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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모르게써요 [1425786] · MS 2025 · 쪽지

2026-01-08 23:38:00
조회수 884

고3이 끝나고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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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졸업했습니다.

오르비는 원서 쓸 때 혹시 참고할만한 정보가 있을지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이런 글도 쓰게 되네요.


정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 수능 공부를 시작할 때 그 친구와의 연락은 저에게 엄청 큰 힘이 되었습니다. 

평소에 3시간도 공부 안 하던 저에겐 하루에 10시간 넘게 공부해야 했던 겨울방학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치만 그 친구와의 짧은 연락 한 번이 그 피로를 모두 가시게 해줬고 다음날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명문대에 가고 싶다던 그 친구의 목표에 맞춰 저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상반기, 그 친구와 관계가 끊겼습니다. 아주 사소한, 아주아주 사소한 문제 하나가 

그 친구와의 관계가 끊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구는 꼴값 떤다고 말할 모습이었지만, 제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당시 모의고사 성적표도 기대에 못 미치던 터라 그냥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한 달 정도 뒤에, 다시 한 번 정신줄을 붙잡았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공부량이, 부모님이 투자해주신 돈이, 내가 만든 실력을 버리긴 너무 아쉬워서, 정말 미친 척하고 공부만 했습니다. 밥 먹고 볼일 보고 자리 치우는데 15분도 쓰지 않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절 쫓아오는 그 친구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도망쳤습니다.


12월, 그렇게 열심히 도망쳐 온 결과, 그동안 보았던 모든 모의고사들 중 가장 높은 성적이 찍혀 있는 성적표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으니까. 수시로는 꿈도 못 꾸던 대학들을 내가 골라갈 수 있다는 현실이 저의 현실이라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이후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제 사고방식은 여전히 수능 시험에 머물러 있었고, 쓸데없이 읽히지도 않는 국어 지문을 뒤적이고, 일단 따 두면 좋다는 면허를 땄지만 그 후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허구한 날 릴스를 내리고 쇼츠를 내리는 제 자신이 싫었지만 무언가를 더 할 여력은 저에게 남아 있지 않았고, 그 사실을 마주한 순간 또 다시 난 시간을 썩히는 쓰레기새끼인가 라는 자괴감이 들며 무기력함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무너지긴 싫었기에, 토익 공부도 해보고, 그동안 미뤄둔 운동도 해보고, 해보지 않은 게임도 하고, 기타도 쳐보고, 나름 여러 활동을 해보려 노력을 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렇게 조금씩 나는 수능 이외의 삶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시 무너졌습니다. 저번보단 더 어이없게, 잔잔하지만 너무나 쓰리게 무너졌습니다. 3일 전, 학교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학교 축제에서 만났습니다. 화해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좋았습니다. 저도 찜찜했던 관계보단 다시 좋은 관계로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 생각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화해를 한 이후, 밥도 안 들어가고 모든 게 재미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생각없이 릴스 내리기도 싫었고, 그 많은 게임 중 단 하나도 재밌다고 못 느꼈습니다. 상반기에 무너졌던 그때처럼, 어쩌면 그때보다 더 크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냥 모든 걸 하기 싫어졌습니다.


이제 저는 그렇게 자신 있던 수능 국어 실력도 없어지고, 진학사에서 변화 없는 점공만 돌려보며 지냅니다. 눈 떠 있는 시간 대부분이 너무 싫어서, 일부러 기진맥진할 때까지 운동하고 도피성 잠을 잡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전 졸업을 했고, 더 이상 정해진 커리큘럼도, 저를 응원해주거나 채찍질 해줄 인강 강사쌤들도 없습니다. 너무나 불안하고 무섭고 모든 게 싫습니다. 그냥 자고 일어나면 죽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취업난이니 ai니 뭐니 하는 얘기들을 들으니 기대되던 대학생활도 점점 머리 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고요. 그냥 다 끝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지만, 대학 이후에 삶은 생각해보지 않던 저이기에,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방어기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냥 새벽감성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셔도 좋고, 욕을 하고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그냥 너무 답답해서 글 한 번 써봤습니다. 더 이상 친구들에게 찡찡대는 것도 피해가 갈 것 같아 여기다가 써봅니다.

당장 내일 일어나 쪽팔려서 지워버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ㅋ


서두 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은 부디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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