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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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생각이 나는 것은 그 것뿐이다.
초가집과 같이 허름한 집 앞에 나는 누군가와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 나지 않는다.
그 때 였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날아온 것은.
무엇인가 큰 물체가 내가 있는 곳에서 1m정도 떨어진 있는 짚 사이로 낙하했다.
무게도 무거운 모양이다, 툭 하는 소리가 났으니까.
하지만 다들 한 번 힐끔 보고는 다시 제 할 일을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때, 미묘하게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내 고막을 울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게 뭐지?"
짚 근처로 다가갈수록 지지직직, 뭔가 불타고 있는 소리가 좀 더 강렬해진다.
호기심이 가득한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점점 그 쪽으로 다가갔다.
멀리 있었던 나와 함께 있던 그 누군가는
"폭죽일거야."
라고 했지만, 난 눈 앞에 가까이 보이는 그 선명한 물체 앞에 사고가 정지 되는 것을 느꼈다.
까맣고 동그란 볼링공 같은 구, 긴 심지는 이미 반이나 불타버렸고, 불꽃은 남은 반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폭탄'
일단 피해야겠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북한?' 이라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움직임을 멈춘 내가 이상한지 멀리 있던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이 이쪽으로 오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난 소리치면서 그들 쪽으로 뛰었다.
"폭탄이야, 피해!"
기억나는 장소는 그 초가집 같이 허름한 장소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당시 내 눈에서 봤을 때는 폭탄과는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였고,
숨을 곳은 그 곳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빠른 속도로 들어가 집 속의 마굿간 비슷한 곳으로 들어가 최대한 웅크리고 엎드렸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두려웠다.
이제 몇 초 뒤면 나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것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폭탄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이 집까지 덮칠까?
운 좋게 살아날 수 있을까?
죽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이미 짚 속에 파묻혀 엎드린 그 순간부터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작은 집의 마굿간 따위,
산산조각 나서 흔적 조차 남지 않을거라고.
정말로 마지막 순간에는 한 가지 생각만 들며 속으로 외쳐댔다.
'죽기 싫어, 살고 싶어!'
사실 난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죽음관은 뚜렷이 있는 편이었다.
죽음관에 관련하여 쓴 소설도 있었고, 중고등학교 학교 신문에 실린 적도 있다.
나의 죽음관은 한 마디로 '無' 였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천국-지옥 그런 것조차 없다.
어쩌면 살아있는 것보다 더 괴로울지도 모른다.
영영, 이승에서 살았던 그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혼자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멍청한 도망자'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승이 힘들어서 죽으면 편해질 것 같지?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아, 죽으면 더 괴로워질지 누가 알아.
누가 죽으면 편해진다고 얘기해준 적 있어?
그건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들의 생각일 뿐이지.
괴로운 일을 당하다가 죽은 사람이 차라리 편안해보여?
웃기지마. 그건 죽은 육체가 편안해보이는건지 어디로 떠났을지 모르는 그 사람의 영혼이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 죽음은,
나에게 그대로 찾아왔다.
살고 싶다는 생각만을 속으로 외쳐대며 공포에 떨고 있던 나는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찰나의 괴로움과 함께
내 앞은 칠흑같은 어둠으로 변해버렸다.
'설마' 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인데,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리가 있어?
하지만 없었다.
신경? 그런 건 느껴지지조차 않았다.
심장의 뜨거움?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했던 데카르트가 생각났다.
그래, 데카르트. 넌 이승의 사람일 뿐이지.
그는 틀렸다.
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최악이다, 그 느낌은.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눈이라는게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주변은 모두 어둠 뿐,
그 공포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고
난 내가 여기에 혼자라는 사실만을 인지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그리고 이 때서야 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제까지 뭘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건 꿈일거야. 이렇게 죽을리 없어-
하지만 진실은,
죽을리 없어- 라는 생각보다는
정신적인 괴로움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합리화를 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외칠수도, 움직일 수도 없이 그냥 정말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소름끼치는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누가 나를 이 공간에서 구해줘.'
그건 말그대로 생각뿐이었다.
끔찍했다, 그 죽음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건 꿈일거야, 진짜 내가 죽었을 리가 없어.
그래서 나는 내 몸과 연결하는 어떤 신경이라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
그런건 없었다.
정말 철저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일지 모르는
고독과 어둠속에서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눈 앞이 하얗게 바뀌었다.
그리고, 어떤 첨단 센터와 같은 것 안에 나는 들어와 있었다.
입구에는 안내데스크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커다란 LCD가 달려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는 아니었다.
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저 공기의 흐름대로 실려갈 뿐이었다.
센터는 영화에서 봤던 미래세계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깨끗했다.
이건 그림으로 그려야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뭐랄까, 영화 AI에서 마지막에 미래인들이 살고 있던 그런 곳- 과 비슷하다고나 해야할까.
나는 통제의 자유를 잃었고
그저 센터 앞에 있다가 이동당했다.
센터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였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곳이 저승이구나.
이 센터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구나.
하지만 길이 하나 뿐이여서 어줍잖게도 든 생각은
저기로 들어가면 지금까지 죽었던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천당,지옥 이런건 역시 없는거군. 이였다.
하지만 입구로 들어가기 전 무슨 시스템이 움직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그렇다고 천당,지옥 이런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랜덤이었다. 제비뽑기 해서 아무데나 쳐 넣는 느낌이었는데
그 들어가는 장소는 하나이지만 안에 공간은 똑같은 곳이 여러 곳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마치- 호텔 안에 방은 여러 개이지만 모두 다 똑같이 셋팅된 방인 것 처럼.
나는 그렇게 내 의지가 아니게 어느 곳에 들어갔다.
많았다.
정말 많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느낌으로 알았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움직이면서도 많은 사람들과 부딪쳐야 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생각으로서 이동시켰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완벽한 영혼체. 팔 다리도 없는, 동그란 기운만으로 되어있는 그 영혼체가 바로 나였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든 영혼들이 그랬다.
끔찍했다.
무의 공간에 이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이런 세계.
아니야, 나는 죽지 않았어.
이건 정말 꿈일 뿐이야.
내가 죽었을리가 없잖아.
연보라색 천장과 새하얀 바닥을 보며 나는 이 끔찍한 이질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생각으로 몸부림쳤다.
내가 생각해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나는 무엇 하나 내 의지대로 할 수가 없다.
답답해,
내가 죽었을리가 없어.
이게 꿈이라면 난 깨어날 수 있을거야.
싫은 꿈에서 억지로 깨어나려고 노력해본적이 몇 번 있다.
그 꿈은 최악이고, 그 노력 역시 말도 못할 최악이다.
그 느낌이 너무 싫은데도 불구하고, 난 이 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다보면 이 꿈에서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팔다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이 곳에서 깨어날 수가 있겠어,
그리고 이미 나에게는 공포 이외에는 아무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꿈이야, 깨어날 수 있어'
라는 말을 기계처럼 반복했다.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정말 꿈인데 깨어나기 위해서 별짓을 다하는 것은,
그러니까 뇌가 자고 있는데 몸을 움직이기 위해 별짓을 다하는 그 미친 짓은
몇 번을 죽는 느낌과 같다.
모든 몸을 움직여보려고 애를 쓰고,
이 꿈은 거짓이라고 부정하며
빨리 현실로- 내가 어디에서 자고 있고 누구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어쨌든 현실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계속 하는 것.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참을 노력해도 되지가 않았다.
분명 이건 꿈인데,
일어날 수 있는데,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안되니까
그 숨막히는 기분이란.
나는 내 꿈속에 갇혔다.
영영 깨어날 수 없다.
꿈 속에서 조차도 이승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실일지도 몰라.
이 생각과 동시에 나는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미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생각조차 나지 않고
앞으로 무수한 영겁의 시간을 어떻게 이 상태로 버텨야하는거지
염라대왕? 저승사자? 그런거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와도 말이 통하지 않고, 영혼들과 함께 있어도 소통하지 못하는 그 혼자의 지독한 외로움.
하지만 끝까지 노력해보기로 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꿈 따위, 언제나처럼 부수어주겠다며.
그리고 한참 걸렸다.
내 손가락과 발가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여, 제발 움직여, 난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뭔진 모르지만 제발 움직여.
그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꿈과 현실의 중간점이다.
뇌와 신체가 분리된 느낌,
아 그래- 식물인간이 이런느낌일까?
늘 느끼지만 이런 느낌, 끔찍하다.
이걸 가위라고도 부르겠지만,
난 내가 가위에 눌리는게 아니라 내 스스로를 가위에 눌리게 한다.
뇌는 쉬고 싶다지만, 난 이런 꿈을 꾸면서 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몸은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마비되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집중을 해서 움직여본다.
마침내 손가락 하나가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게 아니다.
그 움직였던 손가락 하나는 다시 마비된 듯 돌아오고,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움직여져도 난 계속 꿈속에 있다.
꿈의 종결은 눈을 뜨는 것이다.
하지만 눈은 쉽사리 떠지지 않는다.
속은 답답해서 죽을 것 같고, 이 꿈과 현실의 중간 단계는 엄청난 괴로움을 선사해준다.
내 정신은 깨어있어, 하지만 내 육체는 죽어있지.
오늘도 눈을 뜨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을 쳤다.
꿈이니까 일어나야돼 일어나야돼 일어나고 싶어 더 이상은 싫어
난 죽기도 싫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기억해내고 싶어,
이게 꿈이라면 반드시 난 깨어나야해
그리고 엄청나게 오랜 시간의 혈투 끝에 나는 눈을 떴다.
언제나처럼 집, 이불 위.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의 공간에서 빠져나온 느낌.
살았다- 싶으면서 꿈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죽는 그 순간의 느낌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죽은 후의 느낌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한숨을 쉬자마자 억지로 들었던 눈꺼풀은 다시 감겨져온다.
불가항력이다. 손발을 움직여서 다시 깨어나려고 애를 썼다. 이미 반쯤은 다시 잠든 것 같다.
이 때면 그 끔찍한 기분은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꿈속에서 난 정신이 깨어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를 생각할 때와
현실에서 난 정신이 깨어있는데 몸이 잠들려고 해 를 생각하는 것은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내 뇌가 불쌍하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치 이대로 다시 잠들지 않으면 뇌가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오늘은 안된다.
몸이 완벽히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머리만 깨어나서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다시 눈을 감으면 다시 그 말도 안되는 존재가 되어 무의 공간으로 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눈이 떠지지가 않아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발에 억지로 힘을 주고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손발을 움직였다.
완벽히 깨어났다.
현실이다.
나는 죽지 않았다.
현실로 돌아오니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가 죽을리가 없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 될 일이었다.
하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끔찍했다, 그 느낌은.
그래서 절박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고통은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이렇게 깨어나고 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진 채 일기만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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