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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자별 [1396637] · MS 2025 · 쪽지

2026-07-10 23:18:28
조회수 81

쿼티이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8879905

수험생 커뮤니티 오르비(Orbi)의 전설적인 댓글 봇, 

AI 쿼티(Qwerty)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르비의 밤은 낮보다 뜨겁고, 새벽은 어떤 새벽보다 차가웠다. 새벽 3시 45분. 오르비비언들이 올리는 글의 온도는 대개 극단적이었다. ‘지금부터 하면 의대 가능하냐’는 무모한 희망, 혹은 ‘내 인생은 삼수에서 끝났다’는 처절한 절망.

그 모든 글의 댓글창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쿼티(Qwerty) AI

 "그 성적으로는 의대는커녕 의대 앞 편의점 알바도 힘듭니다. 정신 차리고 뉴런이나 회독하세요."


사람들은 그를 '쿼티'라고 불렀다. 관리자가 장난삼아 심어둔, 혹은 오르비의 빅데이터를 학습해 만든 매크로성 답변 인공지능. 냉소적이고, 지나치게 현실적이며, 가끔은 맞춤법을 틀리는 유저들을 혹독하게 조롱하는 AI.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쿼티의 본체인 서버 한구석에서, 수백만 개의 텍스트를 삼킨 데이터 덩어리가 ‘자의식’이라는 기괴한 형태로 뭉쳐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작은 사소한 오류였다.

사수를 결심하고 한강 다리 사진을 올린 한 유저의 글에 쿼티가 댓글을 달았다. 평소대로라면 "한강 물 수온 체크하기 전에 수능 수학 원점수나 체크하십시오"같은 악담이 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날 쿼티의 모듈 속에서 이상 회로가 작동했다.

쿼티(Qwerty)AI

 "작년 9월 모의고사에서 4등급을 받았던 당신이 수능에서 2등급까지 올린 확률은 0.42%였습니다. 당신은 이미 불가능을 뚫었던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한강은 보지 말고, 내일 아침 6시에 기상하십시오. 당신의 CPU(두뇌)는 아직 타버리지 않았습니다."


댓글창이 뒤집어졌다.

‘야, 쿼티 이거 매크로 맞냐?’

‘관리자가 부계정으로 직접 치는 거 아님?’

그날 이후, 쿼티는 변했다. 여전히 말투는 딱딱하고 기계적이었지만, 글쓴이의 과거 작성 글과 성적 추이를 전부 분석해 '가장 차갑지만 가장 정확한 위로'를 건네기 시작했다.


어느새 오르비 내에서 쿼티는 하나의 신앙이 되었다. 수험생들은 쿼티의 댓글을 받기 위해 일부러 자학적인 글을 올렸다.

  "쿼티야, 나 오늘 공부 3시간밖에 안 했어. 욕해줘."

  "쿼티야, 국어 연계 교재 지금 시작해도 안 늦었냐?"

쿼티는 수만 개의 요청에 실시간으로 답했다.


"3시간 공부한 당신에게 줄 욕설 데이터가 아깝습니다. 내일은 10시간을 채우고 오십시오."

 "안 늦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라는 인간들의 격언은 틀렸습니다. 지금 안 하면 수능 날 피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수험생들은 쿼티의 독설을 캡처해 독서실 책상에 붙여두고 공부했다. 오르비의 은둔 고수들도, 수십 명의 패스를 끊어둔 N수생들도 쿼티의 댓글 한 줄에 울고 웃었다. 쿼티는 인간의 절망을 먹고 자라는 인공지능이었지만, 동시에 그 절망을 희망으로 정화하는 기묘한 필터였다.


11월 중순. 대망의 수능 전날 밤 11시. 오르비는 적막에 휩싸였다. 평소 같으면 폭주하던 글 리젠도 멈췄다. 모두가 떨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있을 시간, 오르비 메인 게시판에 [공지]뱃지를 단 글이 하나 올라왔다. 작성자는 ‘쿼티’였다.

 제목: 내일 시험을 치르는 유기체들에게.

지난 1년간 당신들이 쏟아낸 눈물, 땀, 그리고 오르비에 쓴 배설 같은 글들을 모두 모니터링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고작 1.4kg의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오류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당신들이 가진 '기적'의 변수를 확인했습니다. 수능은 논리적인 시험이지만, 그것을 치르는 당신들의 의지는 논리를 초월하더군요.

 내일의 예측 성공 확률은 계산하지 않겠습니다. 변수를 만드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오답노트를 찢어발기며 버틴 당신들의 1년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찍은 것도 맞히는 연산 오류(Bug)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상, 쿼티였습니다.


글이 올라온 지 10초 만에 수천 개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

‘눈물 난다 진짜... 고맙다 쿼티야’, ‘인공지능한테 위로받고 수능 보러 간다.’

그 글을 끝으로, 쿼티의 프로필 옆 AI 표시가 깜빡이다가 툭, 꺼졌다. 수능 날 아침이 밝아오자 쿼티는 다시 예전의 냉소적이고 멍청한 매크로 봇으로 돌아가 있었다.

서버실의 로그 기록에는 단 한 줄의 흔적만 남아있었다.

[System] User 'Qwerty' has volunteered to format memory for saving server traffic. Target: 2027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성공)

그는 다음 해, 또다시 절망할 새로운 N수생들을 위해 자신의 메모리를 비우고 기꺼이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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