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토나 [438509] · MS 2012 · 쪽지

2016-01-22 18:17:25
조회수 3,733

공부도 안잡히고 나른해서 이야기 풀어봅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716273

*이 글은 타 커뮤니티에 제가 올린 글을 그대로 복붙해 온 것입니다. 그 커뮤니티 특성상 모든 내용은 반말로 작성되어 있으며, 이 부분이 오르비 규정에 어긋날 경우 수정하겠습니다. 글을 그대로 복붙해서 쓰는 목적은 당장은 수정할 내용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며,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생각을 들어보며 피드백을 받고자 함이니,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거나 궁금한 사항, 피드백 등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태그를 잘못 단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이제 2월이면 23개월간 몸담았던 초등학교에서의 복무도 끝이 난다. 별의 별 일도 많았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잘 대해주시는
대부분의 선생님들 덕에 정말 행복했다. 이 애들이 성인이 될 때 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람은 한 번 만나면 언젠간 헤어져야
하는데 뭘 어쩌겠니. 공익 복무기간의 뒷부분 1년 정도를 수능에 썼고, 그 시험도 끝났고, 교대 면접도 끝났으니 그 썰이나 풀어보고자 한다.




문과생임에도 책을 별로 읽지를 않았어서 문법이 개판이고 문체도 오락가락하며 문장력도 노답이니 배우신 여러분들이 적절히 이해하고 넘어가주길
바란다. 썰이라 3줄 요약 따윈 없으니 그런 거 없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뒤로 가기 누르고 다른 글 보고 있는 게 정신 건강에나 시간
절약에나 이로울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근무 시작이 아닌, 근무를 시작하기 1년 전쯤부터니까 초등학교 얘기만 듣고 싶으면 바로 아래에 ---- 그어놓은 부분을
찾으면 된다.




집에 돈도 없고 성적도 원하는 성적도 나오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에 안 갔다. 알바 몇 달 뛰다가 그 다음해에 1년 공부했지.
원하는 성적 ( 연대 경제~ 사회대 성적권 – 본인은 고1때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1지망도 연대, 2지망도 연대였다. 고경 4년 전장 vs 연경
고르라면 후자를 고르는 미친놈이었다. )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만족할만한 성적이었다. 1등급 4개, 3등급 하나. 수시 우선선발 기준은
맞추었으나 지원했던 연대, 고대, 성대 모두 예비번호도 못 받고 광속 탈락했다. 그렇게 정시로 넘어갔지. 고딩때부터 원래 꿈은 교사였는데,
초등교사가 되자고 교대를 쓰자니 내신이 망한 수준이라 비벼보지도 못하겠고, 중등교사가 되자고 사범대를 쓰자니 중등임용고시의 되도 않는 경쟁률이
날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1년 동안 시험만 봐대서 시험에 지쳐있었던 것인지, 그냥 앞으로 시험을 더 보기 싫다는 마인드가 생겨서 사범대는
아예 거르게 되었다.




  그렇게 정시 가군에는 그냥 적절히 점수 맞춰서 한양대 중간급 학과를 썼고, 나군엔 경인교대를 쓸까 하다가 내신 때문에 합격을 장담하기
어렵단 학원 센세들의 의견을 믿고 거른 뒤 아예 안전 마지노선으로 시립대 사회복지를 썼다. 그 성적이면 시립대 경영도 쓸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재개발 사업 시행사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20년 가까이 빈촌에서 살다가 내몰리는 사람들을 보고 상당한 연민을 느꼈던 바가 있고,
박봉에 스트레스도 많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그냥 사회복지를 고르기로 했다. 결과는 가나군 모두 최초합이었고,
한양대와 시립대의 두 가지 선택지 중 내가 고른 답은 전자였다. 일단 전자 가서 기업체 다니면서 쓰고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기부를 하자는
마인드였지. 난 결혼 같은 거 할 생각도 없었고, 내가 전자를 골라서 기부하는 돈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이 받을 것이 내가 사회복지사를 하면서 그
사람들이 받게 될 것보단 많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원서시즌이 끝나고 1년간 공부했던 학원에서 단기간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임시로 애들 지도하는 부분(사감노릇)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맡았던 부분은 중3(얘들이 올해 20살이 된다.)과 예비고3이었는데, 걔들과 붙어 지내는 시간이 종강 타임에 가까워질수록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원서를 제대로 잘못 썼다는 확신만 커졌다. 가군에 사범대를 쓰든, 나군에 경인교대를 쓰든 둘 중
하난 했어야 했고, 그 둘 중 하나에 들어가야 했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였고, 일단 내 첫 캠퍼스라이프를 왕십리에서 시작. 교직과는 거리가 있는 과였지만, 취업률은
파경/경영/경금 트리오에 못 미치지만 한양대 문과 중엔 괜찮은 편이라 다닐 만 하다는 생각도 듬. 하지만 공부를 빡세게 한 건 아니라 학점은
3점대 초반인 평균 이하의 학식충으로 2개 학기를 보냈음. 대부분의 학식충들이 그러하듯 1학년 마치고 줄줄이 시급 300원에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나도 그 중 하나가 됨. 공익들은 11~12월에 자기가 근무할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올해부턴가 폐지되고 뺑뺑이됨), 난 2년 후
이 학교 이 과로 돌아올 것인지 아니면 교직으로 다시 길을 바꿀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근무지를 학교로 하려고 했음. 그런데 학교 근무는 일단
교육청에서 모으고 학교별로 TO를 뿌리는 거라고 하기에 교육청 선택.




근무지 선택 후 영장이 날아왔고, 그전에 하던 알바 다 사표 쓰고 머리밀고 훈련받으러 감. 사격을 좋아는 했는데 개못해서 9발밖에 못 박고
신세한탄 1주일가까이 한 듯. 훈련 마치고 근무지 받으러 교육청에 갔는데, 교육청에선 2개의 고등학교와 1개의 초등학교 중 초등학교를 내
근무지로 줌. 이때부터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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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생활의 상당한 부분을 수능에 할애했기 때문에, 수능위주로 썰을 풀었습니다. 학교 근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거나 궁금한 사항은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내가 근무하는 자리는 교무실이었음. 하는 일은 앉아서 민원전화 받고(대표 번호로 걸면 내 자리로 전화가 옴),
복사/스캔/제본, 플로터, 문서철 정리 등 학교에 필요한 일인데 교사가 하기엔 애매한 일들이었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일이 공장 급으로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불만이나 애로사항 가질 필요 없이 근무할 수 있었음. 시간이 남으면 애들 쉬는 시간 맞춰서 나가서 놀기도 하고 날이 너무
덥다 싶으면 착한 애들 뽑아서 아이스크림 사먹이고 그럼.




  그런데 이 사먹이는 것도 며칠 못가서 거의 없애버림. 애들이 “우리 선생님은 이런 거 안 사주는데 이 선생님은 사줘” 라는 말을
해버려서. 이게 자칫하면 애들이 정규 교원인 자기네 담임보다 나를 더 따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잖아? 사실 애들한테 너희 선생님은
여기서 일하신 대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나는 쓸 거 제하면 내 용돈이라 여유롭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직 급식 6년도 안 채운 애들이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관둠.
 
 월급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공익 월급은 현역 군인 월급을 기본급으로 하고 식비
근무일수 x 6000원, 교통비 근무일수 x 2400(현재는 2600)원이 나옴. 그러면 대충 한 달에 20만원 후반 대~ 30만원 초반대가
나와. 그러면 그 돈으로 내 핸드폰 요금, 학교 급식비, 출근 때 버스 요금 제하면 대충 10만원+@정도가 남음. 그 돈으로 내 최소 생활비
쓰고 남은 돈을 애들한테 쓰거나 하고 그랬음. 진짜 처음 한두 달은 핵빠듯하게 산거 같음.




 그런데 집에 빚이 좀 있다 해서 관할 교육청에 앙망문 쓰고 승인 받아서 겸직을 뛰기 시작함. 겸직하는 일은 당연히 과외랑 학원 일이었음.
학원이야 근무지나 거주지 근처에 학원 많아서 재학증명서 내밀면 앵간 해선 일하게 해줬고(대신 학원법 때문에 조교질은 힘들고 학원 행정업무 위주)
과외도 이전에 알아놓은 애들 알음알음해서 물고 할 수 있었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업무만 하던 학원일은 내 적성에 영 아니라 사람 구하고
퇴사함. 그 이후론 거의 과외만 뜀.



  과외가 진짜 내 적성에 잘 맞는지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하고 있음. 애들이야 중간에 몇 번 바뀌고 그랬지만 ㅇㅇ



  그리고 일반적으로 수도권에서 서성한 다니는 종자가 과외를 물면 보통 주2회 30이상/주3회 40~50을 받았는데, 나는 집안이
어려운 애들이 주요 대상이었고 돈 욕심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었어서 거의 주2회면 20, 주3회면 25 정도로만 받았음. 그리고 그것도 은근히
부담이 돼서 한 달 채우고 난 뒤나 시험 끝나고 그럴 땐 애들 데리고 맛있는 거 사먹이러 감. 피자 시키거나, 나가서 애슐리, 빕스 그런데
ㅇㅇ




잡설이 길어졌는데 수업료 받은 건 애들 사주고 교재비로 쓰고 남은 건 내 용돈에 조금 보태거나 적금을 부었음. 돈 걱정도 없어졌겠다 이제
근무지에서는 근무지에서 주는 일 하는 시간, 과외 수업 준비하는 시간 빼고 남은 시간동안 할 게 필요했는데,(학교가 바쁘게 돌아가는 3,7월,
9월과 11,12월의 5개월은 거의 학교일만 하다 퇴근하지만 남은 7개월은 여유로운편임.) 그게 돌고 돌아 결국엔 수능 공부였음.




처음에 수능 공부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목표는 사실 교대가 아니었음. 교직도 비빌 수 있고 기업체 취업도 시도해볼 수 있는 연대 수학과와
샤대 수리통계학부였음. 문돌이가 공돌이로 전환하는 데에 2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고 계획도 그렇게 짰었음. 진도는 느렸지만 수2(이제 미적2가
되는 그거) 방부등식부터 차근차근 하고 지구과학 화학도 사서 읽고 풀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일하면서 애들과도 은근히 붙어있게 되고, 서로 도와가면서 지내다보니 슬슬 애들이랑 정이 들기 시작하더라. 10~11살
차이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그렇게 잘 따라주고 도와주던 거 정말 고맙고 화답으로 뭔가를 해주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많이 붙어있어서 서로
잘 알고 믿음을 쌓아 놓은 애들은 그게 잘 되었는데 그렇지 않은 애들의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냥 퍼주고 뭐 해주고 그러면
수상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할 거 같아서 좀 해주다 말았어. 그리고 애들한테 그렇게 해주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내가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그래서 연수학이고 설수통이고 다 갈아엎고 교대를 가자고 마음을 먹게 됨. 이게 작년 12월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수2, 기벡, 화1, 지1 등 이과 공부하던 거 다 갈아치우고 다시 문돌이로 전향함. 사탐도 내가 왕십리 들어갈 때
선택했던 과목 그대로 골랐음. 시험범위에 들어가던 내용이 그때와는 좀 바뀌어 있었지만 그래도 1년이면 되겠지 하는 마인드로 했어. 국어는 전에도
그랬듯이 평가원 기출을 기반으로 하고, 수학은 범위가 변한 것이 없으니 잊어버리거나 헷갈리는 개념 다시 정리하고 문제풀이로 연습했지. 영어는
그때도 EBS 별로 안좋아했어서 2번씩만 풀고 사설문제집 사서 풀어봄. 사탐은 EBS 기반으로 했고.


그렇게 시작한지 2달째인 2월에 가장 정들었던 애들인 6학년 애들이 일제히 졸업을 함. 공익 생활 중에 가장 아쉬웠던 하루가 그
졸업식이었음.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하면서 부르는데 왜 내 마음이 찡해지던지;; 눈물 흘리시던 선생님들도 계셨고 되게 아쉬워서
시무룩했던 애들도 꽤 보였음. 졸업식 다 끝나고 애들 돌아가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잘가라고 인사하고, 몇몇 애들 부모님들도 여러분 나한테 오셔서
악수 건네주시고 고맙다고 인사해주시는데 진짜 짠하더라. 그렇게 애들은 부모님들과 손잡고 학교 빠져나가고 나랑 선생님들 빈 교실에 있는데 보람과
아쉬움이 한꺼번에 느껴졌었어. 거기서 초등교사 외에 내가 고를 직업은 없다는 마음이 더 굳어졌지.




그렇게 다시 3월이 오고 새 학기가 시작됐음. 학교가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즌이 2월 하순~3월말 하고 12월인데, 개인적으로 12월보다
3월이 일이 몇 배는 많은 거 같음. 새로 전입오신 선생님들 적응기간, 애들 신입학인데다가 전학 오는 애들도 가장 많고 가는 애들도 가장 많음.
그리고 연간 교육과정 같은 거 만들고 결재할 것도 한 트럭, 새로 만들 학습지나 안내장 등등도 한 트럭. 3월엔 주당 공부시간이 30시간도
안됐던 거 같음. 퇴근하고 집에 가면 책 2시간도 못보고 뻗어서 잠듬. 주말에나 겨우 충당했던거같다. 애들 맨날 하교시간이면 서로 인사하고
노가리 까다 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2015년 3월엔 그럴 여유도 별로 없었음. 그리고 저번 연도에 애들한테 쓴 돈의 합이 대충 계산해보니 90
정도였는데, 이정도로 썼다간 담임의 지위와 내 위치, 그리고 내 자금 문제에 모두 문제가 생길 거 같아서 올해는 그 절반 이하로 줄이기로
했음.




그래서 어느 정도 선을 가지고 애들이랑 그럭저럭 지냄. 4월에는 3월에 비해 상당히 일이 적었어서서 이때 공부를 평소보다 좀 더 할 수
있었음. 주당 50-60 찍었으니 이후로 다시 학습량을 정상궤도로 올릴 수 있을 거 같더라고. 그런데 5월이 다시 나를 배신했지. 가정의 달이다
스승의 날이다 해서 공개수업 준비하고 이것저것 상 주느라고 업무량이 다시 지수함수(a>0)의 그래프만큼 늘더라. 3월만큼 일이 많았던 것은
아니라서 그래도 45시간 정도씩은 한 거 같아.




그렇게 6월 모의고사를 봤고, 공부시간이 적었던 만큼 성적도 좀 모자라게 나왔어. 성적표를 가지고 있진 않은데 거의 2등급 중위권정도였던
거 같아. 학기말에 조금 빼고는 학교일이 많진 않으니까 7~9월에 스퍼트를 좀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지. 그리고 글자 그대로 7~8월은 공부가 꽤
순조로웠어. 진짜 더워서 답이 없는 날엔 많이 도와줬던 6학년들 불러내서 써리원 먹이고 나도 먹고 그랬지.




8월도 막바지에 오고 2학기가 시작됐어. 9월에 춘교 졸업한 초임이 한 분 전입을 왔음. 나보다 4살 위였지만 학교 내에서 애들 포함해서
나랑 나이차가 가장 적게 나는 사람이 온 거지. 교대 준비하고 있던 터라 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에 들긴 했지만 일단 내
성적 올리는 것도 필요하고 이 사람도 이제 처음 근무하는 거라 업무도 배우고 적응할 기간이기도 해서 그런 건 안하는 게 낫다 생각하고 말았어.
9평은 내가 접수를 못했어서 시험장에서 보진 못했는데 풀어보니 2등급 상위~1컷은 나오더라. 조금만 더 공부량 늘려서 연습하면 될 것 같았어.




  그런데 9월 6일인가? 작년에 졸업한 친한 애 중 하나가 나한테 SOS를 쳤어. 영어 학원 다니려고 가서 시험을 보는 데,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시험지를 백지로 내고 온 거야. 가서 보니 이미 중학교 1학년 1학기 영어 성적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뭐가 문젠지를 물어보니
5학년 때부터 영어를 안했대. 영어 선생님이 너무 무서운 분이었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그렇게 2년을 보낸 거야.




  그래서 다른 선생님과 애들한테 물어보니, 이 분은 애들이 좋아서 교직에 있는 분이 아니었어. 그냥 성적은 되는 데 다른 거 마땅히 할
게 없으니 교대 들어가서 졸업하고 임용이 된 사람이지. 이런 사람 교사 중에 꽤 많잖아? 그런데 그렇게 교직에 있다 보니, 애들은 그저 업무의
대상일 뿐이지 애정이나 그런걸 크게 느끼지 못해. 애들을 때할 때도 사무적으로 대하게 되고, 적지 않은 수의 애들은 이런 선생님을 대하고 뭘
해보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거야. 특히 초딩들은 더.




그래서 그 애 집에서는 애 좀 가르쳐 줄 수 없냐고 오퍼가 들어왔어. 일반적인 수험생이면 당연히 결과는 기각이지. 시험이 60일가량
남았는데 공부시간을 왜 내줘?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고 지금까지 10개월을 달려왔는데.




그런데 난 얘기를 해보러 그 집에 갔을 때, 도저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어. 그 학교가 있던 지역, 다시 말해 그 애네 동네는 대체적으로
임대아파트들이 단지를 이루고 있고, 대부분의 아이들의 생활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야. 방과 후 특기적성도 교육급여(수업료지원)을 받는 애들이
1/3이 넘어. 차상위계층, 국민기초생활수급자를 합치면 절반 가까이 돼. 집도 커봐야 20평 정도고 그중에 자가인 사람들도 얼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 그 자리에서 든 생각이, 얘를 내가 안하면 누가 해줄 수 있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 이 동네 집안에서 줄 수 있는 수업료는
많아야 25일 텐데, 앵간히 급한 대학생 아니면 이 가격에 안하려고 하겠지? 그리고 방이 좁아서 수업하기도 불편하고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좀
있었어. 그래서 난 차라리 학교를 내년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얘는 잡아서 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난 이번에 안 되면 내년 수능이 있지만,
얘는 이번에 뒤처진 영어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지 못하면 2학년 1학기 내신부터 줄줄이 부서질 거고 그 이후론 람머스 베인 마냥 알아서 구르는
스노우볼이 될 테니까.(롤충 ㅈㅅ)




그래서 학교에서 5,6학년 영어 커리큘럼 자료를 구하고, 그에 적당한 교재를 사서 시켰어. 월수금 주3회 2시간씩. 처음엔 잘 이해를
못해서 한 단원을 넘기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멘탈이 지치고 그랬지만, 한 단원 한 단원 해내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때마다
속이 시원해지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보람을 경험해볼 수 있었음. 앞서했던 어떤 과외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쾌감이었지.




9-10월은 과외에 학교 업무를 하면서도 주당 공부시간은 40~50정도 였어. 수험생의 공부시간이라기엔 턱없이 적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게 내 조건 내에서 끌어낼 수 있는 최장의 시간이었어.




11월이 되자 학교엔 예술제 준비가 한창이었고, 당연히 내 앞에 내가 할 일이 꽤 주어졌지만, 거의 다 해본 일을 변형해서 하는 거라 학교
일엔 시간을 그다지 많이 할애할 필요가 없었어. 막판 정리와 컨디션 조절에 올인 했지.




그리고 11월 11일 수능 전날이 왔어. 수요일 목요일 이틀을 휴가를 쓰고 수험표를 받고 과외수업을 미룬 뒤 집으로 갔어. 12년
수능(왕십리 입학하던 시즌의 수능)보다 몇 배는 더한 긴장감이 엄습해오더라. 학교랑 여기저기서 들어온 초콜릿 떡 쌓아놓고 지금까지 봐온 것들을
쭉 훑어봤지. 공부시간이 부족했던 티가 좀 나긴 했지만,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다 지나간 일이니 된 부분만 확실히 정리를 했어.
잠은 11시쯤 잔 거 같아.




그리고 수능날 7시 반쯤 수험장으로 가서 자리 확인을 하고 가져갔던 연습용 문제 몇 개를 풀고 나니 감독관이 들어오고 시험을 봤어. 국어
시험지를 주는데 생전 처음 경험하는 레벨의 긴장감이 다가왔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니 그냥 풀었어. 4개 과목 다. 끝나고 집에 와서
채점하니 6평보다 조금 성적이 안 나왔어. 올해 본 시험 중에선 가장 성적이 안 나온 거지. 공부시간이 주당 60-70은 되었어야 성공 각이
나오는데 40-50에 머물렀으니 당연한 결과지. 9월에 애 하나 받으면서 더 줄었고. 끝나고 이갤 저갤 돌아다니다가 선관위 공익은 이번 수능에
성공했다는 글을 본 거 같은데, 걔는 근무지 8시간 + 집에 가서 4시간 정도 공부했다고 하니 필요한 공부 시간 다 뽑았고, 계속 했을 테니
성공한 건 당연한 결과겠지. 내가 안 해서 안 나오니까 별로 짜증나지도 않고 열폭도 안했던 거 같아. 누가 보면 병신 지랄하고 있네 구라도
정도껏 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로 그랬어 나는.




내가 9월에 애 받은 게 내가 수능에 괜찮은 성적을 못 받은 결정타일지 아닐 진 모르겠는데, 그게 결정타였다고 해도 난 그 선택을 했던
거에 후회하지는 않아. 이제 걔는 초 5,6, 중1 영어 커리큘럼에 있는 모든 부분 다 패스했고 요즘은 잘 안되던 작문 연습(서술형 평가
대비)이랑 단어 암기 꾸준히 시키고 있으니까. 수시로 테스트해서 앞부분 잊어버린 거 없는 지 체크도 하고 있는데, 별로 틀리는 것도 없더라고
ㅇㅇ 내 수능 성적 주고 이걸 얻었으니 후회는 없어. 최소한 둘 다 망하진 않았으니까.




정시는 어차피 어디 써도 애매할 성적인거 가장 집 가까운 곳을 썼어. 면접 준비도 1달동안 꾸준히 하고 했지만 막상 1대1로 면접관 앞에
앉으니 긴장되어 좀 떨고 그랬어. 하고 싶은 얘기 100% 하진 못했어도 80%정도는 하고 나온 것 같아. 수능 성적도 내신도 밀리는 편이고
면접도 아주 잘 본 건 아니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어. 그냥 아예 확률로 따져도 5:1 ~ 3:1 수준이라 낮은 편이고 ㅇㅇ.




요샌 학교 방학이라 일도 없고 과외 수업준비 외엔 할 게 없어서 17수능 대비해서 한국사 공부랑 사탐 다시 하고 있어. 그리고 공익 생활
하면서 과외 받았던 애나 친구들 데리고 겨울방학 다 가기 전에 스키장 같은 곳 데리고 놀러 갈 생각이야. 지난주에 중3 애들 7명 데리고 갔다
오기도 했어. 준비도 좀 부족했고 돈은 90정도 썼지만 애들이 재밌게 놀았다고 해서 그거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있어. 앞으로의 여행도 부족했던 점
개선해서 다녀올 계획이야. 그리고 내년 여름에도 애들 데리고 캐리비안 베이나 오션월드 갈 생각이고 ㅇㅇ 내가 30% 이하의 확률로 이번에 붙어도
가는 거고, 안 된다 해도 데리고 가는 거고 ㅇㅇ 안 된다 한들 그때 놀러 가서 빠지는 공부 시간은 내가 평소에 더하면 되는 거니까 별 지장은
없을 거 같애.




14년 초부터 시작해서 16년 초까지 23개월 동안의 공익 생활도 이제 막바지야. 애들이랑 좋게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일인지 트러블도 있었고 좀 서먹서먹해질 때도 있었어. 이제 이런 애들을 뒤로 하고 학교를 나온다는 게 너무 아쉬워. 일반적인 결과랑 예상이
그렇듯이 내가 16학번으로 교대에 입성하긴 꽤 어려울 거야. 하지만 그 부분에 실패한다하더라도 후회하지도 않고, 지난 23개월 동안 애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있으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그리고 난 그것만으로도 보람차고 만족스러운 복무를 했다고 생각해. 갤럼들은 병신년
한해 목표한 바를 이루시고  보람차고 행복한 한해 보내길 바래. 읽어줘서 고마워.




두서도 없고 정리도 안 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피드백이나 궁금한 사항 등은 댓글로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pecial thanks to




강**(02.3.9) 권**(02.5.4) 김**(02.4.2) 김** (02.10.13) 류**(02.3.18) 유**(02.5.15)

유**(02.5.28) 윤**(02.8.15) 이*(02.3.14) 임**(02.1.5) 장**(02.3.17)
정**(02.7.10)




김**(03.8.13) 김**(03.3..) 김**(03.8.13) 김**(03.5.29) 김**(03.10.6)
김**(03.11.10)
김**(03.6.9) 남**(03.11.22) 노**(03.6.5) 노**(03.11.24)
박**(03.6.11) 박**(03.2.2) 안**(03.2.3)
윤**(03.2.15) 이**(03.7.15) 이**(03.3.15)
이**(03.7.15) 임**(03.1.27) 임**(03.8.27)
조**(03.9.27) 조**(04.1.10) 조**(03.1.2)
채**(03.10.13)




임**(04.4.26) 윤**(0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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