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밤에 할 짓 없어서 쓰는 반수생 반수 후기(긴글주의)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9734172
수능 끝나고 이런 글 꼭 오르비에 올려보고 싶었어요!
오르비에 계신 에피,센추님들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그래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또 어쩌면 하게 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써 봅니다ㅎㅎ
제 프로필을 보면 아시다시피 저는 서강대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그리고 반수를 하면서도 서강대학교에 진짜 가고싶었어요.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 수능을 치고 가채점을 한 후에 집안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빠, 저를 믿고 참 많은 지원을 해 주셨던 아빠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수능을 망친 저한테도 큰 상처였습니다.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수능이 끝나고, 어영부영 성적에 맞춰 대학교를 갈 때 까지만 해도 제 목표는 &'더이상 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겨 드리지 말자&' 였어요. 진짜 간신히 지거국 아주 낮은 학과에 합격을 해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솔직히 저 스스로도 아쉬움이 너무 남더라구요. 대학교에서의 삶에 재미를 찾지 못했고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딱 한달 대학교를 다니고 부모님께 정식으로 반수를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언론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대학교에서의 수업에서 도무지 미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라고요. 그렇게 말씀 드리고 나니 부모님도 너 이 시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마지못해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계속 부모님을 설득해 온 결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잠시잠깐 술로 다져진 인연을 뒤로 하고,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선배들의 뒷담화와 험담을 묵묵히 견뎌 가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5월이었어요. 대학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는 체력과 개념이다 라고 생각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시간표를 새롭게 짰습니다. 먼저 교수님들께 정중히 말씀을 드려 수업을 못 나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사탐, 수학 기본 교재(쎈), 영어 수능특강만 죽어라 파고 저녁에 운동장 10km 러닝을 하는 스케줄을 휴학계를 내는 날 전까지 반복했습니다.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룸메를 제외한 다른 대학교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워낙 유혹에 약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한 학기 대학교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로는 독서실에서의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침에 기상, 밥 먹고, 단어 외우고, 독서실에 가서 오전 열시부터 자정까지. 저녁때는 두시간을 빼 밥을 먹고 운동 한시간 하기. 150일을 잡고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면서 제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은 부모님, 그리고 카운터에 계시는 독서실 주인 아주머니 뿐이었습니다. 하루 한회 마닳, 눈썹T 강의, 연계교재, EBS사탐. 주어진 시간에 빠르게 개념을 잡고 어려운 심화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제 실력을 알고 있었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냥 작년처럼 공부 안해서 틀리지 말자. 아는것만 다 맞추고, 모르는건 틀리고 오자 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특히 제가 수학은 거의 수만휘식 노베이스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기초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또 돌아가면서 스스로 이해가 될 때까지 개념을 읽고 문제를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사실 9평을 완전히 말아먹어서 난 가망이 없구나 한 사흘 펜을 놓고 있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독서실로 돌아왔습니다. 작년같은 멘탈이었으면 그냥 와르르 무너졌을텐데, 올해는 그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냥 포기도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하루 하루 견뎌나갔습니다. 이솔루션 풀면서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처음으로 구토도 해보고, 수학의 명작 읽으면서 내 머리는 왜이리 나쁘냐면서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에서 울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고 그냥 그렇게요.
그리고 수능을 쳐 보니, 아. 작년보다는 많이 올랐습니다. 정말로.
서강대, 눈에 아른거리던 서강대학교는 조금 멀지만 그래도 최소한 논술 보러 가는데는 지장이 없는 점수가 나오더라구요.
사실 올해 수능 치면서 전 올해 망한 줄 알았습니다. 국어는 10시 10분에 종이 치는 줄 알고 여유? 부리다가 급하게 마지막 지문 훑어서 풀고, 수학은 무한등비급수 문제에서 버벅거리다 20분이나 까먹고 영어는 아예 글이 안 읽혀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풀었거든요.
근데 그 긴장되고 어려운 순간에 150일이라는 기간 동안 몸에 익혀온 그 감각이, 습관이 저를 살린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공부를 했더라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니까 마지막에 답이 보였습니다.
지난주에 서강대학교 논술을 치고 나오면서, 뉘엿뉘엿 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강대학교 사진을 한 컷 찍었습니다. 어쩌면 이 사진은 나도 꿈을 향해서 달릴 줄 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하나의 증명서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과정, 또 이후에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까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증명서.
저는 그래서, 올해 제 입시에 결과를 떠나서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 쿡 찍어주려고 합니다.
모두들,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아 그리고 이자리를 빌어 션티, 승동, 리듬농구님께 진짜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책 너무너무 잘 만드셔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ㅎㅎㅎㅎ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재수랑 현역때랑 수학이 똑같은데 원래 다들 이러니? 하나도 안 는 것 같고 나만...
-
몸져 눕고 싶다
-
심멘. 아니 학교에서 다 풀래서 어쩔수 없이 푸는데, 진짜 경기체가 같은거 풀때는...
-
오늘자 서점가서 직구로 사온 미적적분님. 9모 이후 통통이로 노선 바꿔서 뒤져버린...
-
시티팝 민희진풍으로 잘 끓임 우울감 치료된당...
-
집중의 감각 0
오늘 시험볼 때 진짜 엄청 집중했었음 온몸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움직이지 않은 채로...
-
해설강의 보면 이미 뉴런 다 듣고 왔다고 전제하고 푸시는거같은데 걍 눈치껏 알아들어야 되나 흠
-
한번씩만 투표해주세요 안가람장재원쫑느박종민강기원시대인재시대대성김범준김기현현우진뉴분감자퇴
-
또 메리트가 있을까요
-
보닌 음주 중 5
수제 와인
-
일단 고3현역 정시파고 수학은 잘보면 4 보통 5나옵니다. 지금까진 수학이 딱히...
-
좋은 노래 2
https://m.youtube.com/watch?v=oRJBwaZ59fQ&pp=yg...
-
지금 취침하셔야합니다 25
-
정작 실검 검색하면 아무 내용도 안나오는데 왜 순위권인가요
-
난끝까지 중립기어
-
다 술마시러 갔냐?... 에휴
-
다른사람은 네 불행에 좆도 관심이 없다
-
하입보이 쿠키 어텐션이 2020년초부터 있었다고?? ㄷㄷㄷ
-
자연지리 지구과학 연계 지렸다...
-
서울대 목표 반수 드가말아..?
-
심심해요 1
재밌는거업나
-
학원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게 확실히 도움이 되나요?
-
메가는 레전드야 1
수많은 표본을 가지고도 국수 등급컷 매년 틀린 갓 22 미적기하 1컷 84 실제...
-
더프 문제가 절대적 피지컬 올리기엔 좋은 거 같아서 쫘악 풀어보고 싶은데 방법없을까여..
-
아가취침 8
ㅇㅇ
-
어둠의 방구석 반수쟁이 10 빨리 발 닦고 자세요. 2
0427 오늘 아침에는 컨디션이 많이 호전되었다. 주섬주섬 일어나서 도서관을 또...
-
기하 재밌네 2
근데 딱히 수능으로 치고싶진 않음..
-
2단원 트랜지스터,축전기까지만 들어가나요?
-
공부 끝나고 밤에 집에 오면 아빠한테 힘들었던거랑 막막한거랑 우울했던거...
-
이건 좀 많이 바꾼듯요.
-
젤다는 신이야
-
사람 잘 안 변하는 듯 나 봐봐 폰 안 한다면서 박살낸다던 애가 지금 12시간 동안...
-
ㅠㅠㅠ
-
영어 고민 0
작수 4나왔고 현재 신택스 알고리즘 완강했습니다 근데 문제를 풀면 23, 24번...
-
본인이 과외 안하고 매일 큐브 등으로 뺑이치는 이유 4
아직까지는 사회성이고 실력이고 나 자신이 나에게 만족할만큼 발전한거 같지가 않아서...
-
사회문화 질문 8
A 질문지법 B 면접법 ㄱ. 질문지법은 양적 연구에 주로 활용됩니다. 방법론적...
-
요즘 과외 댕기는거 빼고 백수라서 심심함
-
. 1
굿나잇 뽀뽀 쪽
-
굳이굳이 지금 사회 주목 1순위인 민희진을 건드는 이유가 뭐지ㅋㅋㅋㅋ 건들 이유도...
-
강기분 듣고 바로 새기분 넘어가면 6모 전까지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강기분...
-
그러니 여러분200일남았다고쫄지마세요
-
승룡이님 3
작년에 계셨던 승룡이님 어디가셨는지 안밝히고 떠나셨나요
-
5명이나 친구가 있다고요?
-
으아아각ㄱㄱ
-
진짜 마음이 너무 급함 사람이 살다보면 재수도 할 수 있지 난 죽어도 현역으로...
-
앱스키마 1
국어 아직 수특 시작을 안했는데 앱스키마랑 ovs랑 병행해서 지금시작해도 될까요?...
-
작년 입시때 수시로 성대 논술 응시했고 불합해서 정시로 타대학 다니고있습니다 이거 뭘까요..?
-
빈칸 순서 삽입에서 개박살나서 83점 뜸;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수고많으셨어여 ㅎㅎ
꽃길만걸으시길
모두 꽃길만걸읍시다⭐️
우와 진짜bbbbbb 대단해요!!반수면 재수생보다 챙길거도 많구 유혹도 많앗을텐데 진짜 수고하셨어요
아니에요! 저보다 고생 많이한 사람 수두룩빽빽할거에여... 무한님도 고생많으셨어요!
사진 잘 찍으셨네요!
저도 정시 서강대 비벼볼 생각인데 같이 붙어봅시다~
저는 정시로는 무리고 논술이라도 친거에 만족하렵니다ㅎㅎ
같은 반수생으로써 정말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서강대길만 걸으시길
수고 하셨어요..내년에 만날 수 있기를..
좋은글 감사합니다! 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