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 쪽지

2016-08-12 02:02:08
조회수 7,099

[수학썰2] 잠깐의 반등 그리고 비극적 대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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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배경스토리)


(수학B형 위주로의 서술 - 이라지만 썰 당시 특성상 수학B형 비중이 시기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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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갈등들이 약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던 12월 쯔음

"여기 목동대학학원이라고 있는데, 여기서 수학 공부하면 성적 어느 정도 회복할 것 같은데"


엄마가 무언가를 가져오면서 말했다.

학원 전단지였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수학학원을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

결국 수학학원을 등록하기로 결정하고

입회테스트(?)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찾아갔다.


(이전 편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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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그 당시의 심정과 감정, 행동 등을 그대로 서술하였으므로 어그로성 발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10분 동안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 대형학원 건물 앞.


건물 통째로가 학원 건물이고

정류장 이름도 목동대학학원이라

되어있는 것을 보면서

"우와... 역시 대형학원인건가."라고 감탄했다.


----------------------------------주석------------------------------

잠깐 지금으로 돌아와 썰을 풀자면

지금 대학학원은 완전히 망했고

그 자리에는 독학재수학원이 들어서있다.

원래는 자세하게 썼지만

글이 날아가는 바람에

다시 쓰기는 좀 그래서 생략하고...

그냥 정치적 문제나 사학재단이랑 관련된 영역이란 것만 언급하겠다.

---------------------------------주석끝--------------------------


엘리베이터에 조심스럽게 탄 후


6층에 내리니 접수처가 보였다.



접수처에 가서 등록절차를 밟고


"자사고다 보니 우리 애가 내신이 좀 안 나와서요."


(원래 이런 건 미화 좀 넣어주는 거다.)


곧이어 접수처 직원 분의 안내에 따라


학원 입학테스트를 보기 위해


어느 한 교실로 들어갔다.



입학테스트용 수학 시험지와


컴싸, OMR카드를 받고서


문제들을 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하도 오래되어서


무난하게 풀었는지 끙끙대면서 풀었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뭐 어쨌든 못 들어갈 정도로


학원 입학테스트를 개판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1월부터 수학 단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당시 4층에는 교실들이


6층은 매점과 접수처, 몇몇 교실들


(매점 가격은 좀 밑에 편의점보단 좀 쌌던 기억이다.)


(나머지 층은 모른다.)


7층은 재수기숙학원과 식당이 있었던 기억이다.



“이번 주 숙제는 개념편 OO쪽, 유형편 OO쪽까지입니다~”


단과 선생님이 빡세게 시키기로는 소문난 분이었던 기억이다.


여하튼 그 때문인지


그 당시에는 숙제하기에 매주 바빴던 기억이다.


“헉헉... 왜이리 오래 걸리는 거야...”


뭐 사실 이따금씩 숙제를 밀리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의 근본적인 의미’를


그 때 깨달았더라면


공부역량을 상승시켜서


적어도 과제 같은 것을 할 때


시간이 없어서 끙끙 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축하한다. 이번 주말고사에서 수학을 잘 봤더라. 요새 열심히 공부하는 거니?"



2012년 봄이 밝았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의무자습과 함께


주말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수학시험과 영어시험을 시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주말고사'라 불렀었다.)



주말고사를 잘 봤다고 수학선생님(1편의 그분)에게 덕담을 받았다.


"겨울방학동안 내가 열심히 한 편이긴 열심히 했구나..."하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여느 해처럼 개학식을 했고


여느 해처럼 새로운 반과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 시작에 이어 곧 수준별 수학 이동수업 반배정이 나왔다.


(수준별 수업 - 수학II 함수연속극한~미분 / 고정 수업 - 수학II 방부등식~삼각함수 , 수학I+기하와벡터 [고정 수업은 2개/이동 수업은 1개] )


"7반(중하반)이구나... 5~8중에 7반..."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작년 2학기가 얼마나 폭망이었는지를 알 수 있겠군..."



분명 그건 현실이었다.


현실을 부정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저 이 현실을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고정수업 중 수학II 방부등식~삼각함수 담당 선생님으로


깐깐한 선생님이 들어오시게 되었다.


그 선생님의 별명은 흔히 "OO꺼비"로 불리게 되었다.



첫날부터 그 선생님의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던 기억이다.


"야 너네들 숙제 안하면 크게 혼날 줄 알아."


"익힘책을 100% 활용하도록. 알았어?"



"야! 저기 떡두 온다! 떡두!"


"떡두경보! 떡두가 나타났다!"



이 한마디면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애들도


순식간에 자리로 달려가 조용히 앉고는 했다.


이윽고 교실에 들어오는 그 선생님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다들)



"오늘 며칠이더라? 19일... 19번 나와서 풀어"


그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칠판에 수학 문제 몇 개를 적으신 뒤


애들한테 나와서 풀도록 하는 것을 즐겨하셨다.



그리고 혹여 라도 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이 문제 못 풀었어?"라는 무서운 말이 기다렸다.




"선생님 문제 다 풀었어요."


"잘했어. 들어가."



다행히 학원에서 미리 공부했던 내용이었고


익힘책 과제들도 꼬박꼬박 해왔었기 때문에


그 선생님이 나와서 문제를 풀도록 시키더라도


무사히 그 타이밍을 넘어갈 수 있었다.



"문학I은 문제를 왜이리 더럽게 내가지고... 그래도 수학은 나름 무난하게 본건가"



중간고사 시즌이 되었다.


중간고사를 열심히 치르고 나서


성적표를 보니 수학II와 기하와 벡터 모두 3등급이었다.


(수학II - 방부등식 삼각함수 함수의 극한 연속 미분 / 기하와벡터 - 일차변환 이차곡선 공간도형 벡터 로 구성되어 있었음)


"휴... 그래도 수학은 어느 정도 무난하게 봤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기하와 벡터는 시험이 어렵게 나왔었다.


그 당시 본인 스타일이 그랬지만 서술형에서 감점으로 영혼이 실컷 털리고


(그래서 수학논술을 못 했던 것이었나?)


60점대 중반을 득점했었지만


평균이 50점대 초반이었기에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는 거에 감사했었다.



"그래... 그래도 3등급이면 슬럼프 어느 정도는 극복한 거겠지.."하면서


스스로 위안삼고 자축하고 있을 무렵


수학 선생님(1편의 분과는 다른 남자 선생님)이 수학 1등 발표를 하였다.



"이번에 기하와 벡터 1등은 점수가 90점대... OO이 축하한다."



60점대와 90점대


엄청난 차이의 점수를 듣고 "와..."하면서 감탄했다.



"와 OO이 쟤는 수학을 엄청 잘하네..."라고 계속 감탄하면서


"나는 60점대 중반 가지고 만족하다니 으으"라고 생각했다.



중간고사 시즌이 지나고 5월이 되었다.


내신의 중압감으로부터 해방되는 달이자


모의고사 시즌이 점차 다가오는 달


"아 이제 슬럼프도 어느 정도 지났고 내신도 당분간 없으니... 좀 쉬어야겠다."


마음의 부담을 살짝 덜었다.



"1학기 때 내신도 없는 생명과학I을 고작 모의고사 보겠다고 공부하다니 나도 참... 그래도 생명과학은 참 재미있어"


학교 자습시간에 자습실(서O관)이 아니라 인강실에 있는 게 묘한 재미였다.



생명과학I 인강을 듣고 나면


짬짬이 엔하위키나 네이버캐스트를 읽는 맛도 좋았다.


그러다보니 수학 공부량도 살짝 줄고


수학 숙제이행률도 좀 줄은 건 흠좀무이긴 하지만...



그렇게 잉여로움을 발산하기 시작할 무렵


자습시간에 주변 친구들이 무얼 하는지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자습하는 시간 중간에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런 비매너는 아님 -_-;;)


"쟤는 쉬는 시간에도 계속 공부하는군... 쟤는 자습실 옆에서 배드민턴..."



...주로 했던 짓은


"OO~ 오늘도 공부하는 거야? 크... 역시 공부머신 OO!"


이런 드립들이었지만 (ㅈㅅ...)


(후에 누군가가 이 당시 나의 모습에 대해 묘사한 바가 "와 쟤 공부 드럽게 안하는구나.")



여하튼 애들한테 그런 드립들을 치던 중


애들이 모의고사 문제집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았다.


"참... 지금 모의고사 공부해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고3때 하면 되는거지..."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는 한 친구가 책방에 가는 길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책방에 들어가자마자


책방주인 "어 학생 이번에 어떤 거 사려고"


친구 "아 모의고사 문제집들 좀 사려고요."


책방주인 "그래? 저~기 코너에 가면 있을 거야."


그 친구는 그 쪽으로 가더니


모의고사 문제집들을 과목별로 집었다.



"크... 이걸 다 풀려고?"


"다 풀어야지. 야 너도 공부 좀 해라."



고3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내신 때마다 벼락치기하면서


근근이 먹고사는 인생이었던 것 같다.



"삼각함수 공식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거 따라 해봐"


'OO꺼비' 선생님 시간이었다.



"씬뿌씬은 씬코 씬마씬은 코씬 어쩌구저쩌구~"


'외계어인가... 빵상? 빵상이라도 되는 거야? 저게 더 외우기 힘들겠다 진짜...' (속마음)



삼각함수 공식을 외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걸 누군가가 요령으로 올려놓았을 텐데..."


그렇게 블로그들을 몇 분이나 뒤졌을까



"드디어 내가 원하는 요령을 찾았다!"



노래로 이루어진 요령들이었지만


어차피 지금 교육과정에서 필요 없는 요령들이니


분량 상 생략한다.



기가 막힌 요령들을 보면서


"역시 공부는 요령이지."라고 혼자서 자축함


...사실 지금도 잘한 잔머리 중 하나라 생각한다.



“6월 모의고사 이과 전교 7등 보소 키야...”



6월 모의고사가 지났다.


당일 날 수학시간이 끝나고서


“아 그 무한등비급수 도형 문제... 정말 뭣 같아...” 하면서


신나게 밥을 먹고 그랬던 기억이다.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치를 때마다


전교 등수를 30등까지 쫙 내걸곤 했었는데


표점기준이었나... 여하튼 모의고사 기준으로 전교 7등으로 걸렸다.



“크... 국어 100점을 맞는 맛이 바로 이런 맛이로구나. 수학이랑 영어는 각각 3등급...”


어차피 즐겨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나름 그 달콤한 맛들을 자축했었다.



모의고사 등수표들을 본 다음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중


“야. 이번에 수학 85점 맞았다며.”


한 친구가 불러 세웠다.


“근데. 왜?”


“나는 90점대인데. 넌 85점이네? 내가 너보다 수학 더 잘하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헤~ 수학 못 하네 허접이야 그래서 OO는 갈 수 있겠냐?”


좀 얄밉게 말해오던 것도 있었고 아킬레스건을 건들길래


“어차피 같은 3등급 아니냐? 그리고 어차피 딴 거 잘 보면 되는 거지”


라고 대꾸하면서 지나갔다.


(그 당시 내가 속이 좁았던 건가... 모르겠다)



“학교에서 이번에 모의고사 일정 등수 이상인 애들을 대상으로 뭐 조사 같은 걸 하라네.”


모의고사에서 일정 등수 이상인 애들을 담임선생님이 조사하도록


교장이 지시를 내렸나보다.



담임T “그래. 그럼 목표대학은?”


한 친구 “1순위는 서울대 통게학과 2순위는 경희대 한의...예과?”


담임T “...? 보통은 후자가 높지 않나.”


식의 대화가 오가던 중



담임T “음... 이번에 국어랑 탐구 때문에 여기 있는 건 알겠지.”


뭐 맞는 말이었다.



여하튼 그 뒤 기말고사 시즌이 되었고


“3등급이네.”


수학II와 기하와 벡터 모두 3등급이었다.



패턴은 중간고사 때와 비슷했다. 모든 게.



여름방학도 비슷했다. 거의.


2학기 중간고사도 비슷했다. 사실상.



한편 2학기 언젠가 즘이었을까


1년 전처럼 다시 한 번 부모님에게 전학 의사를 표명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일반고로 가서 내신을 회복해두는 게 낫습니다.”


“그냥 자사고에 남아. 이미 내신은 틀렸고 거기 간다고 해서 1등급 한다는 보장도...”


“아니... 어차피 이대로 정시로 가게 될 거라면. 그게 그거잖아요. 이해가 안 되네...”



물론 선생님에게는 아직 결정된 것도 없는데


괜히 귀찮아질까봐 말은 안 했다.


“이거 뭐 또 상담한다고 선생님한테 말하지 마요.”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호출했다.


“선생님 왜 부르셨어요?”


선생님 “전학가고 싶다며? 왜 전학가고 싶은지 한 번 말해봐.”


말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바로 부모님에게 사실을 물었다.


“하도 네가 답답해하니까 선생님에게 상담가서 말했지...”



나중에 집에 가서 부모님께 따졌다.


“아니 나 불이익 받으려면 어쩌려고... 이런 걸 말해요!”


“어차피 전학 가도 학생부상 불이익은 있지 않니”


“애당초 이렇게 합의한 적은 없잖아요. 진짜 이렇게까지...”


“뭐 이게 그렇게 화낼 일까진...”


“됐어요. 다음부턴 이런 거 절대 안 말해요. 더 이상 부모님도 못 믿겠어요.”



믿었던 부모님이 발설하지 말라는 말에도


비밀을 마음대로 발설했다는 게


그 당시 나에게는 큰 상처였다.



지금은 오랜 기간이 흐른 뒤라


이때의 상처는 여물었을 것 같다.


그런데 모르겠다. 마음 속 깊이에는 상처가 있겠지... 뭐...



여하튼 그렇게 다시 시계바늘은 돌아갔다.


어떤 아픔이 있든 어떤 기쁨이 있든


매정한 바늘은 항상 똑같은 속도로 회전했다.



2012년 11월 14일.



고2 11월 모의고사가 시행되었다.


성적은 기억 안 나지만 4와 3의 향연이었을 듯...



“와 씨 국어 1등급 컷이 무슨 100점이야...”


라고 투덜거리면서 가던 중


문득 날씨를 체감했다.



“시험도 뭣 같은데 날씨도 참 쌀쌀하구만.”


그날따라 가을 날씨가 유독 추웠다.


그리고 가을 하늘도 유독 파랬다.


참 뭔가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다.



2012년 11월 18일 토요일.



“이번 주는 학원을 쉬니 집에서 좀 쉬자!~”하면서


어김없이 평소 휴식시간처럼 문명을 틀고 신나게 게임하고 있었다.


“아 추워... 문 열어 놓았어?”


“잠깐 청소 좀 하려고”


“어휴 오늘따라 날씨 드럽게 춥네.”



일요일.



다음 날부터 몸살기가 오기 시작했다.


“몸살인가... 내일 조퇴하고 병원이나 가야지.”



월요일.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콜록... 아... 열이 뜨겁네...”



따뜻하게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진료를 기다릴 무렵, 같은 중학교였던 애를 만났다.


사실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었기에 부담스러웠긴 했었지만...


“고등학교는 어떻게 잘 다니고 있어?”


“어 그냥 뭐... 잘 다니는 듯 해.” (속마음 : 아니야)


“이번에 시험은?”


“그냥 뭐... 그럭저럭 잘 본 듯.” (속마음 : 아니야)


“아 그러고 보니 너 장래희망이 뭐였었지?”


“의사...지...” (속마음 : 과연 희망이 있긴 있을까?)


“의사? 크... 나중에 너 의사되면 나 한 번 공짜로 진료 좀 해주라”


“허허;; 그래야지” (속마음 : ;;;;;;)


“그래 그럼 나중에 좋은 의사가 되렴”


“바바이”



좋은 의사... 의사가 될 기회는 오려나... 과연? 이렇게 보잘 것 없어진 나한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 이런 생각은 말고 집에 가서 몸이나 좀 쉬자.”


아픈 몸부터 일단 보살피기로 결정했다.



일주일동안 몸살이 낫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수업시간에 앉아있는데도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엎드려 있는 일이 잦았다.


몸에서 열이 계속 났다.



목요일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동네 병원에 가서 약을 타던 중이었다.


진료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엄마가 나타났다.



“약만 타 먹어봤자 병은 더 심해지잖아.”


“원래는 이거 감기약도 타면 안 좋은데...”


(이 때는 감기약 타는 게 건강에 안 좋은 줄 알았다.)


“병을 계속 방치해 둘 거니? 동네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어.”


엄마는 계속 나를 설득했다.



“그럼... 일단 큰 병원이라도 가볼게요...”


“그래. 그럼 내일 학교로 찾아오면 그 때 조퇴하고 병원으로 가자.”



다음날.



수업 중간에 부모님이 찾아왔다.


바로 조퇴하고 이대목동병원으로 갔다.


응급실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곧이어 의사선생님이 왔다.



“척수액을 뽑아서 검사해야 합니다.”


척추 쪽에 주사를 꼽아야 한다는 말에


(그 당시 이미 판단력이 상당 부분 흐려진 상태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검사를 거부하려 했었다.



부모님 “많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한 번만 믿고 검사하자... 제발...”


부모님은 계속 나를 설득하셨다.


결국 검사에 응하기로 했다.




이윽고 몇 시간 후에


척수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이었다.


병세가 다소 진행된 상황이었다.


"치료가 시시각각 급합니다."


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다음 편에 계속...-


(갑자기 신파극이 다 되네... 뭐 쓰읍 인생에 신파 좀 있을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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