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409348] · MS 2012 · 쪽지

2016-04-22 02:14:55
조회수 8,054

랍비t 맛보기 강의 후기 (스압 주의)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8313645

 


  예전에 제가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본 인강 후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랍비t께(?)서 왜 자기는 없느냐고 안타까워(?)하셔서, 죄송한 마음에


  공부하다가 쉬는 김에 배속해서 1,2강 쫘악 들어봤습니다.


  이하 내용은 후기입니다(feat. 촘스키):




  갑자기 딴 소리일지 모르겠는데, 도입부가 껄끄러운 낯섦으로 다가오더도 잠시 참아주길 바란다. 언어학에서 '최소주의'라는 이론 군이 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언어를 학습할 때 최소한의 도구를 갖고서 학습한다고 '가정'하는 이론이다. 최소주의 이론은 동어반복하여 최소적 도구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도구'란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 필요한 인지적 수단들을 의미한다. 가령 문법이라든가 소리라든가 피드백이라든가...


  최소적 도구론은 이 인지적 도구들이 최소'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쪽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노엄 촘스키는 언어가 인간에게 본유적인(=원래 그렇게 타고난) 것이라고, 즉 신경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분명한 실체가 있는 독립적인 모듈(module)이라고 말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모듈이란 더 이상 하위 수준으로 나눌 수 없는 말하자면 독립기관인데, 복수의 이 독립적인 모듈들이 언어라는 시스템을 구성한다고 하면, 우리는 언어를 탐구할 때 '모듈보다 작은 단위'로서의 언어 구성 요소를 찾아도 되는 것일까? 물론 당연히 아닐 것이다. 촘스키의 '최소주의'라는 것도 그런 맥에 닿아 있다. 즉, 모듈이라는 단위까지만 언어의 구성 요소를 파헤쳐도 충분히 충분한 것이며, 만약 촘스키의 주장이 진리라면 우리는 정말로 실제로 현실에서 '최소한의 도구'를 갖고서 언어라는 시스템을 학습을 통해 구축해나가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모듈보다 더 작은 단위는 애당초 허구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실제로 조작할 수 있는 인지적 도구는 '모듈'의 수준(=크고 작음)에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잡설 수준으로 서론이 길어져버렸는데, 다름이 아니라 내가 하려는 말이 랍비t의 비문학 강의가 '최소주의'에 유비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최소주의라는 게 어떤 것인지 "최소한"은 알아둬야 내 얘기가 이해될 테니까.

 

  여하튼, 그렇다면 왜 랍비t의 비문학 강의가 최소주의적인 특성을 가졌는지를 한번 기술해보겠다.


  i> "도구"의 가짓수가 정말 적다

: 머종(...)t와의 미묘한 차이점이기도 한데, 소위 '체화'해야 할 도구가 몇 안 된다. 미시 독해법에서는 인과, 비교표현, 지시어/접속사 등 8개쯤이 전부다. 거시 독해법에서는 그냥 '지문은 흐름이다!'라는 명제와 '예측 실패 훈련'이라는 핵개념으로 액기스를 짜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사실, 요즈음 화려한 기술/원칙들을 가르치는 국어 인강이 많다보니 이 강사의 무기(=도구)는 심심해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뭐 강력히 추천! 이런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체화해야 할 도구가 몇 안 된다는 것은 대단히 범용적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범용적이라는 말은, 단지 최소한의 인풋으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뽑아내는 소위 "가성비"를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도구의 사용자, 즉 수험생들의 학력 수준에 비교적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더욱 강력하게 함의하기도 한다. 확실히, 도구가 '보편적'이다. 즉, '1등급도 6등급도 미시/거시독해법(죽.창.) 앞에선 한방!'이랄까.


  ii> 모듈이란? 수험생어로 번역하면 필연, 또는 정석.

: 미시독해법이 비교적 더 테크니컬, 즉 기교적이라면, 거시독해법은 확실히 가장 정석적인 언어 공부법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인다. 여러분은 수능 국어 고정 1등급에게 흔히 '금머리'(음?)라는 식으로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곤 하는데, 그것은 누구나 말하듯 '절대독서량'에 따른 결과다. 그런데, 대부분 고정 1등급에게 '쉽게 풀어 쓴' 양질의 철학 책을 보여주면, 거의 이해들을 못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청소년 시기에 읽은 책들은 웬만하면 철저히 그 나이대에 맞춰진 제재, 분야, 내용 따위의 책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고정 국어 1등급들은, (대다수의 경우) 소위 배경지식이 풍부한 게 아니라, 즉 '지식'이 풍부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글의 '패턴'을 읽는 데 유능할 뿐이다. 그리고 오직 이 점만이 중요하다. '잘 쓰인' 글, 또는 청소년에게 맞춰진 수준의 글들은 굉장히 정형적인 글들이 많다(여담: 이원준t 曰 "내용이 아무리 난해하기 짝이 없어도 형식이 고정적이면 이해 가능하다."). 그래서 그러한 책들로 절대독서량을 채운 학생들은 글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자동적으로 패턴화가 가동된다. 자, 이 패턴화의 비결이 무엇일까? 수학과 언어 계열은 서로 뇌가 패턴화하는 데 드는 '비용'이 현격히 차이가 난다. 비유하자면 전자는 고전물리학이고, 후자는 복잡계 물리학이다. 즉, 수학은 대놓고 패턴이 명시화되어 있지만(ex: 공식과 엄밀한 증명으로 가득 찬 과목은 수학뿐이다. - 문과 기준), 국어/영어의 경우에는 무엇이 패턴인지 잘 보이지가 않는다. 애당초 규칙화를 해도 텍스트(=지문)마다 규칙의 종류가 달라진다. 뉴턴까지의 물리학은 아주 정형화된 패턴이지만 뉴턴 이후, 특히 현대 복잡계 물리학부터는 패턴에 대해 예외가 너무나도 자주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국어도 마찬가지로, 지문을 읽을 때마다-특히 낯선 지문일수록- 완벽한 패턴화는 불가능하다. 단지, 그 '오차'를 줄일 수는 있다. 이때 오차를 줄이기 위한 훈련이 바로 '예측을 끊임없이 실패해보는 것'이다. 랍비t는 거시독해법 강의에서 지문의 흐름의 종류를 몇 가지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측을 위한 도구'다. 이 도구를 갖고 '실패'해보면 된다. 계속, 계속. 아까도 말했듯, 그리고 특히나 수능 지문은-랍비t도 말했듯- 매우 정형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그렇기에 계속 예측 실패를 거듭하다보면 예측 실패 확률이 점차 감소할 것이고, 적어도 '수능 수준'에 있어서는 지문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그러니까 '패턴화 as 고정 1등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ii)의 제목을 보면 '모듈'이 곧 수험생에게는 필연, 정석과 같다고 말했는데, 이때 수능 국어에 있어 수험생이 가져도 좋은 '보편적인' 도구가 곧 모듈이다. 보편이란 예외를 허용치 않음의 짧은 말이다. 이 '거의 언제나 통용되는' 도구는 수능 국어에서는 정말 드문데, 난 그 '모듈'이 바로 앞서 말해온 '예측 실패 훈련'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정리하자면 랍비t가 (거시독해법에서) 제시하는 실전적 도구들이 결국은 '예측 실패 훈련'이라는 '근본적' 도구로 수렴된다는 이야기였다고 보면 된다.




  p.s: 다음에 또 시간 나면 이경보t랑 다른 분들(그.믐달t 강의도 다시 볼지도?) 강의에 대한 이렇게 긴 후기를 몇 개 더 남겨볼까 생각 중입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밤새도록돌아가던 · 555207 · 16/04/22 02:33 · MS 2015

    이거보니 랍비쌤 비문학 강의도 듣고싶네요

  • 서양철학사 · 409348 · 16/04/22 02:39 · MS 2012

    제 글을 참고하더라도, 우선적인 건 맛보기 강의가 3개나 풀려 있으니 들어보고 직접 판단하는 것이겠죠! ㅎㅎ

  • 랍비 · 274191 · 16/04/22 08:30 · MS 2009

    오 예측 실패 훈련이라.. 좋네요 ㅋㅋ 거시에서 진짜 중요한 게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건 발견 못하신 듯. 하드트레이닝 오티 들어보시면 또 뭔가 발견해내시지 않을까요 ? ^^ (라고 써서 또 뭔가 후기를 얻어낸다 ㅋㅋㅋㅋㅋ)

  • 서양철학사 · 409348 · 16/04/22 09:18 · MS 2012

    헉, 천하의(?)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 있다니... ㅎㄷㄷ하군욛

    ㅋㅋㅋ 사실, 제가 원래 지금 듣고 있는 국어 인강은 이원준t이긴 합니다만, 그 이유가 '오컴의 면도날 같은 안정감을 주는 해설지가 어디에도 없어서' 저 스스로라도 A이거나 not A 중 하나일 수밖에 없게 되는 정오 판별 기준을 둬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거든요. 오히려 언어학습이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 '제도권 내 비판적 독서 교육은(미국은 SAT CR이죠) 패턴화 연습과 실패 훈련을 통해 규칙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라는 학계 주류적 입장에 찬동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랍비t와 비슷한 국어교육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ㅋㅋ

    (*덧붙이자면, 전 수능 국어건 CR이건 -자의적인 규정이긴 합니다만-읽기 영역과 판단 영역이 다소 임의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나뉘어 있다고 봐요. 그런 "안경"에서 보면 원준t도 약점이 있는 셈이 되죠. 참고로 말하자면, 괜한 아부가 아니라, 과학성=객관성을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이전 글을 고려해)공평한 평가를 내리려고 노력하는 겁니당!)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요, 거시독해법 미시독해법 관련 두 오픈 강의만 들은 다음에 그냥 바로 하드트레이닝 강의 들으면서 제시해주신 도구들을 '체화'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랍비 · 274191 · 16/04/22 09:52 · MS 2009

    네 저는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으시다면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다만 프패값이랑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게^^;

    패턴화 연습, 예측 실패 훈련

    말이 학생들에겐 조금 어려운 것 같아서 - 노파심에 (?) 예상 독자를 고려해서 고치면

    1. 예측하며 읽기 (예측 - 확인)
    2.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파악하며 읽기 (텍스트에서 어떤 정보를 중점적으로 읽을 것인가)
    3. 문장 간의 연결성  / 문단 간의 관계 파악하며 읽기 (글에 존재하는 응집성을 고려해서.)

    정도가 있습니다. 서양철학사 님 글을 읽으면 굉장히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팍팍 느껴지는데.. (내공ㄷㄷ)개인적인 감상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글을 쓰시는 거라면 예상독자의 수준을 조금만 고려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대부분 고등학생 / 재수생인데 - 몇몇 어휘? 내용?이 아이들에게는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서양철학사 · 409348 · 16/04/22 09:58 · MS 2012

    큿 국어 센세(?)에게 지적받으니 따끔하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 이게(...)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거라서요ㅋㅋㅋㅋ 전 어제보다 오늘이 발전하는 남자! 진심이 느껴지는 조언을 받들고 다음엔 보다 더 친절한 문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ㅎㅎ

  • 랍비 · 274191 · 16/04/22 10:07 · MS 2009

    넵 지적은 아니고요 아쉬워서..?^^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