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자전거 [348586] · 쪽지

2011-03-18 21: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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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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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지난 몇년동안, 날 잉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그 친척들.



발표날은 12월이었지만, 아버지께 간곡히 말씀드렸다.



친척들에게 알리지말라고.



내입으로 직접 말한다고.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2월이 왔고, 설날이 왔다.



디데이.







깔쌈하게 블랙 정장을 곱게 입고, 큰집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안에는 큰아버지를 비롯한 사촌들이 모두 모여있다.



어느새, 인사를 가볍게 하고, 코트를 살며시 벗고, 마루에 앉았다.



식사 상이 차려지고, 고기가 구워진다.



나는 언제 카운터 펀치를 날릴지 기회만 엿보고 있다.



'XX이는..요새 모하냐?'라는 입질만 기다리고 있다.









치이익...



고기가 구워지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밥공기가 반쯤 비워질때쯤, 



역시 큰아버지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에게 슬쩍 물어본다.



'xx이는 아직도 대학못갔냐?, 입시가 그렇게 힘드냐? 요새.'











그래, 이 순간이다.



올레!



순간 나는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목을 가다듬는다.



입에 물고있던 고기를 천천히 씹고, 물을 마시며 목을 청소한다.





으음..





'저 이번에 의대합격했어요'





원래 멘트는 짧고 강해야 임팩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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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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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몇초가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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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치켜올린 눈으로 바라본 



큰아버지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눈밑에 약간의 경련까지도 나의 눈을 비켜갈순 없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드디어 한방 먹였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지아들만 그렇게 잘났을꺼라 생각했던 그가,



이렇게 한방 먹을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 의대정도면, 엥간해선 나를 버로우시킬순 없다.



대통령 할애비가 되지 않고서야.













나는 침착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아버지가 말씀안하셨나요?'



라고 말하고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고기를 집어삼켜 먹는다.











매년 그렇게 짖어대던 큰아비는 



밥그릇에 코박고 밥을 조용히 처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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