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제 실패를 예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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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 섞인 다짐글입니다. (심지어 길기까지..!) 보기 싫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오늘 문득, 그냥 아무 이유없이 학교에서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나 올해 실패하겠구나.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로 나는 이미 실패한거나 마찬가지구나..
저는 작년 여름쯤에 오르비를 처음 알았어요. 6평이 막 끝나고 여름방학, 수시원서접수, 9평 그리고 수능, 정시 발표, 최종 추합 발표까지.. 고2였던 저에게는 그저 남 일같던 입시판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사례들을 봤어요.
매일같이 오르비에서 글 쓰고 댓글 다시던 분들, 모의고사 끝날 때마다 너무 쉬웠다고 불평하시던 분들이 수능 끝나고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기도 했었고
수능 끝나고서야 가입해서 라인 잡는 글 몇번 올리신 분들이 한동안 또 안 나타나시다가 몇달 후쯤 당당하게 xx대학교 학생이라며 질문 받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그 밖에도 ebs만 맹신하다가 망했다, 담임 말 듣고 원서 썼다가 재수한다 등등 정말 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수험 생활에 대한 감을 잡고 원칙을 세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3월이 되면서 핸드폰도 없애고, 오르비도 끊고 실제로 그 때 세웠던 원칙대로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 한 시간 일찍 등교해서 제일 먼저 교실 문열고 자습하고, 수업도 필요한 것만 듣고 모조리 자습하고 쉬는시간 점심시간까지 아껴가면서 야자까지 꼬박꼬박 했어요. 그랬더니 4월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더라구요.
이 때 일기장에 그렇게 썼던 기억이 나요.
평가원도 아니고 사설이다. 방심하지 말고 겸손하자.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만 생각하고 끝까지 열심히 하자.
오르비에서 어깨 너머 배운 수미잡이 나름 영향력이 있었는지ㅋㅋㅋ 실제로 이 때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이러다가 서울대 가는 거 아니야? 라면서 망상은 좀 했지만..
그런 상태로 6월 모의고사를 봤어요. 3,4월은 편하게 봤는데 이 때는 사실 긴장을 많이했어요. 내신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 이번 시험을 잘 봐야 원서를 좀 당당하게 상향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4월을 잘 보고나니 학교에서도 좀 기대를 하기도 했고, N수생들이랑 같이보는 첫 평가원 시험이라는 생각 등등 다양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마음 한켠으로는 열심히 했으니 잘 볼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결과가 처참했죠. 일단 국어에서부터 당혹스러움에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고, 거기서 한 번 말리니까 수학도 두번째 장에서 말도 안되는 실수하고 탐구까지 망하면서 3년 통틀어서 제일 낮은 점수였어요 ㅋㅋㅋ 등급은 당연히 더 처참했구요. 수미잡이고 뭐고 다 잊을 정도로 그냥 멘붕와서 4개월만에 접속한 오르비에는 기만러들이 판치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ㅋㅋㅋㅋ
그래도 3,4월에 썼던 일기장이랑 다짐글 보면서 애써 마음을 잡긴 했는데, 다른 것보다 이 때 자신감이 너무 떨어졌던 것 같아요. 원래 상향하거나 안 쓰려고 했던 수시는 생각도 안 해본 대학까지 내려 쓰겠다고 담임쌤께 가져갔다가 괜히 혼만 나고.. 결국 이 때의 슬럼프가 여름방학 때까지 이어지면서 공부를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애매한 시간들을 보냈어요. 덥고 지치기도 했지만 공부 제대로 안하는 제 자신에게 화나는 감정이 제일 컸어요.
이렇게 대충 보낸 여름방학 이후에 받은 7월 모의고사 성적표는 더 심각했어요. 심지어 이때는 한 과목을 밀려써서 5등급인가 나왔어요.ㅋㅋㅋ 그러면서 경각심은 안 느끼고 아 이건 사설이니까 괜찮아..라고 또 위로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이 때부터 사실 거의 마음을 비웠던 것 같아요. 어찌어찌 공부를 하긴 했는데 열심히 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 와중에 계속 열심히 한 애들은 슬슬 성적이 오르는 게 보였어요. 오르비에서 아무리 비효율적이라고 까이던 인강이나 학습법이라도 꾸준히 한 애들은 성적이 오르는데, 그런 거 머리로만 실컷 알고 실천도 안한 저는 계속 제자리였죠. 점점 저를 향했던 기대는 다른 아이들에게로 돌아갔고, 부럽지도 않았어요. 당연한 결과였으니까요.
이 때 사실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혼자 쓰는 1일 독서실보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다인실을 더 좋아했고, 친구랑 같은 학원을 다닐 때 평소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편이었어요. 겸손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사실 시험을 잘 보면 점수를 자랑하고 싶었고 칭찬받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노트 필기를 예쁘게 하는 것도 좋아했구요. 저는 이게 단순히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나는 남에게 보여주기식 공부를 하고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되게 막막하고 답답했어요. 잘못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고, 너무 늦어버렸나? 는 생각에 조급해졌어요. 근데 어쩔 수 없었어요. 그냥 하는 수밖에는.. 보여주기 식이든 아니든 어떻게든 그냥 앉아서 하는 수밖에는 없었죠.
그런 상태에서 반신반의한 상태로 본 9월 모의고사는 6월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제 기대만큼은 아니었어요. 전교 등수는 10등 안팎이였고 그냥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기할 정도는 아닌데 더 오를지 자신이 없었어요. 9월을 보고 나서도 한참을 또 수시 쓴다 어쩐다 하면서 날렸네요.
그리고 또 별 생각 없이 보내다가 오늘 잊고 있던 성적표를 받았어요. 제가 생각했던 등급과 비슷했고 저도 모르게 뭐야, 이정도면 괜찮네- 라는 생각을 하는 제가 한심했어요.
3,4월에 열심히 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자심감 없이 현실이랑 타협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이 정도면 어디 갈 수 있나 찾아보는 모습이 작년에 오르비에서 반면교사로 삼자던 분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서 허탈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이 글을 쓸 시간에 단어 하나 더 외우고 문제 하나 더 푸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보여주기식으로 사는 건 못 고쳤나봐요. 이젠 저한테 기대를 거는 사람도 없고 저마저도 제 자신에게 별로 믿음이 없어요. 그깟 모의고사에 흔들리는 멘탈로 남은 기간 잘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 해보려구요. 3,4월 두 달 동안 죽어라 해서 전교1등도 해봤으니 남은 50일 가량도 되든 안 되든 해보려구요. 아까 나 실패하겠다, 는 생각 들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후련했어요. 그전까지는 인정 안했거든요. 그래도 꽤 열심히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 운만 받쳐주면 잘 될 것 같은데.. 라면서 애써 위안했었는데, 오히려 이런 마음이 독이였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남은 50일 동안 정말 열심히 한다면 저는 그 실패 받아들이려고 해요. 남이 뭐라든 처음으로 신경 안 쓰고 제가 제 결과에 만족해보고 싶어요.
다시 오르비 끊고 초심으로 돌아갈게요.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읽은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별로 상관없어요.
그냥 제 자신한테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혹시라도 읽어주셨다면 남은 기간 같이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냈으면 좋겠어요..! 수능 끝나고 봬요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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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인데 생각이 참 깊네요 저는 작년 4월에 국수영 삼백맞고 자만해서 수능개털렸어요 선생님들 친구들에게 보여주기식 공부도 많이 했구요 그래서 올해 재수하네요 저도 작년에 님처럼 수능보기전에 그런걸 깨달았으면 좋았을걸 싶네요 님은 그런걸 이미 깨달았으니깐 수능때 꼭 대박나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