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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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하여 쓰는 글
마음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면
무언가를 배설해야만 하는 충동이 생긴다
그러니까, 배출 아니고 배설이라고.
온갖 찌꺼기를 다 꺼내 흐트려 놓아야만 하는
그런 것이다
왜 나는 마음이 답답한가?
경제적 지원은 대부분 부모가 해주는데
학벌통은 환상통임을 깨달은 지 오랜데
마음이 답답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독립된 개체가 아닌
일종의 파생 상품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아마 이 갈증이 생겼나 보네
뭐라도 해야겠다는 갈증인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갈증인가
일단 여기서 당장 벗어나야만 하는 그런 느낌이
계속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데
빙글빙글
참 오래됐지 이건
부모의 말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던
그 목소리가
바닷물 같이 계속 텁텁하게 남는다니까
아니 사실은 그게 맞지
자식은 부모로부터 파생된 존재
그러니
부모는 자식을 통제하거나, 소유할 자격이 있는 거였지
더 오래 떡국을 먹어왔다고
더 오래 공기를 들이 마셨다가 내뱉어 왔다고
원래는 하나였으니까
둘이 되고 셋이 되도록 했으니까
그런 자격이 생기는 거였지
그렇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어도
부모 말은 대부분 들었다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고
해야하는 것을 시도하고
그렇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적어도 나에게 투자한 부모에게는
실패한 투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폭락한 주식이야
회복 불가한 불치병이야
올랐어도 내려버리고
좋아졌다가도 나빠져버린
그건 실패야
나는 실패한 거지
정신승리가 의미가 없다구
왜? 지금의 나를 봐
승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거울은 존재를 그대로 투영하지 않아
일종의 왜곡이 있단다
난 왜곡된 상을 바라보고 있던 거야
행복하지 않은 거야 사실은
맘에 안 드는 거야
인정 받고 싶어 안달 나있던
태초부터 그러고 싶어하던 게 나였는데
이젠 내가 행복해도
실패의 행복이니까
부모는 인정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나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거야
부모 기준의 성공
그리고 그 성공 속에서 맛보는 행복만이
인정받아 마땅한 가치였는데
내가 잘 지켜오던 규칙을 깨부수고
새롭게 역사를 쓰겠다니
맘에 들지 않는 거지
원래 권력자들은 가진 걸 잃고 싶지 않아 하니까
개혁을 통한 하극상을 원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뭐 위로 올라가고 싶댔어?
그저 내 밥 벌어 먹을 한 마지기의 논만 있으면
된다는 거였지만
어려웠지 그것도
쉽지는 않았어
내 밥그릇 하나 챙기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건 줄은 몰랐지
그게 쉬웠다고 말했으면, 그리고 쉽게 해냈으면
인정이 따랐을 거야
어렵다고 말해버려서
내가 입이 방정이어서 오두방정을 떨어서
인정이 달아났어
어떻게, 뭐 다시 돌아갈 순 없지
시간을 돌려서
떨어진 그래프를 다시 끌어다 꼭대기에 올려 놓을래?
어차피 또 떨어지게 되어 있거든
그리고 다시 실패하게 될 거거든
실패의 길을 찾을 거거든
성공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걸
계속 상기시켜주잖아 모든 것들이
그렇지만 답답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었는지
입고 싶던 옷을 막상 입으니 핏이 마음에 안 드는건지
난 아무것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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