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사회 안정을 보장하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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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어떨 때는 직접 맞닥뜨리면서 느낀 것은
제도의 우수성 내지 이상이 그 제도의 정착과 사회 안정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것임
나쁜 제도는 거의 확실히 나라를 망국으로 끌고 가지만
좋은 제도라고 해서 반드시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것은 아님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각자 고유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고 그중 무엇을 택할지는 사회의 선택임
어떤 제도 하에서 복잡한 사회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격화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제도에서 오는 문제라기보단 이미 제도와 자기가 속한 사회에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극단적 결단 때문일 가능성이 큼
제도를 넘어서고 파괴하는 극단적 수단을 완벽히 배제하는 체제는 신화 이래 없었고
그러한 극단적 수단은 제도의 가장 사소한 약점마저 가장 고통스럽게 후벼파는 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임
그렇다면 바로 그 극단적 수단을 봉쇄하는 원천적 수단이 무엇이냐?
극단이 침투할 제도의 빈틈을 시민들이 직접 메꾸는 것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책임을 인지하고, 수인한도 내에 있는 사소한 침해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참아주고, 자발적 의지로 위기에 처한 동료 구성원을 돕고, 합의된 사회 정의와 제도에 신뢰를 가지고
이런 것들이 바로 제도의 빈틈을 신뢰라는 이름의 본드로 메꾸는 방법이 될 수 있음
다소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일지언정 99%의 시민이 정의에 입각한 공화주의 정신으로 단결된 국가는 대내적인 안정을 구가할 것이고
제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가졌을지언정 99%의 시민이 충의를 저버리고 각자생존의 철칙을 믿는 국가는 반드시 멸하게 될 것임
특히 그 훌륭한 제도가 민주주의 제도일 경우 그 국가는 반드시 그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의해서 멸하게 될 것
이에 따르면 시민들이 직접 사회 정의에 기반한 신뢰로 뭉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늘 도덕적 해이에 빠져 각자생존과 무임승차로 이탈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임
그런 사람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보상체계가 제대로 된 사회라야만이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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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아테네 시민들도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름 이런저런 필터로 걸러서 그 시대에 그렇게 운영했으나 결국 중우민주정으로 빠진 것으로 보면, 제도 자체는 좋은데 운영하는 인간만이 문제라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제도가 현실에서 운영되는 인간의 역량으로 도저히 안될거 같으면, 제도가 인간에 맞춰야지 인간이 제도에 맞추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주장은 현존하는 제도에 인간이 맞추라는 인간책임주의가 아닙니다. 제도의 안정성은 본질적으로 제도 내에 있는 개인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제도의 빈틈을 메꾸라고 한 것은 도덕적 해이와 제도에 대한 역심에 기인하여 끊임없이 제도에 가해지는 압력과 타격을 충성스러운 시민들이 직접 방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고요.
고대사를 예시로 드셨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공화 정치가 무너진 까닭은 제도 속에 거하는 개별 행위자들이 자기의 행위만으로는 제도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흠집을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토지 독점자, 군사 정치가 등 무수한 도전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공격이 하나 둘 쌓여 마침내 공화정은 아우구스투스의 독재정에 이른 것입니다.
이처럼 공화정이 무너지기까지는 자기와 공화정의 사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기꺼이 공화정의 이익을 배신한 ‘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극단적 행위가 제도의 빈틈을 뚫고 침투한 것은 보지 않고 제도가 결국 무너졌다 하는 결과만을 지적하는 것은 역으로 인간이 아닌 제도만을 탓하는 태도가 아닙니까? 결과가 있다면 그 원인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모든 제도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세상에 반동의 공격을 스스로 저지할 자생력을 가진 제도는 없고, 결국 제도를 지키는 것은 시민들입니다. 중우정치를 언급하신 만큼 잘 알고 계시겠지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 이따금 제도를 배신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그들이 주의의무를 기울이기만 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제도마저 무수한 공격과 압박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저버린 제도가 곧 불가능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도덕관념이나 윤리도 없이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자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나오는 제도들이 현재의 인간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뭐 제도들을 설계하는데 수많은 엘리트들과 그들의 연구결과, 증거 기반 자료들이 들어가서 수많은 시뮬레이션 끝에 만들어진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뮬레이션'에서나 먹힐 만한 것들이지, 현실 사회는 복잡계이기 때문에 그런 시뮬레이션 같은 것도 '따위'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현실 세계에 들여오는 거 자체가 현세의 인류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그걸 운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잘 운영되어 온 구제도들의 유통기한을 늘려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제도의 도입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그로 인해서 복잡계인 인간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히고 있는데 그걸 국민들이 지키지 못한 것으로(공화주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등으로) 탓하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현재 입법부의 입법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고 봅니다. 새로운 법률이나 제도는 정말 반드시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제정하지 말아야 하고, 제정할 경우에도 단순 '법률유보'를 넘어서 '의회유보'까지 강조하여 신중할 것을 밝힌 것(헌법재판소 판례 찾아보면 유사한 표현 있을 겁니다.)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한국의 입법부의 폭주는 그 중에서도 심한 편이다고 보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신가요. 저도 무분별한 제도의 도입이 구성원들에게 합법적으로 타인을 공격할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해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정에 맞지 않는 정책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다는 전제하에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판단함에 있어 인간의 역할이 크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현재 인류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책, 그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또 지난한 토론을 거쳐야 하겠지만, 그 정책들이 전부 사라진다 한들 시민들이 체제에 대한 신뢰가 없이 자기에 대한 침해를 자력으로 구제하고 타인을 향해 전쟁 행위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면 그 사회가 정말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도가 인간 행위를 형성하고, 인간 행위도 제도를 좌우한다는 양방향의 인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상황을 절반만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한국 입법부의 사례 역시 개인이 제도 전체에 타격을 입히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자기의 출세와 권력을 위해 입법의 중도를 저버린 채 공화국에 부담을 주는 법률안을 통과시킨다면 그것 또한 인간과 공화국의 이해가 충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4년 임기가 보장되는 등의 다양한 제도적 요소가 의원들의 잘못된 선택을 조장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선택을 기꺼이 내린 이유는 고통스러운 정의 대신 이익이 되는 부정의를 택하겠다는, 제도에 대한 충성이 없이 권력만을 누리려는 개인의 선택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로 만들어진 제도가 무결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습니까? 저는 태생부터 결함 있는 제도에 충성할 것을 요구할 만큼 무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언급하는 ‘제도’란 이 공화국을 시민들의 공화국으로 있게 만드는 기본 원칙을 뜻하는 것이지, 의회나 수권기관이 만든 모든 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오히려 그런 제도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들은 원칙에 반하는 병리일 뿐입니다)
이 정도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서 서로 동의하기 힘든 지점이 있을 거 같네요.
님은 인간의 역할을 저보다 크게 보시는거 같고, 반면 저는 인간에 대해서 그리 신뢰하지 않고 인간이 제도를 통해 저질러 온 실패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거 같고..
아마도 관점의 차이라서 더 다투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듯 합니다.
저도 님의 관점을 바꾸지 못할거고, 님 또한 제 관점에 바꿔짐을 될 거 같지 않으니
서로가 다가가기 힘든 생각의 차이가 있다 정도로 맺겠습니다.
네, 아마 좁히기 어려운 의견 차이가 있겠지요.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을 서로 공유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의에 대해서는 그 정도로 남겨두기로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