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 쪽지

2016-05-31 22: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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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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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1때인가 아버지가 연애를 한다는 걸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충격이 크셨고, 많이 외로우셨을 거다.

그런데 난 이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버지의 애인이라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지 않은가!

그래서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씀드렸다.

"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

아버지는 아직도 핑크빛 연애 중이시다.

나와 하신 약속 때문에 재혼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이상하게 느낀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행복을 막았다.

내가 무슨 권리가 있어서 타인의, 그것도 다름아닌 아버지의 행복을 망가뜨렸을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감히 누가 그걸 막을 수 있나...

내가 얼마나 속좁은 인간이었나.

"그냥 재혼하세요. 아버지."

라는 말이 쉽사리 나오질 않는다.

"재혼해봤자 입만 늘어서 쌀만 축내지..."

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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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말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큰 혐오와 공포를 가지고 있나..

나를 버린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류상으로 나와있는 이름 석자만 기억이 난다.

생일이 언제인지, 몇살인지, 가족을 버리기 전에 나와 예전에 무얼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억지로 기억해내는 게 고통스럽다.

초등학교 2학년 이전의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말해준 단편적인 정보만 있을 뿐이다.

"너가 어디를 다녔고, 그 때 너의 성격은 이랬어."

라며 사진을 보여줘도 난 기억이 없다.

내가 가진 기억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현관을 떠날 때의 기억이다.

"엄마가 서울 가서 돈 많이 벌어 올게."

나는 울고 있었다. 누나도 같이. 옆에서.

내가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서 공포와 혐오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했나.

또 내가 과거에 묶여 산다는 것을 방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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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교수님과의 상담에서, 내가 왜 과거의 기억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라서

방어기제가 발동되어 기억을 다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기억들뿐만 아니라 중3때 다시 만났던 기억도 지워버렸다.

참으로 놀랍다.

내가 어머니를 그렇게 싫어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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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때문에 나의 연애관과 이성관이 굉장히 심하게 뒤틀려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성 관계에도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이성 관계가 똥 같은 것은....

그냥 존못 85%와 어머니로 인한 왜곡된 이성관이 15%... 같은데요...

흑..흑...

아무튼

내가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아버지의 행복까지 빼앗아버린 걸까.

나는 얼마나한 후레자식인지.

아버지도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사랑할 권리가 있는데...

오늘도 전화하며 말씀드리고 싶었다.

'재혼해. 난 진짜 괜찮으니까.'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해주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도대체 날 얼마나 사랑하길래

후레자식인 나의 약속마저도 따라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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