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쌍윤왜어려움 [1452337] · MS 2026 · 쪽지

2026-03-09 22:33:28
조회수 324

국어 문제 - 좀 어려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7844674

[지문]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근대 철학은 지각(perception)의 본질을 해명함에 있어 경험주의와 주지주의라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취해왔으나, 메를로퐁티는 이 두 진영이 근원적으로 동일한 존재론적 오류, 즉 '객관적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경험주의는 지각을 외부의 객관적 자극이 감각 기관에 주어지는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인과 과정으로 환원한다. 반면 주지주의(합리주의)는 무질서하게 주어지는 감각 여건들을 오성(intellect)이 능동적으로 종합하고 판단하여 대상을 구성하는 표상 작용으로 지각을 설명한다. 메를로퐁티가 보기에 양자는 모두 세계를 관찰자의 주관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는 결정론적 공간(즉자)으로 전제하며, 신체 역시 세계 안의 여느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과 법칙에 종속되는 연장적 대상, 즉 '대상화된 객관적 사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한계를 지닌다.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은 이러한 심신 이원론적 구도를 혁파하고, 지각의 주체로서 ‘체험된 신체(lived body)'를 복권시킨다. 그에게 신체는 세계라는 무대 위에 놓인 소품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소유하고 세계와 소통하도록 해주는 근원적 매개이자 관점 그 자체이다. 따라서 지각은 오성의 반성적(reflective) 판단이나 외부 자극의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주체의 명시적이고 반성적인 인식이 개입하기 이전에 신체가 세계와 이미 맺고 있는 '선반성적(pre-reflective)'이고 실천적인 얽힘이다. 주체는 표상적 사고가 아니라 '신체'를 통해 세계를 자신의 고유한 실천적 장(field)으로 지향하며,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신체의 원초적 지향성을 인지적 표상과 구분하여 '운동 지향성(motor intentionality)'이라 명명한다.

신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은 '신체 도식(body schema)'이라는 개념을 통해 구체화된다. 신체 도식은 신체 각 부분의 위치와 상호 관계에 대한 역동적이고 암묵적인 앎으로, 주어진 상황의 요구에 맞추어 신체를 즉각적이고 총체적으로 조직화하는 체계이다. 메를로퐁티에게 '습관'이란 지적인 규칙의 습득이나 단순한 생리적 반사 작용의 기계적 누적이 아니다. 그것은 신체 도식이 새로운 도구나 행위를 자신의 영역으로 편입시켜 세계와의 실천적 관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숙련된 목수의 망치나 맹인의 지팡이는 지각해야 할 대상적 사물이 아니라, 신체 도식의 연장이 되어 주체가 세계를 지각하는 '새로운 감각 기관'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신체의 선반성적 지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병리학적 사례가 '환상지(phantom limb)' 현상이다.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환자가 여전히 상실된 부위의 존재를 느끼거나 그 부위로 실천적 행위를 시도하는 현상에 대해, 경험주의는 절단면의 신경 말단에서 오는 생리적 자극의 잔여로, 주지주의는 과거의 기억이나 심리적 억압에 기인한 인지적 환상으로 이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환상지를 생리적 인과율의 결과물이나 인지적 표상의 오류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에게 환상지란, 물리적 신체의 일부가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신체 도식이 기존에 세계와 맺고 있던 실천적이고 의미 있는 관계를 포기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상처받기 전의 친숙한 세계'를 향한 운동 지향성이 신체에 여전히 깃들어 있는 상태, 즉 신체적 주체의 세계에 대한 실천적 개입이 잔존해 있는 현상이다.


[문제]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의 현상들을 탐구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 보 기 >
[사례 A]
피아니스트 갑(甲)은 악보를 보지 않고도 건반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며 복잡한 곡을 유려하게 연주한다. 하지만 누군가 연주를 멈추게 한 뒤 특정 화음의 건반 배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거나 명시적인 언어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면, 그는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허공에서 움직여본 후에야 겨우 설명해 낸다.

[사례 B]
우측 팔이 팔꿈치 아래로 완전히 절단된 사고를 겪은 환자 을(乙)은 눈앞에 놓인 물컵을 보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상실된 오른손을 뻗어 컵을 쥐려는 동작을 취한다. 그는 오른손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잊을 만하면 상실된 오른손 끝의 통증을 호소한다.

① 주지주의적 관점은 [사례 A]에서 피아니스트 갑이 연주 중에는 건반을 정확히 짚어내면서도 이를 명시적으로 표상하여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온전히 해명하는 데 한계가 있겠군.
② 경험주의적 관점은 [사례 B]에서 환자 을이 상실된 오른손에 통증을 느끼는 현상을 절단 부위 신경의 물리적 자극에 따른 기계적 인과 과정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 하겠군.
③ 메를로퐁티의 관점에서 [사례 A]의 피아니스트 갑이 건반을 능숙하게 짚어내는 것은 피아노를 '대상화된 사물'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신체 도식의 재편성을 통해 악기를 체험된 신체의 연장으로 편입시켜 실천적 장(field)을 확장한 '습관'의 결과이겠군.
④ 메를로퐁티의 관점에서 [사례 B]에서 환자 을이 컵을 쥐려는 동작을 취하는 것은, 주체의 반성적 오성이 물컵이라는 감각 여건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상실된 신체의 궤적을 능동적으로 추인하여 대상을 구성하려 한 인지적 표상의 결과로 이해해야 하겠군.
⑤ 메를로퐁티의 관점에서 [사례 A]에서 갑이 즉각적으로 연주하는 행위와 [사례 B]에서 을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는 행위는 모두, 반성적 인식이 개입하기 이전에 신체가 세계의 의미망과 맺고 있는 '선반성적' 얽힘이자 '운동 지향성'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겠군.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