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ha [441451] · MS 2013 · 쪽지

2016-07-13 23: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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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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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곳 저곳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여름엔 고개를 남쪽으로 돌리지 말라' 라는 말을 우스개처럼 하곤 한다. 동장군은 떠돌이 영혼을 당해내지 못하지만, 하(夏)장군은 아마도 역마 그 자체도 능히 막아내지 않을까.
우스개가 진리라는 골자를 담아내든 말든 7월 중순에 무작정 부산으로 떠난 것은 어찌보면 그만한 타성이 긴 방학을 적시고 있다는 것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떠돌이는 으레 각종 이동수단에 능통한 법이나, 이 떠돌이는 어쩌다보니 인생의 첫 한국 고속철 탑승을 이때 해보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름 딴에는 여행깨나 해보았단 주제에 실은 촌놈이었던 것이다.
전날 맥주 한두잔을 걸쳤더니 몸이 피로했는지 앉아서 눈을 감았다 뜨니 이내 부산역에 열차가 접어들고 있었다. 덕분에 언론이 떠들어대던 열차의 우수함은 체험하지 못해 유감이었다. 오전 8시 반에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가 11시 10분에 부산역에 들어오니 꼬박 2시간 40분이 걸린 것이다. 3시간, 서울과 부산과의 거리는 겨우 3시간이었다. 지척이라면 지척이다.
부산 사람들이라면 분명 부인할 것이나, 부산에는 그 기저에 항상 바다가 깔려있다. 부산역 터미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바다 내음이다. 비릿하면서도 짭잘한 이 향은 태종대에서 감촌까지 어느 곳에서건, 아주 나지막히, 심지어 은밀하게까지 느껴질지언정, 없어지진 않는다. 요컨대 부산은 바다 그 자체를 품은 곳이다.
부산에서 다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구수한 사투리다. 경상도 특유의 그 탁탁 쏘는듯한 사투리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부터 젊은 청년까지 가리지 않고 터져나온다. 사투리는 표준어, 서울말이라고 불리는 그것에 비해 정감이 있으며, 아름답다. 말에 높낮이와 장단이 있음에 그것의 흐름이 마치 한가락 노래같이 느껴진다. 때론 휘어 올라가듯이 발음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내려꺾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거리를 걷는 것이 흥미로운 일과가 되었다.
또 부산에서 볼 거리는 외국인이 있다. 으레 부산은 항만이 발달하여 다양한 배들이 들어오고, 또 이를 따라 다양한 눈과 머리색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어떤 이들은 이 낯선 땅의 짙은 해향(海香)에, 혹은 이곳의 운율감있는 언어에 반해서 한 자리를 꿰차고 눌러앉게 되었을 것이고, 이런 자리들이 한 가닥 한 가닥 엮여 차이나 타운이니 그런 이국적 장소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노국(露國)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는데, 실로 한국 어디서 러시아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볼 수 있겠는가. 노어는 굵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목 안쪽의 깊은 곳에서 이끌어낸 듯한 그런 낮고 묵직한 언어. 차디찬 겨울을 버텨내는 민족의 언어 같았다.
부산, 많은 감정이 실려있는 말이다. 누구에겐 집이며, 누구에겐 머나먼 땅에서 환란을 피해 들어온 곳이며, 또 누구에겐 새로운 시작의 땅일 수 있다. 우리도 부산, 부산 하며 가만히 읊조려보자. 너와 나의 부산은 무엇인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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