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ha [441451] · MS 2013 · 쪽지

2016-08-24 23: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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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오르비언 부탁으로 올리는 홍대 미술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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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간 따끈따끈한 홍미전 (졸업전과 다름) 후기



-정신나간 스크롤과 만연체에 주의하시오

집에서 무려 15정거장을 넘게 가서 겨우 도착한 홍입.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너무 늦게 나와서 저녁을 먹든지 행사를 늦든지 선택을 하게 되었고 당연히 밥을 선택했다. 서브웨이에서 나름 도시사람처럼 쿨하게 주문을 하는데 내 촌티를 기가막히게 파악한 점원은 나를 보지도 않고 주문을 받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길고 다채로운 주문을 토씨하나 안틀리고 기억한 것.
"멜트 세트, 데우고 할라피뇨랑 피망빼고 소스 기본에 초코칩쿠키에 포도 환타요."
솔직히 포도 환타는 실수하겠지 싶어서 던져본건데 역시 도시의 알바는 내 치졸한 복수극을 말살해버렸다.
엄청 잘 기억하시네요 했더니 마치 '니가 사는 촌동네의 기준을 선진 한국 문명의 근원지 홍대입구에 들이대지마라'는 식으로 씩 웃더라. 몹시 마음이 아팠다.

알바는 결국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샌드위치를 주었다. 나는 한켠에 앉아 내 상처를 핥으며 도시인처럼 스마트폰에서 워싱턴 포스트를 읽으며 샌드위치를 넘겼다. 이탈리아에서 지진이 났다. 내 시골마음도 지진이 났다.

안암이 맛의 무덤이었다면 홍대는 길찾기의 무덤이었다. 역시 도시의 대학은 시골 나그네의 여정을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진 않았다. 나는 현지인을 붙잡고 신축강당을 찾아달라 하여 그분은 자기도 간다며 바래다 주었다. 차가운 도시민심에 한줄기 매화같은 존재였다.

전시장에 들어가자 다들 맥주병을 찰랑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와인 들고있었으면 영락없는 사교파티였을 것이다. 셔츠에 단정하게 입고온 인간은 나뿐이었다. 역시 도시의 옷차림은 시골 청년의 그것으론 감당할 수 없었다. 여자분들 옷도 남사스러워 나는 괜히 작품들을 더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그들과 섞여들기위해 맥주를 한병 집어들며 뭐라도 안다는양 끄덕이며 작품을 보았다. 확실히 실기에 강한 홍익대였다. 솔직히 이거 중앙박물관에 걸어놨어도 그러려니 했을 것 같다. 미개한 교양없는 경영학도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보며 '그림이 얼마하냐'라는 질문이라도 던져보았으나 예술가들은 '팔지않는다'라며 단호히 소심한 경망둥이(서울 모 대학에선 경영학과 학생을 경망둥이, 망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 흥정을 잘라버렸다. 사필귀금의 마인드인 망둥이가 감히 어림잡을 수도 없는 멋진 대답이었다. 그래서 망둥이는 또다시 자신이 이방인임을 느끼며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언젠간 그 화가의 그림을 꼭 자기 방에 걸어두리라 다짐하면서.

아무튼 그렇게 돈만 세는 학과공부에 매마른 교양과 인문인문함을 채워넣은 후 본격적으로 사람구경을 하였다. 마침 진행측에 아는 도시인이 한 명 있어 그를 따라다니며 홍대 문명인들의 생활습성을 연구해보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이들 도시인들은 진화한 신체 덕분인지 더위를 타지않는듯했다. 미개인은 부채를 팍팍 부치며 연신 더위를 한탄했지만 주변의 문명인들은 부채를 살랑이며 마치 패션소품처럼 쥐는게 아닌가. 마치 내 부채가 장터 보부상의 부채였다면 이들의 부채는 제갈공명의 학우선이었다. 역시 이들의 수준은 압도적이었다.

아무튼 후원한 15,000원이 아깝지 않게 맥주도 두병 마시고 (이들 도시인의 행사엔 맥주 회사들이 나서서 후원도 해주었다) 샴페인이라는 머나먼 나라의 술도 한모금 홀짝여보았다.

후원자라고 하니 진행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매우 밝아지며 스티커며 에코백이며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분명 앞에 가격표를 본 나였기에 혹시나 어느 나라마냥 손에 팔찌를 감아주고 돈을 요구하듯 주고 돈을 받는건가 싶어 확인했으나 그대로 주는 것이었다. 도시의 인심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외톨이 시골청년을 동정하여 주는 파격적 서비스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경영학 법칙에 이득은 닥치고 취하라고 써있기에 나는 냉큼 받아들었다. 나의 총자산 가치가 증가하는 것 같아 기뻤다.

경품을 뽑기로 지급하기로 하였다. 처음 몇개의 상품이 다 주최측이나 그들과 아는 사람들이 걸리기에 역시 촌놈은 도시사람의 놀이에 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비통한 마음에 표를 찢으려 했으나 무슨 조화인지 만원짜리 문구 상품권에 당첨이 되었다. 나는 즉시 속으로 계산을 돌렸고 최종적으로 에코백+스티커+맥주 두병+샴페인 한잔을 5천원에 구매했다고 결론지었다. 엄청난 이득임에 분명하여 나는 구석에서 혼자 낄낄거렸다. 내가 홍대 문명인들의 본거지에서 이득을 본 것이다! 야호! 역시 안암촌놈이 홍대 문명인의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금요일 이른 오후까지 한다니 (무료다) 구경해보자. 문명인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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