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중심 표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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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아래 도끼 들었다."
이 글귀는 말을 잘못하면 화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을 지닌 속담이다. 말을 잘못한다는게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비난중심 표현'이다. 대상 혹은 논의범주에 착오가 많을 수 있어 비판의 대상을 명확히 하겠다. 비난과 비판은 분명 다른 것이며,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비난중심 '표현'이다. 나는 비난중심 표현이 지니는 위험성(혹은 단점)을 의미론적, 심미적(혹은 미학적) 측면에서 비판할 것이다. (이 글에 사회적 측면은 포함되지 않는다.)
먼저, 주요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겠다.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라는 뜻이다. 비판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라는 뜻이다. 뜻을 통해 알 수 있듯 비난과 비판의 차이는 사실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는 그 목적에 있다. 비난의 목적은 상대를 나쁘게 말함으로써 그 대상을 깎아내리고 궁극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자신의 상대우위를 증명하고자 하는데 있다. 비판의 그것은 논증과 비평을 통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고 가치판단을 행하는데 있다.
비난중심 표현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살펴보자. 비난을 할 목적을 지닌 말과 글을 의미한다. 비난을 할 목적을 지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자신의 상대우위를 증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표현에서 비난의 목적이 표면상에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최종적으로 이 목적으로 수렴한다 생각하며 그 근거를 대겠다.
목적이 드러날 때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니 드러나지 않을 때를 따져보자. 아무거나 하나 당신이 최근에 본 비난중심 표현을 떠올려봐라. 아마 타인의 특정 상황이나 표현에 대해 비난하는 표현일 것이다. 인간을 합리적 존재라 가정한다면, 인간이 자신이 손해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행동을 굳이 할 이유는 없다.(여기서 손해란 정서적,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모두 포함한다.) 그렇다면 비난을 통해 그 사람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대상에 대한 냉소적 감정을 얻을 수 있다. 냉소적의 뜻은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기어 비웃는 것.'이다. 그럼 타인을 비웃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과 타인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자신의 상황과 타인의 상황을 분명히 구분함으로써 감정적으로는 더 이상의 공감이나 동정을 거의 완전히 밀어낼 수 있다는 부가적인 내용은 차치하겠다.) 두 대상을 구분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비교와 대조의 과정을 수행했다는 뜻이고, 이는 다시 최소한 두 대상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약하자면, 상대의 상황을 보고 자신의 상황을 떠올린 다음, 그 상황들을 비교&대조한 다음, 명확히 선을 그음으로써 비웃는다고 줄여볼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비난의 목적은 최종적으로 타인에 대한 자신의 상대우위를 증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난을 비판하는게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비난 자체에 큰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그 비난을 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기까지라면 가끔의 비난은 정서적, 정신적으로 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난을 중심으로 한 표현을 함으로써 문제가 생긴다.
비난을 표현한다면 사람들은 그 표현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때 어떤 주제에 대해 비난을 했는지를 파악해보면, 비난의 당사자가 지닌 결점을 살필 수 있다. 상대가 스스로 자부하는 점을(다른 어떤 종류의 방법으로 표현된 말과 글에 비해) 명확히 알 수 있게된다. 이는 상대가 가진 소위 '최고의 패'라고 불리는 것을 벌써 까버린 것이 되며 또한 심도깊게 그 패를 활용할 수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패를 까는 과정(자신과 그 자부하는 점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는 과정)이 너무나 짧았기에 그리 설득력있는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심미적(혹은 미학적) 관점에서 비판을 해보겠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이며 이를 우선 정의해보겠다.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자신의 목적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어떠한 외부의 목적도 가미할 필요가 없는 그 어떤 것'라고 정의하겠다. 이는 칸트의 표현을 빌린 것으로, 아름다움은 심상속의 논리 구조를 통해 확정된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즉, 추가적으로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가 적을수록 아름답다.
비난중심 표현은 이런 정의속에서는 아름답지 않다. 비난중심 표현이 아름답지 못한 이유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과 관련이 있다. 이는 따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목적에 부합하게 되는 성질(혹은 상태)이다. 예를 들어, 정말로 아름다운 미인이라면,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표현할(말 혹은 글로) 필요도 없다. 그냥 옆을 걸어가기만 해도 자연스레 증명이 된다. 즉, 의도없이(혹은 드러나지 않게) 목적을 완성해내는것이 '목적 없는 합목적성' 달성의 핵심이다. 하지만 비난중심 표현은 그 의도가 아주 쉽게 드러나고 목적을 달성했음을 따로 인정받아야 그 역할이 끝난다. 이런 점에서 비난중심 표현은 아름답지 않다. 그리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배척받진 않더라도 추구되지 않는다.(이를 사회적 측면으로 확장할 수는 있어보인다.)
나는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비난중심 표현을 비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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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아파여!
일찍 주무셔요.
인상깊네요 비난을 선을 긋는 행위로 파악해서 행위자의 자부심을 볼 수 있다는게 꼭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찔리기도 해요
이런 표현은 대체로 불안정하다. 스스로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외부의 반향을 필요로 한다. 논쟁, 공감, 분노 같은 반응이 없으면 말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남는다. 그 결과 표현은 독립적인 형식을 갖기보다는, 상황과 감정에 예속된 사건처럼 소비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상 설정의 협소함이다. 비난중심 표현은 필연적으로 대상을 단순화한다. 비난이 가능하려면 결점이 명확해야 하고, 명확한 결점은 대개 복잡한 맥락을 제거한 뒤에야 성립한다. 이 과정에서 말은 현실을 다루는 능력을 상실하고, 특정 장면만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
더 나아가 비난중심 표현은 화자 자신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말을 반복할수록 화자의 위치는 고정되고,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다. 언제나 판단하는 자리, 내려다보는 자리에서만 말하게 된다. 이는 사고의 확장을 가로막고, 표현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한다.
결국 비난중심 표현은 효율적인 언어일 가능성은 있어도, 풍부한 언어는 아니다. 빠르게 작동하지만 오래 머물지 못한다. 생각을 정리하기보다는 결론을 앞당기고, 이해를 넓히기보다는 선을 긋는다.
암냠냠
확실히 요녀석 글 잘 쓰긴 하네...난 책을 안 읽어서 그런가 필력에 한계를 느끼는데;
당신이 더 잘 쓰셔요.
글 진짜 잘 쓰시네여
잘 읽었습니다. 다만 초반부의 비난을 정의하며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해 자신의 상대우위를 증명하고자 한다 하셨는데, 이에 대한 반례가 너무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ex. 비도덕적 행동에 대한 경고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말 등) 글의 핵심 주장이 비난의 목적이 담긴 비난중심 표현은 의미적, 심미적으로 옳지 않으므로 지양해야 한다는 것인데 테제 자체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4문단에서 인간이 비합리적인 존재라 가정하지 않은 이유 또한 제시되어야 합니다.(인간은 비합리적으로 분노, 자기방어 등의 충동적 행위를 함) 이를 넘어간다해도 비난을 통해 냉소적 감정을 얻고, 이를 통해 상대우위를 증명한다라는 논리구조가 다소 비약적이라 생각됩니다.
글에 대한 반박도 열어두고 이를 재반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앞서 ~할 수 있다 라고 본인의 해석을 증명된 것처럼 이용하여 비약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난에 대해 정의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목적을 '상대에 대한 비교우의를 점하기 위한다' 라고 정해놓고 글을 전개하면 이후 어떤 관점에서든 순환논증에 빠지게 됩니다. 논증문은 맞지만 최소한 정의 단계에서는 중립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우선 비난의 정의에 대한 반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예시로써 비도덕적 행동에 대한 경고를 드셨는데 경고는 비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비도덕성을 근거로 한 행동 비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예시로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한 말을 드셨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타인과의 관계를 완만히 유지하기 위해 대상을 같이 비판하는, 일종의 군중심리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그 목적으로 구분했습니다. 이번에도 목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비난한다는 것은 비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그 표현은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빈말입니다. 그렇기에 반례로써 정합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두 번째 문단은 제 논리구조상에 비약이 있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무언가를 가정한다면 그 가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무리가 없다는 근거를 댔어야 했습니다. 저는 가장 단순화된 상황을 다루는 것이 가장 쉽기에 이런 조건을 달았습니다. 또한 비난을 통해 냉소적 감정을 얻는다는 말 또한 추측임을 인정합니다.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이 글에 생각보다 꽤 많아서 죄송스럽지만 몇 부분 집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순환논증에 빠지게 되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난중심 표현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비난중심 표현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논의범주를 명확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된 세부 용어들의 정의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비난에 대해 정의하는 과정은 선행되는게 맞다 생각합니다. 이제 정의에 있어 그 목적이 포함된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외부에 대해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표현은 일종의 벡터량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향하는 바에 관해 정도를 내포하여 외부에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표현 자체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 목적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난을 정의함에 있어 비난 자체와 그 목적이 모두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철학과신가요
고졸 백수입니다. 곧 물리학과 입학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