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수능 이별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9640194
수능 이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솔직히 아무 느낌 없었다.
이제야 좀 후련하더라.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수능수능수능,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던 그 수능.
작년까지 여운이 남길래 그러려니 했다.
3년 시험 봤으니 3년동안 여운 가는 게 당연했고
작년에는 고3 과외까지 맡았으니 더더욱 그럴만 했다.
작년을 끝으로 과외를 그만두고부터는
일부러 입시판을 멀리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과거에 했던 일을 되돌아 보기 보다
현재와 미래에 해야할 일에 집중하기 원했다.
주변에 수능치는 친척도 지인도 없었기에,
수능과의 이별은 꽤나 완벽했다.
나의 일방적 통보이긴 했지만
나름 이 정도면 괜찮은 이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잊히듯이,
수능은 점점 내 의식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오늘, 그 날 밤의 기억이
나를 4년 전으로 다시 데려갔다.
그 지긋지긋한 수능이란 놈이 다시 나를 찾아와서
기어코 또 내 등을 툭툭 쳤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지나가길 바랐는데.
4년 전 오늘, 딱 이 시간이었다.
나는 수능 시험 때마다
수험표 뒤에 번호를 빼곡히 적어왔다.
에이, 그거 적을 시간에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야지,
했지만
그거 적는다고 틀릴 문제 맞추고
맞출 문제 틀리는 건 아니었다.
괜히 찝찝하게 답을 기억해내려고 애쓰기 보다는
내 손으로 직접 써온 숫자를 믿는 게 더 편했다.
특히나 재수 삼수 때는 불안과 불확실함이 커서
이런 자잘한 가답안 쓰는 것으로라도
불안을 달래야했다.
어쨌든 재수와 삼수 때는 가답안 채점을 꼭 밤에 했다.
지난 수험생활을 정리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불성실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다가올 미래에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아들에게 고기를 푸짐하게 먹이고 일찍 들어가 주무셨다.
드디어 혼자가 됐다
적막이 흐르고 풀렸던 긴장이 다시 내 몸을 쪼여왔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컴퓨터 책상에 앉아 수험표 뒷장을 펼치고는 거침없이 채점해나갔다.
다 매긴 가채점표를 봤다.
저번보다 잘봤네, 설마 틀리게 매긴 건 없겠지?
또 눈알 돌리며 비교해본다.
재검토까지 완료했다.
"끝났구나. 또 끝났구나. 벌써.. 끝났구나.
이제 정말, 끝나겠구나."
그렇게 정말로, 내 수험생활은 끝이 났다.
물론 논술도 보고 정시원서도 썼지만
더 이상 입시를 위해 수능을 보는 일은 없었다.
왜 이 밤에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모르겠다.
왜 수능이란 놈은 아무 생각없이 일찍 자려고했던 나를 건드려 글을 쓰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건 확실하다.
수능이 섭섭했나보다.
느닷없이 이별을 고한 내가 미웠나보다.
수험생활을 정리했던 그 날 밤처럼
수능과의 만남을 정리해야 하는 밤인가보다.
그래야, 이 길고 질긴 인연도 끝나나보다.
언제 다시 볼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 놈을 찾을지, 이 놈이 나를 찾을지
그것도 모를 일이다.
오늘만큼은 용기내어 말해야겠다.
"너 때문에 노력을 알았노라고,
너 때문에 뭐든지 끝이 있는 법이란 걸 알았노라고,
너 때문에 나 지금 여기 서있노라고."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ㄹㅇ
-
강e분vs듄탁해 0
독서는 강민철 타고있고 문학은 김상훈 타고있는데 강e분이 좋을까요 듄탁해가...
-
자러갈게요 2
흐흐흐 지로함풀다 머리 터지겠어 슈슈슈슈퍼노바
-
맨날 공부하는 지금 일상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애들 지내는거 보고나니 지금 너무...
-
오르비언이 탈릅하면 먼저 가 있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가 있다 13
난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
개념+N제 0
수시러라 개념강의 못듣고 바로 기출 시작했습니다 이번달 안에 수분감 끝이라 방학...
-
안 자?
-
쌈무나보고가라 1
-
. 1
굿나잇
-
료 처음엔 별로였는데 10
뭔가 그 남성느낌나는여캐 이런거 넣는거 안좋아해서 별로였는데 볼수록 그쪽보단 그냥...
-
6모 본 뒤 이제 한 달 그리고 반이 조금 넘어가네요.. 정승제T 커리 따라가고...
-
검색해보니 다양한걸 배운다고 되어있는데 얕게 배우면 자격증같은거 따거나 취업할때 불리하지않나요?
-
04,05 level 3 개씹괴랄한데 저만 느끼는 거 아니죠? 제발요 그렇다고...
-
나두 동생 14
귀여울거같은데...
-
. 1
나중에 어떤 사람과 행복하게 지낼까 지금은 뭔가 아무도 없음 곁에 진짜로 다 차단함...
-
7덮 결과 0
국어 98 수학 74 영어 3(77) 물리1 92 지구1 91 영어야 시작한지 오래...
-
덕코 갈취하면 뎀
-
왜그러지
-
다 열공함
-
평가원 기출만큼 맛도리인 지문이 없음 그냥 무지성 문풀에 집중하다기보단 지문 하나...
-
지인선 n제 핀셋 4점모고 강대 서킷 이해원 n제 부스터 n제 이렇게 해보려는데...
-
1주일동안 한거 2
시발점 수2 처음부터 속도 가속도 앞 까지 복습 쎈 처음부터 삼사차함수 근의 판별?...
-
그게 나야 바 둠바 두비두밥~ ^^
-
중에 ㄱㅊ은거 뭐 있나요?? 킬캠이랑 빡모 풀었어용
-
하루 9시간 이상 공부하면 주말에 엘든링 한시간 9시간 넘은 분량은 넘은 시간의...
-
지구 천체에서 0
풀이가 지름길이 아니라 여기저기 우왕좌왕하는 건 어떻게 고치나요? 양치기하면서 눈에...
-
고2 지방 일반고 정시파이터 (6모:22311) 입니다 그냥 인강듣고 혼자 할수도...
-
영일만 좋나여 1
3모때 운좋게 2뜨고 점점 영어가 하락해서.. 영일만이랑 마더텅 병행하려고 하는데 괜찮아요??
-
개땡기네 주말에 실천하러 감
-
우울해서 너무 쓰기 싫다..........
-
어디까지 내려가니
-
병원가기 귀찮아서 그냥 계속 안가고있는데 자제력 떨어진게 느껴지네 여름방학 시작하면...
-
ㅈㄱㄴ
-
내가 이렇게 못하는줄 몰랐음 겸손한 자세로 공부하게됨
-
2학기 때 언매 해야 하는데 특징 같은거 설명 해 주실 분?
-
탐구.. 작수 물과탐 5050 올해 멸망하다
-
서킷 맛있나여 7
요즘 서킷 좋다는 글이 많이보이네… 구해다 풀어볼까
-
이미지메타 “시작” 23
제 이미지 써주시면 이미지 써드림요
-
이번 25학년도 QED 난이도 좀 내린다그러던데..공통은 6주 커리밖에 안돼서...
-
갈 때가 된건가
-
심심해요 20
-
사람이 계속 바뀌는것 같지만 다 같은 사람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거지 그걸 나만 모르는거고
-
종익쌤에서 어준규쌤으로 갈아탈라 하는데 들어보신분? 한강 들어보니깐 체화는 훨씬 잘되는 느낌이라서요
-
어 존나 충분해 공부만 해라
-
난 이게 공통중에 goat난이도 같음 이건 진짜 못풀겠음;;
-
수학80~84정도 나오는데 미친듯이 양치기해서 92만드는거 8
가능하려나.. 수학이 진심 고비임
-
전생에 누구였을지 전혀 모르겠다
-
한완수 수분감 0
정시 준비 하는 고2입니다 한완수가 원래는 공통 상-중-하 미적분 상-하 이긴한데...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