 한참을 혼자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린이 같은 남자의 모습이 신기하여 잠자코 있었다.
그때 마침 구세주와 같은 점원이 와서 말을 건낸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쪽으로 오세요.&” 여자는 굉장한 안도감을 느끼며 남자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간단히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취미가 뭐에요?&” 여자가 묻자, 남자는 &“음... linux open source 코드를 혼자 짜보는 것을 좋아해요. 비록 commit할 용기는 없지만.&” 라고 대답한다. 여자는 남자와의 대화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여자는 남자의 열의에 찬 모습과 뭔가 지적이어 보이는 뇌섹남의 이미지가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잠시후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주문한 피자가 나오자, 남자는 피자 cutter를 들고 피자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자못 생소했다. &“ 혹시 피자를 정확히 반으로 자르는 방법을 아세요? 감으로 자르면 정확히 반으로 자르기가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여기에 현을 긋고 수직 이등분선을 작도한다음 ....&” 남자가 열심히 중얼거리면서 피자를 잘랐다. 여자는 처음보는 피자를 자르는 모습에 문화 충격을 느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건 피자가 정말 누가봐도 정확히 딱 절반으로 잘렸다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매사에 철두철미한 남자의 매력이 여자를 끌어 당겼다. 여자는 식사를 하며, 계속해서 남자에게 취미, 특기, 이상형등을 물어 보지만 대화가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짓궂은 질문을 던져보기로 한다. &“가장 최근에 가슴이 뛰어본 적이 언제 인가요?&”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남자에게 질문을 건냈다. &“음... 가슴이 뛰어본 적이라... 기억이 잘 안나는데요. 잠시만요.&” 남자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한다. 여자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남자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한 1분정도 지났을까, 남자는 마치 유래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아, 생각났어요! 지난번 논리 설계 실험 기말 프로젝트 밢표에서, 모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정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30분만에 디버깅을 해서 다시 검사를 맡아야 했는데, 얼마나 심장이 두근두근 하던지. 결국 다 끝내긴 했지만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등에서 식은땀이 나요.&” 여자의 이번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에, 비록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순수함의 결정체와 같은 이 남자에게 여자는 꽤나 강한 호감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남자에게 이제 다음에는 어디를 갈 것인가를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대답한다. 저 이제 다시 학교로 가봐야 해요. 여자는 잠깐 벙찐 표정을 한다. &“네? 이 시간에 다시 학교를요?&” 남자는 왜 그런 것을 묻냐는 듯 대답한다. &“네, 일주일 뒤에 제출인 OS과제가 있어서요. 계속해서 밤을 새야 되는데, 오늘은 잠깐 시간 내서 나온 거 에요.&” 여자는 일종의 상실감을 느낀다. ‘아, 이 사람이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구나. 이 정도까지 싫다는 티를 내는데, 여기서 더 이야기를 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겠지. 아쉽지만 포기해야겠다.’ 여자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 보세요.&”하는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와, 여자분 진짜 예쁘시다. 그런데 내 이야기에 제대로 대답을 한 번도 안 해 주시네.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역시 나 같은 공돌이한테 저런 여자 분은 무리겠지. 빨리 학교 가서 과제나 해야겠다. 오늘은 몇 시쯤 집에 갈 수 있으려나......’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뭔 소리지.
다시 올릴게요 따옴표가 깨지네요
ㅠㅠ예전에 이미테이션게임을보고 컴공이 목표였던 때가 생각나네요
너무슬프당..
남자가 말하는거 뭔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ㅋㅋㅋㅋㄱㅋㅋ일단 남자 사회성0에수렴
그리고 저런 여자는 현실에없을듯
저분 대학교에 공부하러 오신분 같네요 (ㅇ?)
ㅁㅊ다ㅋㅋㅋㅋ 아는사람만 이해하네
안이루어졌으면 된거죠
남자가 정말 센스없네요..같은 학부생끼리 대화하는거면 모를까.
더욱 놀라운건 저런 센스도 없고 배려도 없는 남자를 보고 두근거린다거나 매력을 느낀다는 여자의 반응;;
남자는 자기관심사만 말하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이야기 하는데 여자가 자기한테 관심없다고 생각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반응.. 근데 또 남자는 마지막에 여자가 자기한테 관심없어한다고 하니...얼굴이 잘생긴게 아닌이상 모태솔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