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7-01-02 03:33:03
조회수 17,570

[16수능 썰] (5편) 물수능 앞 무력감, 고연전, 그리고...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0425999

-------------------------------------------------

http://orbi.kr/bbs/board.php?bo_table=united&wr_id=9107228 (이전 글들을 모아둔 곳)


이전 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


==================================================


9월 모의고사에서 필자는 헤이해진 전투태세를 가다듬고


다시 공부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차근차근 반전 동력 마련을 위한 준비를 해두었다.



하지만 9월 모의고사


정확히 원래대로라면 2학기가 시작되고 개강총회에 참석했을 날


반전의 계기를 위해 준비했던 9월 모의고사에서


예상치 못한 통수와 결과로 인해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9월 모의고사로 인해 필자는 엄청난 내상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충격적인 결과와 사실상의 동력 상실...



- 이전 편에서 일부 인용 -


----------------------------------------------------


(그 당시를 생생하게 담고자 노력하였다.)



2015년 9월 2일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되는 날이었다.



필자는 다소 진지한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이게 10개월만에 처음으로 보는 평가원 시험이야..."



정말 긴장이 되었다.



교실에서 책상들은 각각


마치 양계장 속 닭장들처럼


뺵빽하게 들어박혀 있었다.



고개를 조금만 비틀어도


옆 자리가 훤히 보일 것만 같은 


그 좁은 닭장같은 간격들 속에서


필자는 잠시 불평을 하였다.


"이거 9평을 보는 환경이 도저히 아니잖아..."



강남대성(6야)와 서초메가와의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차이라면


이런 시험환경이 가장 차이났던 것 같다.



서초메가 당시에는 평가원 직원의 감시가


엄격했던 편이기에


책상간격부터, 준비령, 예비령, 본령


심지어 답안지 배부 시간마저도 철저하게


수능처럼 똑같이 진행했을 정도였다.


(다른건 몰라도 이 부분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수능에 대한 익숙함과 멘탈 부분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대성 당시에는 평가원 직원의 감시가


엄격하진 않았던 탓인지는 몰라도


책상간격은 시험을 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고


준비령과 예비령 본령은 다소 지켜지지 않은 편이었다.



모의평가와 수능의 괴리를 다소 느낄 수 있었던 환경인 것이었다.


(강남대성이 비록 재수학원 분야에서 1등이고, 6월 야간반은 그 중에서도 더더욱 월등하다지만, 지켜져야 할 부분은 지켜지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강대 재원생을 위해선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물론 강대 급식은 월등하다. 대학 학식도 이렇게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잘 보는 놈은 그 어떤 상황에도 잘 보기는 한다.


그게 내가 아니어서 그렇지...



여하튼 감독관 선생님이 들어오고


시험지와 답안지가 배부되었다.



종이 울렸다.


1교시 국어영역이 시작되었다.



시험지 표지를 넘겼다.


모평 화작문은 믿고 푸는 수준이라고


그냥 쓱쓱 풀어나갔던 것 같다.



비문학도 스트레이트로 풀어나갔다.


그러던 중 예술 지문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28번 문제를 맞이하고서


"갑자기 웬 추론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머리굴린답시고 배경지식으로 풀어버렸다. 


(여기서 갑작스럽게 당황했다. 지문이 급 머리에 안 들어왔다고 할까나)



문학으로 넘어갔다.


"연계 공부 아직 못 했는데... 누군가는 쉽게 풀겠지. 근데 읽고 풀면 그만인데~"


읽고 풀었다. (맞는 말이다.)



"자 이제 다들 시험지 덮고 답안지 걷어주세요"



1교시 9월 모의평가 국어시험이 끝났다.



화장실을 갔다온 다음


교실에 들어와서 기출 1~2문제 워밍업 하고


그대로 쉬고 있었다.



곧이어 감독관 선생님이 들어오고


1교시와 마찬가지로 2교시 수학영역이 시작되었다.



수학도 스트레이트로 쓱쓱 풀어나갔다.


"훗... 이래뵈도 수학은 수능만점 받았어... 난 아직 죽지 않았으~"



28번을 이제 막 풀었을 때


시계를 보니 역시나 넉넉하였다.



"역시... 수학은~"


하고 29번을 넘겼다.







"...아 이런 수학님... 제가 잘.못.들.어.온 같은뎁쇼?"


수학 "어딜 도망가?"


29번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30번 "맞출 때는 아니란다!"


"아 씨 얌마! 내가 전성기일 때는 너네들 다 죽었어!"


29번, 30번 "그럼 지금 죽여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제로 돌진했다.


머리가 돌머리가 된 탓이었을까


그냥 9평을 못 보고자 하는 망침 본능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운이 안 좋았을 탓이었을까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29번 30번에서 잔득 낙서만 해놓았는데


10분이 남았다.



"아 씨... X됐다. 이러면 어쩌지... 내가 빠가가 된건가"


잠시 당황하다가 60이란 숫자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 씨 4로 나누기 정말 좋네... 에라 모르겠다!"



눈감고 재빠르게


29번 30번을 15로 둘 다 찍었다.


"XX 이번 시험은 망했다. 그냥 보기 좋은 숫자로나 찍자."



2교시 수학영역이 끝났다.



점심을 먹으면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나는요 복학이 좋은걸... 망했다 삐~~~"


그냥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그냥 강대생들을 보면서 멍때렸다.



겨우 식사를 끝마치고


3교시 영어영역이 시작되었다.



영어 듣기가 시작되었다.


"듣기...헬렐레... 앗! 방금 뭐였지? 왜 놓친겨 XX"


정신줄 잡다가 하나를 놓쳐버렸다.



재빠르게 기억에 의존해서 찍고


듣기를 이어갔다.



독해로 들어갔다.


"허허허.. 풀자 풀자 풀자"





Customization


31번 영어 빈칸 문제였을까.


"XX... 이 단어는 뭐지? 모르니까 선택지에서 일단 제외"



지문을 아무리 읽어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애라... 1 3 5는 아니고... 2는 모르겠다..."


그나마 4번으로 찍자고 생각했다.



3교시 영어영역이 종료되었다.



"야... 하하하..."



멘붕을 추스리자마자


바로 4교시 탐구영역



첫번째는 생명과학I 이었다.


"1페이지... 2페이지... 3페이지... 아주 스트레이트야! 탐구에서 이런걸 얼마만에 보냐!"



평가원시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쉽게 쑥쑥 풀어나갔다.



...물론 유전 문제에 다다라서는


심호흡을 크게 쉬고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후... 일단 풀어나가자."



10분만에 비분리 17번과 가계도 20번만 남겨두었다.


짱돌을 돌려봤다.


"비분리부터 풀자."


비분리 문제를 풀다보니 어느새 2분 전이 되었다.


"쳇"


20번은 그냥 믿찍5를 돌렸다.



그 다음은 생명과학II


"나는 일반생물학까지 해서 살아남은 영혼이다!"


바로 돌진했다.



"이거 13번 신중해야겠네"


자료제시+조건해석형 문제 하나를 만났다. 


"대장균 오페론을 새롭게 접근시켰군..."



짱돌을 빠르게 굴려서 답을 냈다.



그렇게 19번까지 풀고


20번을 마주하였을 때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그냥 끄적거리다가 답개수 돌려서 4번으로 찍었다.



그렇게 9평이 끝났다.


그렇게 9평을 헬렐레야한 상태로 채점하기 시작했다.



원점수는 국a 수b 영 생1 생2 기준으로


97 96 95 48 47 이었다.



국어는 결국 그 28번을 틀렸던 것이었고


수학은 30번을 15로 찍었던게 맞으면서 96점


영어는 듣기 하나와 그 31번을 틀렸고


생1은 믿찍5가 통해서 48점


생2는 답개수가 통해서 20번을 맞췄지만 하디-바인베르크에서 대삽질을 해서 틀려서 47점이었던 것이다.



잠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


"하... 찍어서 맞췄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수학을 찍어 맞춰도 96점... 생1도 찍고... 생2도 찍고... 이래도 이 모양이야?"


웬지 가짜 점수를 받았는데도


그 가짜 점수가 개판이라는 사실에 괜스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하튼 채점을 하고나서 점수를 적어서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흠... 많이 아쉬운데..."


선생님의 표정이 예상을 넘어서 좀 어두운 편이었다.


"허허허... 탐구가 어려워서..." 하고 물타기를 살짝 넣었다.


그러면서도 "왜 저리 표정이 어두우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집에 가는 길에


같이 반수하고 있는 녀석(동기)에게 


슬쩍 9평 이야기를 꺼냈다.



"흠... 얘는 전체에서 1개? 2개? 정도밖에 안 틀렸군"


살짝 틀린 개수를 세봤다.


6개였다.


점수로는 10점 넘게 차이가 났다.


그냥 그저 씁쓸했다.



집에 가서 등급컷을 봤다.


"...?? 미쳤나?"


수학 1등급컷 100이었던 것이다.



"하... 그래 9평을 좀 못 볼 수도 있지."


가만히 따져보니 22211 또는 12211이었다.


"하하... 12211일거야...제발!"



정신승리를 끼얹고서


그 곳에 가서 예상대학 배치표를 슬쩍 돌려봤다.


또다시 바시의가 소신지원으로 떴다.



"...이건 진지하게 복학하라는 하늘의 메세지인가?"


모의고사 3연속으로 


적정대학에 바시의가 뜨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야리꾸리한 생각이 들었다.



이틀 뒤 필자는


방학 때 신청해놓은 과 바람막이를 받기 위해


(주점에서 얻은 수익으로 맞춘 거다.)


반수하던 동기 1명과 과 동기 동생 1명과 함께


강남역 스시뷔페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아마 필자가 이런 드립을 꺼냈던 것 같다.


"이거 3연속으로 우리 과가 뜨는데... 이거 진지하게 복학하라는 메세지인가? 하늘이 반수하지 말라고 메세지 주는 듯 ㅋㅋㅋㅋ"


슬쩍 농담같은 한풀이를 꺼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시간을 흘러서


약 2주 뒤인 9월 18일 금요일


그 날은 고연전 첫 날이면서


동시에 필자가 사설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었다.



좀 늦게 일어나서 헐레벌떡 지하철을 타고서


과톡을 둘러보았을 땐 고연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 성적은 완전 말아먹었는데... 나는 오늘 또 사설모의를 보러가고... 그렇게도 고등학교 때부터 이야기를 들어왔던 그 고연전은 못 가고... 이러려고 반수하나 자괴감들고 괴로워"



사설 모의고사를 다 끝마쳤을 때는


(신나게 말아먹었을 때는)


야구와 농구 모두 고대가 이긴 상태였다.


고연전에 못 가는 기분을 달랠 겸


중계방송을 찾아서 빙구(아이스하키) 중계방송을 감상했다.



양팀 응원석 쪽에서 들리는 응원가들과


해설진들의 해설, 선수들의 모습들을 보며


그저 이렇게 생각했다.


"흐 재밌겠군..."



빙구는 연대의 승리로 끝났다.



그렇게 집에서 쉬고 있을 무렵


과톡에 다음날 고연전은 (19일 토요일)


목동 경기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목동 경기장... 집 바로 코 앞인데..."



비록 개판난 모의고사 상태들과


물주(?)인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학원비들로 인해


필자의 명분 축소와 함께 발언권은 완전히 박살이 났던 상태였지만



그래도 평생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고연전인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남은 발언권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설득을 시도했다.



계속된 설득 끝에


"그럼 잠깐 갔다 왔다가 와. 늦게 오지는 말고." 


라는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


"어제는 고연전 간다면서 오늘은 아침 다 가도록 자고 있냐"



입실렌티 때 늦잠자서 오후에 들어왔던


그 본성 어디 안 갔을까


점심 무렵 부랴부랴 일어나서


목동 경기장으로 향했다.



목동 경기장 부근에 도착하니


크림슨색 티를 입은 사람들과


파란색 티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 찾기 귀찮은데... 역시 이럴땐 앞을 따라가는게 진리다!"


그냥 그저 물결들을 따라갔다.



이윽고 고대 응원석에 도착했을 무렵


과톡에 갑자기 이런 말이 올라왔다.


"야 우리 럭비 졌어 ㅠㅠ"



고대가 이긴 경기는 야구와 농구


연대가 이긴 경기는 빙구와 럭비


이제 남은 것은 축구



이제 곧 있을 축구 경기에서 


2015년 고려대-연세대 정기전의 승패가 갈리는 것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줄을 서기 시작해서


입구에 다다랐을 때


총학 행사 일을 하는 겸


입구에 있던 과 동기 한 명을 만났다.



'...놀라는 표정이겠군'


예상을 해봤다.


아니었다.



"...오빠 설마 지금 시각에 온 건 아니겠지... -_-"


이 인간은 변함없이 또 지각인가...하는 느낌이었다. (ㅈㅅ)


(1학기 때 지각을 많이 했었다. 양심에 찔린다.)



사실 그 때가 12시에서 1시일 무렵이었으니까


그냥 민망해서 얼버무렸다. (지각은 맞으니까)



여하튼 경기장에 입장해서


우리 과 자리를 찾아갔다.


자리를 찾아가서 앉아있던 동기에게



"어 오랜만이다 ㅎㅇ"



하고 인사를 건내자


동기가 놀란 표정으로


"아니 여긴 어쩐 일이야 ㅇ0ㅇ" 하고 말을 했다.



오랜만에 보는 겸 동기나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생각해보니까 뻔선과 교류를 많이 안 했다. 이런 -_-)


바로 앉아서 응원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레드밸벳이 고대 응원으로 나올 때는


"와아아아 레드밸벳이다!!" 하며 환호하다가



아이유가 연대 응원으로 나오는 사태(?)가 벌어지자


(사실 아이유가 원래 연대'만' 좋아한다 ㅂㄷㅂㄷ 연대 행사만 참석하다니 ㅂㄷㅂㄷㅂㄷㅂㄷ)


(참고로 본인은 아이유 팬이다.)


절규아닌 절규(?)를 하면서


"아..앙대! 아이유가 연대 응원이라니 ㅂㄷㅂㄷ"했던 기억이다.



여하튼 그렇게 양측 응원영상과 연대까는 영상, 고대까는 영상이 방송되고


곧이어 축구가 시작되었다.



고대가 초반에 한 골을 먹혔다.


"그래그래... 축구는 역전이지..."하며


응원과 함께 계속 지켜봤다.



하프타임이 지나고 후반이 되었다.


계속된 찬스들을 고대가 놓치면서


"아...앙대..." 상태가 되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연대가 1점 앞서는 1:0 상황 속


후반종료 3분전



"허허... 왜 하필 우리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연대가 항상 지면 재미가 없으니까..."


고연전 패배같은 직감을 느끼며 


다들 마음을 살짝 비우던 참이었다.



그 때 바시의 자리가


후반기준 연대 골대 바로 뒤였다.



그 때였다.



한 고대 선수가 공을 몰고와서


공을 힘껏 찼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앞 연대 골대에


공이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고대가 후반 종료 3분전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던 것이다.



"아.... 어... 어.?!? 어!! 어!!!!"


바로 뱃노래가 울러퍼지고 폭죽이 터졌다.


그 극적인 동점골에 놀라 신난 상태로


뱃노래 응원을 힘차게 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그 뒤 승리의 노래 엘리제와 함께


마지막 3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은 축구의 무승부와 함께


2015년 고연전은 무승부로 끝나게 되었지만


사실상 극적인 동점골로 인해서


승기는 고대 쪽에 있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운동장으로 다들 나와서 신나게 응원을 하고


지하철역으로 가던 중


나의 무한한 물주이신 부모님에게 문자가 왔다.



"늦게까지 있지 말고 이제 슬슬 오시지?"



지금같은 발언권이라면 "더 놀거야!"하고


바로 개기고서(?) 기차놀이로 향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필자의 발언권은 극도로 최소화되었고


입지 또한 완전히 축소된 상태였기에


물주인 부모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계속 볼 새도 없이


동기들과 교류반 애들한테 


"이제 안타깝지만 집에 가봐야 할 듯"하고


지하철에서 슬며시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연의 가라!"


"야 그러지 말고 교류반(연치)에서 만나자 ㅋㅋㅋㅋ"


"ㄴㄴ 탐구과목 때문에 연의 연치는 불가능"


"ㅇㅎ 그렇군... 여하튼 고연전에서 이렇게 보니까 반갑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이야기를 들어왔고


마지막일지도 몰랐을 기차놀이를 포기한 채


집으로 터덜터덜 향했다.


(결국 기차놀이는 영영 못 하게 되었다.)



"왜이리 늦게 도착했냐"


집에 도착하고나서 왠지 슬프고도 싱숭생숭한 마음에


그저 방에 들어가 누운 상태로 멍 때렸던 것 같다.



"맞는 학과랑 좋은 동기들, 교류반 애들을 놔두고서 내가 반수하는게 맞긴...하나?"


그냥 그저 나는 꿈을 따라서 쫓았을 뿐인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었던 것도 하지 못 한 채로


포기까지 하는게 과연 옳은 상황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러는게 더 나은 미래를 살고자 하는건데... 현재와 미래를 희생하면서까지 더 나은 미래를 얻...아니 얻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어째야 할까... 잘못된 희생이 아니었을까..."



뭐라고 할까나


반수를 하고자 했던 동기나 동력이 타격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냥 내가 잘못했던 것일까


내가 과욕을 부려서 이런 참사를 만든 것인가


성과도 안 나는데 결국 실패만 남으면 어쩌지...


그냥 진짜 말그대로 별별 생각이 다 들곤 했었다.



"한 사람의 성공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가 있다는데... 내가 그 수많은 사람인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게 그냥 단지 시간낭비 돈낭비였던 것일까..."



"에휴.. 뭔 쓸데없는 생각이야... 그냥 자자"



그냥 자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점점 쿠크다스가 되어가는 멘탈 속에서


필자의 생활패턴은 더더욱 막장이 되어갔다.


이제는 1시 등원도 아닌


2시 기상, 4시 등원이 일상이 되었다. (6야는 4시부터 수업 시작)


4시 등원마저 늦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페북에 상주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톡에서 가끔씩 잉여거리기도 했다.


과잠도 신청하고 그랬을 정도다.



(훗날 예전 동기 녀석이 이에 대해서 회상하기를 "얘는 과잠 신청하고... 고연전 참석하고... 과톡에서 간간이 나타나고... 페북에서 항상 보이고... 게임 메세지까지 보내고... ......얘 내년에 복학할 생각인가보다"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고)



쿠크다스가 된 멘탈에 쐐기를 박아버린 것은


9월 모의평가 성적표와 10월 초에 나온 사설 모의고사 성적표였다.



(사진첨부 : 2016학년도 9월 모의평가 성적표, 22211이었다.)


최종적으로 나온 22211이란 성적표 앞에서


완전히 무력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물수능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필자의 스타일 상 쉽게 나올수록 망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는데


실제로 그 상황이 처참한 성적표로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성적이 안 좋게 나온다거나 한다면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평가원의 난이도 조절같은 불가항력 요소로 인해


성적에 불이익을 받는다면 도저히 주어진 답이 없었던 것이었다.



"왜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겁니까 진짜..."


세상에 항의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실패를 알아주지 않을 게 뻔했다.


내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고, 얼마나 절박하고 그랬든지 상관없이


세상은 오직 결과로 평가할테니까 말이다.



하도 답답해서 엄마한테 하소연을 해봤다.



"평가원이 물수능을 내는걸 그 누군가는 알아주지 않겠지... 네가 열심히했든 어쩌든 결과가 안 좋다면 그저 패배자의 변명으로만 치부하고 그럴거야. 내가 말했잖아 세상은 결과지상주의라고. 네가 성공하면 개판을 치든 미화받고, 네가 실패하면 아무리 열심히 했든 비난받는 게 세상이야."



냉정한 대답이지만 맞는 대답이었다.



말그대로 평가원의 이런 태도는 필자에게 움직일 수 없는 벽이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 안에서 온갖 발버둥을 다 치더라도 


그 운명을 거스르려 하더라도 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사설모의고사들은 치르면 치를수록


개판을 면치 못 하기 시작했다.


적정대학 배치표는


이제는 마치 "넌 복학 무조건" 이러듯이


지금 다니는 대학이나 과마저 뜨지 않기 시작했다.



(사진 첨부 : 그쯤 나온 사설모의고사 성적표)


(사진 첨부 : 사설모의고사 그 당시 나온 적정대학 .... -_-)



개판으로 떨어진 상황 속에서


더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멘탈로 똑같은 자세를 부여잡기는 힘들었다.



"거스를 수 없다면 차라리 내려놓자..."



기왕 복학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면서 복학을 기다리자...


즐기면서도 나름의 최선은 다 하자...



이런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쿠크다스처럼 부셔진 멘탈 위에서


지금까지의 태도와 마음가짐 모두를 바꾸기 시작했다.



항상 치열하게 살아고자 하던 태도를


여유롭고 느긋하게 내다보는 식의 태도로 바꾸고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는 운명 앞에서 


그 운명을 거스르고 헤쳐나가기 보다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초연한 자세로 대처하겠다는 생각 등...



어찌보면 정말 무책임하고 태연하고 태평했던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공부방법도 그러한 스타일을 반영하듯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보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 편에 서술한다.)



사실 언뜻 보면 그냥 말 그대로


"이 XXX 돈낭비하려고 작정하고 확 던지네?"이다.



실제로 그 당시 필자


복학이란 결말을 예상하고선


주변 사람들에겐 "나 복학하면 대학원 진로로 잡을 듯" 이라고 떠들고 다녔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옛 비유 중에 이런 비유가 있다.



강한 바람이 불면 


튼튼한 나무는 얼핏 보면 버티는 듯 싶지만


결국 부러지고 만다.



연약한 풀은 얼핏 보면 태풍에 견디지 못 할 것 같지만


풀은 눕는다.


바람에 맞춰서 눕는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는다.



지금까지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졌던 원인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위기 상황들이 올 때마다


그냥 무조건 "적이니까. 극복해야 하니까." 이렇게 생각하고선 


무작정 앞을 보지 않고 깨부수려 하는 등


중압감과 압박감을 가진 상태로 대했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 무너진 경우가 많았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이


역설적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비록 의도했던 것들은 아니었지만


위기 상황을 깨부술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위기 상황을 즐기려 했었고


중압감과 압박감을 가지는 대신


정말 신기할 정도의 뻔뻔할 정도의 대담함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즐기고자 하는 여유로움을 가지기 시작했다.




......11월 그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능이란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들이 있었고


그 자리에는 폐허들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말이었다.


모든 과목에서 맞닿아트린 그 위기상황을 이겨내고 말이다.



그렇다.


망하고자 했던 행동들이


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 (마지막편이거나 그 직전이거나) -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