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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무리 [1445266] · MS 2026 · 쪽지

2026-05-03 21: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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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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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유파동으로 원두값이 올라 대중들이 커피 대신 차를 마시니까 커피 시장이 침체되자 동서식품이 제일제당에 인수당한 뒤에 1975년 야자유와 전분을 섞어 분말형 크림을 만들어내는 프리마 기술을 자체 개발, 이 프리마와 커피 설탕을 적절히 혼합해 만든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시장에 내놓는다. 이어 1980년 커피 원액을 영하 40도에서 동결시켜 조각내 건조기에 승화시켜 만드는 동결건조공법을 개발, 한국인들이 4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야근하며 타마셔대는 ’맥심‘을 출시한다.



2. 동서식품에 기술을 제공한 미국의 식품회사 크래프트의 경영진과 직원들은 사치품이라는 커피 특성상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맛만 내는 이 믹스커피라는 기괴한 제품을 극동의 한국인들이 왜그렇게 좋아하는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빠듯해진 경제 상황 속에서 보일러와 주전자만 있으면 100원에 커피 비스무리한걸 즐길 수 있는 커피믹스란 개념은 당시에 대중들에게 획기적이었고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것이었다. 맥심은 서민의 일상에 깊숙히 파고들었고 1997년 IMF로 절정을 찍었다. 입시, 취업, 야근, 구조조정 같은 어려울 때 한국인의 곁에 함께 있어주는 어떤 상징같은 존재가 되었다.



3. 석유파동 때문에 태평양 자유진영 최전방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맥심이 인기를 끌었다면, 묘하게 동유럽 공산진영 최전방 동독일에서도 비슷한 걸 만들어냈다. 한국과 똑같은 이유, 석유파동과 브라질산 커피의 흉작으로 원두값이 급등하니까 예년대로 커피를 인민들에게 공급하려면 1년 동독 외화 지출의 7배나 되는 외화를 확보해야 했다. 서독은 어쨌든 자본주의해서 외환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가격 올라도 수입 자체는 이루어지지만 동독은 사회주의라 원래도 외화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써도 안되는데, 커피를 무슨 수로 충분히 구할 수 있겠나.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커피 대용품을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커피를 공산진영에서 자체 생산하여 달러 없이 물물교환으로 수입하는 것. 일단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혁명에 갓 성공한 모잠비크와 에티오피아로부터 커피를 부족한 양이나마 구해와서 한국 커피믹스 비슷한 ”카페 믹스“를 만들었는데 맥심은 진짜 커피이긴 했지 이건 콩으로 만든 가짜 커피를 절반 섞은 더욱 기괴한 맛을 내는 것이었다. 생산에는 그래도 신경을 많이 썼는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이딴걸 왜먹냐고 안 사먹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가 우려했던 배급은 없었다고 한다. 시중의 유통되는 커피의 20%는 서독 친척들로부터 가져온 것이었다고.



4. 그래도 이걸로는 불만을 잠재울 순 없는 것이다. 한 10년 정도는 이렇게 버틸지 몰라도, 수십년 넘게 이런 쓰레기를 인민들에게 먹일 순 없다. 그래서 외화 수급에 얽매이지 않게 같은 공산진영에서 커피를 특유의 형제애로 불리는 물물거래로 수입하기로 하고 커피를 키우기 좋은 환경의 나라들을 물색했는데 그 나라가 베트남이었다. 1980년 동독은 베트남에 커피 생산에 필요한 기계와 수력발전소, 사회 인프라를 제공하는 대신 생산된 커피의 절반을 동독이 가져가기로 하는 가히 형제애적인 조약을 체결한다. 베트남의 커피 생산 자체는 프랑스 치하에서 시작되었지만, 완전 압도적인 커피 생산량을 갖춘건 동독과 한 이 계약 때문이다. 근데 커피는 심으면 수확하는 데 8년이 걸린다. 1980년에 계약체결하고, 아무리 빠르게 1981년에 커피나무를 심었어도 1989년 되어서야 비로소 수확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수확한 커피의 50%를 가져갈 나라 자체가 증발하자 베트남은 1990년 미국과 국교 정상화해서 남는걸 미국에 팔게 되었다. 베트남은 이후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 되었다.



5. 올해 벽두부터 커피 가격이 오르고 있다. 브라질이 생산하는 건 아라비카고, 베트남이 생산하는 건 로부스타다. 역시 40년 전처럼 브라질에서 흉작이 발생했다. 이상한파 때문이라고 한다. 브라질 아라비카에 문제가 생겨도 베트남의 로부스타로 지금까지는 잘 해결해왔는데 이제는 로부스타마저도 값이 오르고 있다. 베트남이 더이상 커피를 재배하지 않기로 했다. 기후변화로 예전만큼 수율이 안나오니 커피농장 다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두리안 키워서 동남아 중국에 파는게 훨씬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중국 화북지방 공장에서 합성한 인공카페인이 든 핫식스만 마실수밖에 없는 미래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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