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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tmacht [1390254] · MS 2025 · 쪽지

2026-01-12 01: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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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오늘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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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시작하기에 앞서 설문 하나 !!


현재 제목을 쓸 때 'X월 XX일 오늘의 상식'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부제를 붙이는 게 어떠할지 여러분 의견을 구합니다.


안 붙이면 그대로 가고, 붙인다면 대충 '1월 11일 오늘의 상식: 총통과 그의 아들' 정도가 될 거 같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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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스페인은 무려 29년 동안이나 왕 없는 왕국이었던 적이 있다


히틀러만큼은 아니지만 직함 '카우디요'가 총통으로 번역되어 국내에 알려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는 1947년 국민투표를 통해 스페인의 왕정복고를 결정한다


일단 왕정복고가 결정되긴 했는데 그러면 왕을 데려와야 할 것이 아닌가?


문제는 합법적인 왕위 계승권자가 버젓이 있는데 도저히 프랑코의 입맛에 안 맞는다는 것


바로 그 계승권자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의 확고한 자유주의 성향 때문이었는데


만약 그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면 프랑코 입장에서는 그가 공개 석상에서 반정부적 발언을 마구잡이로 내뱉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프랑코는 아예 보르본 왕가 말고 압스부르고 왕가(!!)의 오토 합스부르크를 찾아가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으나


마치 둘이 짜고 친 것처럼 오토 합스부르크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이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 상황


결국 맘대로 되는 게 하나 없었던 프랑코는 왕위를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다만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의 아들 '후안 카를로스'가 스페인에서 공부하고 싶어한다는 말에 그의 입국을 허락한다


기록에 따르면 후안 카를로스는 프랑코를 매우 잘 따랐다고 둘의 사이는 굉장히 원만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와 나름 어릴 때부터 떨어져 지낸 후안 카를로스는 프랑코를 아버지처럼 대했고, 아들이 없었던 프랑코 또한 아들뻘의 후안 카를로스를 자식처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독재자답게 끝까지 그를 다른 왕위 계승 후보들과 저울질하던 프랑코는 끝까지 자신에게 순종하는 후안 카를로스의 모습에 만족했고, 결국 그를 1969년 '스페인 공',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정말 프랑코의 뒤를 이어 스페인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당시 스페인의 수상이자 프랑코의 실질적인 계승자로 루이스 카레로 블랑코 제독(해군원수)이 살아 있었기 때문


그런데 그가 1973년 분리주의 단체의 테러로 사망하자 분위기가 급변한다


프랑코 입장에서 잘 키워놨던 후계자가 하루아침에 폭탄 테러로 사망했고, 남은 대체재는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


...이라고 생각하던 그의 눈에 버젓이 살아 있는 후안 카를로스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코가 실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프랑코는 자신의 양자 비슷한 관계이자 스페인의 왕위 계승자인 후안 카를로스를 자신의 실제 후계자로 내정할 수밖에 없었고, 군부 또한 후안 카를로스가 프랑코의 뒤를 잇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코는 1975년 죽음을 맞이하고


가장 존귀한 사람이었던, 그래서 모두가 허수아비라고 생각한, 후안 카를로스가 드디어 '후안 카를로스 1세'로 즉위한다


당시 스페인의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다


프랑코의 밑에서 오랫동안 자랐고, 그와 사실상의 부자 관계로서 유대감을 쌓아 온 그가 통치 방식을 바꿀 리 없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좌익 운동가들은 점점 약해지는 독재 권력에 맞설 총파업을 일으켰고 경제 상황은 더 안 좋아지는 와중이었다


프랑코의 후계자가 즉위했고, 국민들은 독재의 끝을 원하고, 그들 앞에 무장한 군 병력이 진압을 준비하는 지옥도의 시작을 모두가 예견하고 있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숨겨 왔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독재를 옹호하던 벙커파의 수장을 총리 이하 내각을 파면했다


정치 개혁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좌익 정당을 합법화하고, 의회를 개설하고, 자유 총선거를 약속했다


1977년 약속대로 총선거를 실시하고 이듬해 스페인 헌법을 제정해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했다


철권 독재자의 아들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전향적인 태도에 스페인 국민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관측자들도 깜짝 놀랐다


어쩌면 프랑코의 정책을 그대로 반복해 철권 통치를 하고 절대 권력을 누릴 수도 있었을 그가, 국민을 위해 기꺼이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그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하루는 자신에게도 스페인의 국내 정치를 알려달라며 내각 회의 참여를 요청한 후안 카를로스에게 프랑코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하께서는 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통치하실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정치에 대해 알아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지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설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프랑코 사후 후안 카를로스 1세의 결단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어쩌면 프랑코 또한 자기 사후 민주주의가 반드시 오리라는 예견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뿐이다


참고로 후안 카를로스 1세 폐하께서는 아들인 펠리페 6세 폐하께 선위하시고 지금도 스페인의 상왕으로 계신다


재위 말년기에는 사치와 문란한 성생활로 몇 차례 구설수에 오르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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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량이 좀 깁니다.


제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21세기 군주의 이야기를 적다 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좀 급하게 끝난 면도 있을 텐데, 관련 정보가 아주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더 궁금해진 부분이 있다면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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