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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윤왜어려움 [1452337] · MS 2026 · 쪽지

2026-03-16 22:51:56
조회수 598

글을 읽는 방법 - 비타민 K 읽기와 에이어 지문 해설에 대하여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7921019

첫 칼럼을 작성해보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저의 독해법을 설명해드리는 것인 만큼

실제로 적용함에 있어서 그대로 모든 내용을 동등하게 할 필요는 없음을 알립니다. 

솔직히 칼럼이라 하기에도 많이 부족하고, 전적으로 독해방식만을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는 양해 바랍니다.

다음 지문을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짧지만 꽤나 난도 있었는데 이유는 지문을 명확히 읽고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맨 처음에 들어갈 때 보이는 글은 ‘법령의 조문은 ’A에 해당하면 B를 해야 한다’처럼 원인과 조건으로 구성된 조건문으로 규정된다는 말입니다. 일단 이걸 머릿속에 완전히 집어넣고 시작하는 것이 첫 번째.

굉장히 당연한 글 읽기지만 과거의 내용이 머릿속에 표상이 있지 않으면 지문을 절대 읽어나갈 수 없습니다.


남아야 할 기억은 ‘조문이 요건과 효과로 규정되는구나. a->b가 나오겠나?’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만약 이러한 게 제대로 안 잡힌다면 안 잡히면 잡히는 동안 계속 똑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러면 뒤 이해가 더 빠르게 될테니 말이죠.


그 다음에는 구체적 상황과 불확정 개념에 대해서 등장합니다. 구체적 상황과 불확정 개념이라고 한 이유는 두 단어가 키워드로서 제시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유의할 점은 정보를 ‘압축해서’ 기억한다는 방식을 저는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냥 문장을 통째로 외우려해봅시다. 그냥 바로 몇 분 뒤에 영단어 시험을 보는 양.


그렇게 외워봤자 인간의 뇌 총량에는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인상이 명확한 것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에 남아야 할 것은 당연하게도 구체적상황과 불확정개념이어야 할 것이겠죠

자. 우리가 이제 기억했다고 여기는 기준은 ‘스스로 문장을 비슷하게 뒤바꿀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우리는 아까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재서술 할 수 있습니다.

‘불확정 개념은 구체적 상황으로서 제시될 수 있으며 그 불확정 개념을 통해 조문의 효과가 바뀔 가능성이 있겠군’

이라는 식으로요

그 이해가 틀려도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지문은 도망치지 않고 불분명하면 다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어떤 무엇이 들어가든 일단 머리에 들어가 있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키워드를 생각하지 말자, 키워드가 아니라 청크도 아니라 그냥 문장을 통으로 머릿속에 넣어버리자는 것이 우리의 태도가 되겠습니다.

물론 이해하지 않고 그저 외우는 느낌으로 접근해서는 안되지만 그냥 이해하고 ’아 납득했어!‘하고 넘어가는 순간 뇌에서 휘발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기술 지문이나 어디에 어디가 속해있음을 나타내는 등의 글이 순차적으로 나타날 경우 분명 이해는 다 했는데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 자체를 모조리 암기한다는 각오로 문장을 읽어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글에서 모두 동일한 중요도일리가 없겠죠

그 중에서 예시나 문장을 이어주는 조사 같은 것에 힘을 덜 주고 읽는 식입니다.


이것이 저의 개괄적인 읽기 방식입니다

이후의 읽기 방법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문장에 힘을 주어 머리에 걸리는 느낌이 들도록

문장을 읽을 때 머리에서 불이나는 느낌이 들고 문제를 풀 때 쉬워야 합니아.

똑같은 문장을 10번 읽는 한이 있어도 이해해야 할 것 같다면 외울 정도로 이해하고 이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프래이징 하여 재인출 할 수 있을 정도로 읽고 또 읽습니다.

물론 미친 것이 아니고서야 시간 제한이 있으므로 한 문장을 열번 읽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제가 수능 경험장에서 해봤을 때에는 한 문장을 5번 (부연 설명이 아닌, 정의 포함 구분과 관련된 문장들 뿐이지만) 읽어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밑줄도 ‘공부할 때에는’ 절대 치지 않습니다

영어 시험을 볼 때 어느 단어가 나올지 체크하는 것이 아닌 만큼, 밑줄 역시 외우는 행위 ‘자체‘를 방해하기 때문에  

그냥 모든 문장을 다 외울 듯이 외울듯이 글을 읽어도 실제로 못 외우니까 그렇게 읽는 것이 방법이 되겠습니다

밑줄을 치는 것은 오히려 읽기를 때때로 방해합니다.

왜냐하면 밑줄은 어려운 문장에 치고 어려운 문장에 밑줄을 친 순간 우리는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밑줄을 쳐야 합니다.

밑줄이 전혀 없다면 긴장감이 높은 수능 현장에서 인지적 부하를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평소에는 공부할 때 밑줄을 치지 안되, 실전 모의고사에 한해서만 밑줄을 치는게 방법이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밑줄은 언제나 보조 도구일 뿐 거의 언제나 항상 밑줄은 방해가 될 뿐입니다.

매우 순차성과 정보량 자체가 순수히 많은 경우를 제외한다면요.


자, 그럼 이 빡빡한 원칙을 방금 보여드린 두 번째 지문(비타민 K 지문)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지문의 첫 문단에 들어갈 때, 눈으로만 훑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억지로 표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죠.
‘아, 섬유소 그물인 피브린이랑 혈소판 마개가 뭉쳐서 혈병을 만드는구나. 근데 이게 혈관 속에서 생기면 혈전이라고 부르는구나. 피가 멎는 과정(응고)에 비타민 K가 중요하네.’
이 정도의 인과관계를 내 언어로 스스로 뱉어낼 수 있을 때까지 읽고 또 읽어 머리에 우겨넣습니다. 그냥 단어 시험 보듯이 말입니다.

가장 정보량이 폭발하는 2문단을 볼까요?
프로트롬빈이 트롬빈이 되고, 피브리노겐이 피브린이 되고... 이런 연쇄 반응이 쏟아집니다. 여기서 키워드만 동그라미 치고 넘어가면 뇌에서 바로 휘발됩니다. 문장을 통째로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재서술해야 합니다.
‘결국 비타민 K가 간에서 이런 인자들을 활성화시켜주는구나. 근데 활성화되려면 칼슘이랑 결합해야 하고, 칼슘이랑 붙으려면 카르복실화라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하네.’
이렇게 인과관계의 뼈대를 스스로 세우고, 이 틀이 머리에 안 잡히면 잡힐 때까지 그 문장에 머물러야 합니다. 머리에서 불이 나는 느낌으로요.

그다음 ‘칼슘의 역설’이나 ‘MGP 단백질’, 그리고 마지막 문단의 ‘K1(간/응고 담당)과 K2(그 외/혈관 석회화 방지 담당)’의 분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글 자체를 모조리 암기한다는 각오로 문장을 씹어 먹어야, 나중에 10~13번 문제를 풀 때 다시 지문으로 돌아와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첨부된 사진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의문이 드실 겁니다.
분명 앞에서는 “밑줄은 어려운 문장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니 절대 치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사진 속 지문에는 핵심 과정(피브린, 혈병, 혈전)이나 순차적 과정, 그리고 ‘비타민 K1’, ‘비타민 K2’ 같은 곳에 밑줄과 표시가 상당히 그어져 있으니까요.

이에 대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밑줄 없는 통문장 독해'는 어디까지나 ‘공부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밑줄을 쳐야 합니다.
밑줄이 전혀 없다면, 긴장감이 극도로 높은 수능 현장에서 그 엄청난 인지적 부하를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평소에는 공부할 때 밑줄을 치지 않되, 실전 모의고사에 한해서만 밑줄을 치는 게 방법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밑줄을 쳐야 하는 지문은 방금 본 비타민 K 지문처럼 정보량 자체가 순수히 많고 순차적인 과정이 나열된 지문에 국한됩니다.

이런 과학/기술 지문들은 정보가 휘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마커'로서 실전에서 밑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순수한 이해력을 깊게 요구하는 느낌의 지문들, 예를 들어 '칸트 지문’과 같은 철학/인문 지문들은 실전이라 하더라도 밑줄을 지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밑줄은 언제나 보조 도구일 뿐, 거의 언제나 항상 여러분의 진짜 독해를 방해할 뿐입니다. 칸트 지문같이 추상적이고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장에 밑줄을 치는 순간, 우리는 그 어려운 문장에 줄을 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버리게 됩니다. 결국 뇌가 멈추고 튕겨 나가는 지름길입니다.

정리하자면, 매번 순차성과 정보량 자체가 순수히 폭발하는 경우(비타민 K 지문 등)를 제외한다면, 밑줄은 방해물입니다. 평소 훈련할 때는 물론이고 칸트 같은 지문을 만났을 때는 오직 뇌의 힘만으로, 똑같은 문장을 10번 읽는 한이 있더라도 패러프레이징하여 내 머릿속에 완벽히 욱여넣는 독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이 추상적인 철학/논리학 지문인 ‘에이어 지문’에 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죠? 이런 인문 지문에서 밑줄은 여러분의 사고를 절단 내는 흉기입니다. 눈은 글씨를 따라가고 손은 선을 긋고 있지만, 정작 뇌는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멈춰버리게 만드니까요. 펜은 아예 내려놓으시고, 오직 뇌의 힘만으로 텍스트를 우겨넣어 봅시다.


(가) 지문부터 들어갑니다.

맨 처음, 전통적 윤리학은 객관적 근거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에이어’가 등판합니다.
“도덕 문장은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는 성질, 즉 ‘진리 적합성’을 갖지 않는다.”
일단 이 문장을 머리에 넣습니다. ‘아, 에이어는 도덕 문장이 참/거짓을 따질 수조차 없다고 엎어버렸구나.’ 이 뼈대(표상)가 머리에 안 잡히면 절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잡힐 때까지 똑같은 문장을 읽으세요.

그다음 2문단, 여기가 뇌에 쥐가 나고 불이 나야 하는 구간입니다.
대충 눈으로 훑지 말고 완벽히 내 언어로 재서술해 봅시다.
‘어떤 문장이 참/거짓(진리 적합성)을 가지려면 단어 뜻 자체로 증명되는 분석적 문장이거나, 경험으로 관찰되는 종합적 문장이어야 한대. 근데 도덕 문장에 쓰이는 '선'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순 개념이라 분석적이지도 않고, 우리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게 아니니까 경험적(종합적)이지도 않네. 아하!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니니까 참/거짓을 따질 수가 없다는 거구나!’
스스로 이렇게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납득하고 패러프레이징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튕기면 뒤에 가서 다 무너집니다.

3문단. 그럼 참/거짓도 아닌 도덕 문장은 대체 뭘까요?
‘그냥 내 감정과 태도를 표현하는 정서적 의미일 뿐이다.’라고 에이어는 쐐기를 박습니다. '도둑질은 나빠!'라고 말하는 건 팩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 '으, 도둑질 극혐!' 하고 감정을 뱉어내는 거랑 똑같다는 겁니다.

자, (가) 지문을 다 읽었습니다. 지금 여러분 머릿속에는 “에이어: 도덕 문장은 팩트(참/거짓)가 아니라 단순 감정 표출이다!” 라는 완벽한 덩어리가 남아있어야 합니다.

(나) 지문으로 넘어갑니다. 여전히 샤프는 들지 않습니다.

1문단. 논리학자들이 에이어한테 시비를 걸기 시작합니다. 이 논리 구조를 억지로라도 머리에 세워야 합니다.
‘P이면 Q이다. P이다. 따라서 Q이다.’ 이건 당연한 전건 긍정식 공식이죠. 그런데 여기에 에이어의 주장을 넣어보잡니다.
‘단독으로 쓰인 P(표절은 나쁘다)는 에이어 말대로 감정 표출이 맞아. 근데 조건문 안에 들어간 P(표절이 나쁘다면)는 지금 감정을 뱉는 게 아니라 그냥 가정한 거잖아? 어라? 그럼 앞의 P랑 뒤의 P가 뜻이 달라져 버리네? 야, 에이어! 네 논리대로면 이 완벽한 논리학 공식이 깨져버리잖아!’
이 논리학자들의 공격 흐름이 내 입에서 술술 나올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밑줄 긋고 '아, 내용 차이가 생기는구나' 하고 넘기면 100% 털립니다.

2문단. 여기서 구원투수 ‘행크스’가 등장해 에이어를 방어합니다.
행크스 : ’야, 표절이 나쁘다는 건 표절이라는 대상에 나쁨이라는 속성을 딱 붙여주는 거잖아. 혼자 쓰이든 조건문 안에 들어가든 그 대상에 속성을 부여한다는 알맹이(판단적 본질) 자체는 절대 변하지 않아. 껍데기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으니까 공식 안 깨져!’

여기까지가 독해의 끝입니다.


이 시점에서 실제 제가 시간을 재고 풀었을 때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풀 때 총 11분이 소요 되었고 그 중 9분을 지문을 읽는데에 소모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직접 이 문제를 풀 때 뇌의 상태입니다.
이후부터는 정제되지 않았고 문자 그대로 저의 뇌 상태를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안 봐도 무방합니다
사후적인 부분을 제외한 경우입니다

일단 과학 지문 죽을려고 풀고 있다가 다른 지문 가기 전에 일단 뭔가 길어서 한숨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주제가 뭔지 뇌정지가 잠깐 옵니다.
윤리학? 갑자기?
먼저 뇌정지 한번 와 주고
다시 첫문단을 다시 읽었습니다.
첫문단 또 읽었는데 머릿속으로 안 들어와서 첫 문단을 다시 한번 좀 정독했더니 이제 머리에 들어오네요
전통 윤리학이 객관적인 옳고 그름을 판정한답니다.
근데 에이어는 아니라고 하네요? 진리 적합성이 없다고 합니다.
진리적합성이 뭔지 외우고 가죠

다음 문단입니다
”진리적합성을 갖는 모든 문장은 그 문장에 사용된 단어의 정의를 통해 검증되는 분석적 문장이거나 경험적 관찰에 의해 검증되는 종합적 문장이라는 원리를 바탕으로 도덕 문장은 진리적합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단 이걸 듣고 뭔 소리냐 싶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이해했으면 이해를 못한 거랑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단어가 두개나 나와요. 분석적 문장, 그리고 종합적 문장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최소 3번은 겹쳐 읽었습니다
일단, ”진리적합성을 가진 모든 문장은 분석적 문장이거나 종합적 문장이다. 그리고 도덕 문장은 진리 적합성이 그에 의해 없다고 에이어는 주장한다”로 읽습니다.
그 다음, “분석적 문장이란 그 문장에 사용된 단어의 정의를 통해 검증되는 문장을 말한다. 그리고 종합적 문장이란 경험적 관찰에 의해 검증되는 문장을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문장 형식을 갖추어 읽었다면 반복해서 이해할 때까지 봅니다.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마 모든 사람이 동일할 겁니다. 분석적 문장이 뭔지, 그리고 종합적 문장이 뭔지입니다.
칸트의 형이상학 서설이나 순수 이성 비판을 읽었다면 종합 명제와 분석 명제를 구분할 수 있을테니 그냥 넘어가도 좋겠지만 그 정도의 배경지식을 평가원이 요구하는 것은 절대 아닐 겁니다.

분석적 문장과 종합적 문장을 정의하는 문장을 3번 정도 각각 추가로 훑고 넘어갑니다
그 다음 정보를 확장합니다.
’도덕문장은 분석적이지 않다‘는 기존 정의(즉, 전통적 윤리학에 부합)를 수용하였다. 일단 슥 넘어가지죠?


그 다음에 도덕 문장이 분석적이라면 술어인 'A'가 주어인 '선'이라는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어야 한답니다.
이것도 한 번에 뇌로 안 들어오죠. '선은 A다'에서 A가 선 안에 쏙 들어가 있어야 분석적이라는 소리네.
근데 뒤를 보니까 '선'은 속성이나 내용을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단순 개념이랍니다.
아, '선'은 더 쪼갤 수 없으니까 분석이 안 되는구나. 오케이, 그래서 도덕 문장은 분석적이지 않다는 거네. 일단 이해했습니다.

그럼 이제 종합적 문장인지 봐야겠죠. 다음 문장을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은 A이다.'라는 도덕 문장이 경험적 관찰로 검증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 그 자체는 우리의 감각으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좀 쉽네요. 선이라는 건 내 눈에 보이거나 감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니까 관찰이 안 되고, 그러니까 종합적 문장도 아니라는 거다.
자, 여기까지 읽고 머릿속에서 한 번 합칩니다.
분석적이지도 않고 종합적이지도 않으니까, 맨 처음에 에이어가 말했던 '도덕 문장은 진리 적합성이 없다'는 결론이 여기서 딱 나오는 거구나. 이 연결고리를 머리에 콱 박아둡니다.

다음 문단입니다.
그럼 진리적합성이 없으면 도덕 문장은 대체 뭐냐?
"도덕 문장은 다양한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하고... 정서적 의미를 갖는다고 에이어는 주장했다."
아, 팩트가 아니라 그냥 감정 표현이구나.
뒤에 보니까 만약 '도둑질은 나쁘다'가 사실을 기술(묘사)하는 문장이라면 참 거짓이 있겠지만, 에이어한테는 그게 아니랍니다.
그냥 '네가 도둑질을 하다니!' 하고 감정을 담은 어조로 뱉는 거랑 똑같대요.
어떤 사실을 적은 게 아니라 찐 감정표현이다.
여기까지 읽고 (가) 지문은 머리에 다 들어왔습니다. 에이어는 도덕 문장이 참거짓 따지는 게 아니라 그냥 감정 표출이라고 한 거.

이제 (나) 지문 넘어갑니다.
윤리학 읽다가 갑자기 논리학이 나옵니다. 전건 긍정식? 'P이면 Q이다. P이다. 따라서 Q이다.'
이건 뭐 당연한 공식이니까 일단 슥 읽고 넘깁니다.

근데 그 다음 문장에서 또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뇌정지 구간이죠.
"어떤 문장이 단독으로 진술되는 경우에는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문장이 조건문인 'P이면 Q이다'의 부분으로 포함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이거 한 번에 절대 안 읽힙니다. 무조건 3번은 겹쳐 읽어야 합니다.
단독으로 쓰이면 감정 표현인데, 'P이면'처럼 조건문 안에 들어가면 감정 표현이 아니라고?
이해가 잘 안 가서 바로 뒤에 나오는 구체적인 예시를 통으로 봅니다.
'표절은 나쁘다'가 혼자 쓰이면 감정 표현인데, '표절이 나쁘다면~' 이라는 조건문 안에 있을 때는 화자가 진짜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랍니다.
아, 그러니까 혼자 쓰일 때의 P랑 조건문 안에 들어간 P가 의미가 달라진다는 소리네?
그래서 두 전제의 내용 차이가 생기니까 논리 공식이 깨진대요.
에이어 주장대로면 이 완벽한 논리학 공식이 안 돌아간다고 논리학자들이 시비 거는 거구나.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마지막 문단 봅니다. 행크스가 나옵니다. 에이어를 방어해 주려나 봅니다.
"'표절은 나쁘다'라는 문장은 표절이라는 대상에 나쁨이라는 속성을 부여하는 내용을 가진다."
이건 단독이든 조건문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판단적'이랍니다.
그래서 조건문에 포함된 '표절은 나쁘다'도 여전히 대상에 속성을 부여하는 판단적 본질을 잃지 않는대요.
아하. 단독으로 쓰든 조건문으로 쓰든, 껍데기만 다르지 '대상에 속성을 부여한다'는 그 알맹이는 똑같으니까 내용 차이가 없다는 거네.
그러니까 앞의 P랑 뒤의 P가 같은 거라서 논리 공식 안 깨진다. 행크스가 이렇게 에이어를 쉴드쳐 주는 걸로 끝납니다.


이렇게 읽으면 됩니다. 다 읽고 나니 시간이 9분이나 지나 있네요. 하지만 잠깐 지문을 다시 돌아가더라도 위치를 다 알기 때문에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먼저

12번 봅니다. (가)에 나타난 에이어의 입장으로 적절하지 않은 거 고르랍니다.
1번, 2번, 3번 슥슥 봅니다. 머릿속에 있는 거랑 똑같은 소리 하니까 그냥 넘어갑니다.
4번 봅니다. '도덕 용어의 용법은 도덕 용어가 기술하는 사실의 종류에 따라 기술적 용법과 표현적 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잠깐. 여기서 바로 브레이크.
에이어가 뭐랬죠? 도덕 문장은 애초에 팩트(사실)를 기술하는 게 아니라, 쌩 감정표현이라고 분명히 머리에 박아놨죠?
근데 뭐? '기술하는 사실의 종류에 따라' 나눈다고? 애초에 사실을 기술한다는 전제 자체가 에이어의 핵심을 정면으로 부수는 미친 소리네요.
더 볼 것도 없습니다. 4번 아닙니다. 답 체크하고 10초 만에 바로 다음 문제로 넘어갑니다.

13번 봅니다. [A]에서 행크스가 한 말 추론하랍니다.
행크스 논리 뭐였죠? 단독으로 쓰든 조건문으로 쓰든 껍데기만 다르지 '대상에 속성을 부여한다는 판단적 본질(알맹이)'은 똑같다. 이거였습니다.
선지 1, 2, 3, 4번 헛소리하는 거 다 제끼고 바로 5번 봅니다.
"'표절은 나쁘다'는 화자가 표절에 나쁨을 부여하지 않는 맥락에서도 그것의 판단적 본질을 유지할 수 있다."
나쁨을 진짜로 부여하지 않는 맥락? 아, 이게 아까 지문에서 말한 '조건문(만약 표절이 나쁘다면~)' 안에 들어가서 진짜 감정 뱉는 게 아닐 때를 말하는 거구나.
그래도 판단적 본질 자체는 유지된댔죠? 행크스 주장이랑 완벽하게 똑같네요. 5번 정답. 지문 다시 볼 필요 1도 없습니다.

14번 봅니다. 길어서 짜증나고 살짝 쫍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전통 윤리학 = 객관적 사실 있음 / 에이어 = 객관적 사실 없고 단순 감정 / 행크스 = 본질 똑같음.
선지 1, 2, 3번 슥 봅니다. 에이어가 도덕 문장 분석적 종합적 아니라고 하는 거 맞고, 독립적 사실 없다는 거 다 맞으니까 제낍니다.
4번 봅니다. 전건 긍정식 논리 붕괴 공격에 대해 에이어가 쉴드치는 내용이네요.
에이어 왈: "옳다. 도덕 문장은 전건 긍정식의 전제로 사용되면 진리 적합성을 갖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납니다. 에이어는 1문단 첫 줄부터 글 끝날 때까지 "도덕 문장은 진리 적합성이 없다!!!"라고 외친 아저씨입니다. 근데 조건문 안에 들어가면 갑자기 진리 적합성이 생겨? 완전 자기 주장을 엎어버리는 개소리죠. 볼 것도 없이 4번 정답.

15번 봅니다. ㉠(논리학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한 거네요.
머릿속에서 꺼냅니다. 논리학자들은 에이어 주장을 넣으면 앞의 P랑 뒤의 P 뜻이 달라져서 '전건 긍정식 공식이 깨진다(타당하지 않다)'고 깠습니다.
바로 1번 선지 봅니다.
"에이어의 윤리학 견해가 옳다면 전건 긍정식이 직관적으로 타당해 보이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아니지. 에이어 견해가 옳으면 내용이 달라져서 전건 긍정식이 '타당하지 않게 붕괴되니까' 문제인 거지. 타당해 보이면 왜 시비를 걸어? 논리 방향을 완전 반대로 돌려놨네. 1번 정답.


매력적 오답 살펴봅시다

12번은 정답률 44% 문항이고 5번 선택률은 22%입니다. 

5번을 선택한 이유 알 것 같습니다. 

3번째 문단 3번째 문장 때문일텐데, 그대로 가져와 봅시다.

“그에 따르면 도덕 용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표현적 용법으로도, 세계에 관한 어떤 사실을 기술하는 기술적 용법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이것은 도덕 용어이지 도덕 문장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뒤의 문장의 맥락까지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 이 문장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시된 문장을 따라감으로써 5번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13번은 정답률 36% 문항이고 매력적 오답이 3번 4번입니다.

3번을 선택한 사람은 20%, 4번을 선택한 사람은 21%입니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네요?

행크스의 견해임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면, 조건문의 일부로 진술 될 때 당연히 판단적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지니지 않는다‘를 ‘지님’으로 바꿔야 합니다.


4번은 이것도 말 안되죠? 

’표절은 나쁘다‘라는 문장은 표절이라는 대상에 나쁨이라는 속성을 부여하는 내용을 가지며 행크스에 따르면, 화자의 문장진술은 그 내용과 완전히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당연하게도 진술할 수 있는게 아니라 없겠네요.

‘있다‘를 ’없음‘으로 바꿔주세요

13번의 경우, 먼저 행크스라는 발문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경우와 지문을 대강 읽었기에 자신의 주관을 개입시켜 발생한 문제입니다.


14번은 정답률이 50%이상이므로 넘어가겠습니다.


15번은 정답률 26% 문항입니다.

매력적 오답은 4번, 3번입니다.

1번이 너무 답입니다. 하지만 1번을 바로 찍고 저도 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혹시 틀렸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2,3,4,5번을 검토하긴 했습니다.

같이 살펴보죠


2번 답 아닙니다. 너무 당연하죠. 전건긍정식의 참이 보장되려면 ‘P이면 Q이다’의 P와 P이다’의 내용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근데 도덕 문장이 감정을 수용하면 당연히 내용 차이가 생기죠? 아닙니다


3번도 답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건긍정식의 참이 보장되려면 ‘P이면 Q이다’의 P와 P이다’의 내용 차이가 없어야 하니까요.


4번도 답 아닙니다. 개인적 선호 역시 감정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내용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논리학자가 문제제기할 수 있죠?


5번도 답 아닙니다. 도덕문장이 판단적이라는 행크스의 입장에서 내용차이가 없기 때문에 전건긍정식의 참이 보증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논리학자가 문제제기할 수 없을 겁니다.


16번 넘어가겠습니다.

정답률 21%인 난이도 최상 문제입니다.

4번을 택한 학생이 28%로 정답을 택한 학생보다 많았고, 3번을 택한 학생은 21%로 정답을 택한 학생 수와 같았습니다.


16번 <보기> 봅니다.

첫 문장. '자선은 옳다'는 자선에 대한 찬성, '폭력은 나쁘다'는 폭력에 대한 반대라는 태도를 표현한답니다.
이건 그냥 지문에서 본 에이어랑 똑같은 소리네요. 도덕 문장은 감정이나 태도 표현이다. 일단 확인하고 넘어갑니다.

그다음 문장. 도덕 문장을 포함하는 '자선이 옳다면 봉사는 옳다'라는 조건문은 '태도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답니다.
여기서 멈춰서 아까 읽은 지문이랑 비교해야 합니다.
지문 (나)에서 논리학자들은 뭐랬죠? 단독으로 쓰일 땐 감정 표현이어도, 조건문 안에 들어가면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하는 게 '아니다'라고 해서 전건 긍정식 공식이 깨진다고 깠습니다.
근데 이 보기는 심지어 조건문 조차도 ‘태도에 대한 태도'를 표현하는 거라고 하네요.
아, 보기는 조건문조차도 결국 어떤 '태도'를 나타내는 걸로 우겨서 보는구나. 지문의 논리학자들이랑 이 부분이 다르네. 일단 차이점 하나 잡아둡니다.

다음 문장. '위와 같은 주관적 태도들에는 참, 거짓이 없다.'
태도에는 참 거짓이 없다. 이건 뭐 에이어가 진리 적합성 없다고 한 거랑 완벽하게 똑같은 말이니까 그냥 슥 넘어갑니다.

마지막 부분 봅니다.
조건문이 나타내는 태도랑, '자선은 옳다'가 나타내는 태도를 둘 다 지니면서 결론인 '봉사는 옳다'에 반대하는 건 비일관적이다.
'자선이 옳다면 봉사는 옳다. 자선은 옳다. 따라서 봉사는 옳다'가 타당하다는 건 이런 뜻이랍니다.
여기서 다 읽고 머릿속으로 한 번 갈무리합니다.
아, 지문에서 행크스는 단독이든 조건문이든 '대상에 속성을 부여하는 알맹이'가 같아서 논리 공식이 안 깨진다고 쉴드쳤는데.
이 보기는 참/거짓이 없어도 '태도의 일관성'이라는 걸로 논리 공식을 방어하는 입장이구나.
파악 끝났습니다. 머리에 든 건 딱 세 개. '도덕 문장 = 태도. 조건문 = 태도에 대한 태도. 논리 공식 타당함 = 태도의 일관성 유지.'

바로 선지 1번 봅니다.
"도덕 문장이 태도나 감정을 표현한다는 주장은, 도덕 문장을 포함하는 조건문이 '태도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다는 <보기>의 주장과 상충하는군."

읽자마자 어이가 없어야 합니다.
방금 보기 첫 줄에서 분명히 '자선은 옳다(도덕 문장)는 태도를 표현한다'라고 에이어 주장을 베이스로 똑같이 깔고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도덕 문장이 태도를 표현한다는 걸 인정하니까, 그걸 포함한 조건문도 '태도에 대한 태도'라고 이어가는 거죠. 둘이 상충할 리가 없습니다. 결이 같은 소리인데.
완전 헛소리네요.


2번 봅니다. 

“논증의 타당성이 전제와 결론의 참에 의해 규정된다”는 말은 전건 긍정식을 뜻합니다. 여기서 끝입니다.

왜냐하면 보기는 일관성을 말하고 있지 전제의 참과 거짓은 오히려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2번 땡


3번 봅니다

“무엇이 윤리적으로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말은 전통 윤리학을 뜻합니다.

이는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 하지만 보기는 오히려 화자의 주관적 태도를 나타낸 것이 도덕문장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답이 아니죠.


4번 봅니다. 

4번 답 아니죠? “‘귤은 맛있다.’가 귤에 대한 화자의 선호를 표현한다”는 말은 보기의 주장과 동등합니다


5번 봅니다.

에이어의 주장이 전제네요. 볼 것도 없이 답 아닙니다. 에이어처럼 보기도 진리적합성이 없어서 참 거짓이 없다고 보니까요.


이렇게 칼럼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독성이 안 좋은데… 솔직히 어떻게 편집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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