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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사자 [1375250] · MS 2025 · 쪽지

2026-01-05 02: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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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를 왜 항상 고점매수하려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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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요즘 입시 커뮤니티나 수험생들 사이에서 도는 "올해 XX전자 성과급 0% 떴으니까 XX공학과 입결 떡락하겠네" 혹은 "하이닉스 성과급 대박 났으니까 반도체학과 무조건 간다" 식의 여론을 보고 있으면, 주식 시장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고점 매수, 저점 매도'를 인생을 걸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과 입결이 당해년도 기업의 성과급 규모와 1차원적으로 커플링되어 움직이는 현상은, 냉정하게 데이터와 통계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근시안적인 '후행 지표 추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불과 몇 년 전의 컴퓨터공학과 광풍을 복기해 봅시다. 2020년에서 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수요가 폭발하면서 IT 업계는 개발자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소위 '네카라쿠배' 초봉 6천만 원 신화가 매일같이 뉴스에 도배되었습니다. 당시 컴공과 입결은 의학 계열 바로 밑단까지 치고 올라갔고, 문과생들조차 코딩 부트캠프에 뛰어들었죠. 그때 입학한 21, 22학번 학생들은 "졸업만 하면 억대 연봉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졸업 시즌을 맞이한 지금, 2024년과 2025년의 시장 상황은 어떤가요? 글로벌 금리 인상과 빅테크들의 구조조정, AI의 코딩 대체 이슈가 겹치면서 신입 개발자 채용 시장은 그야말로 얼어붙었습니다. 그때 '현재의 연봉'이라는 고점을 보고 진입한 수많은 학생들이 지금 공급 과잉의 파도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건, 입결이 미래의 수익을 보장해 주는 선행 지표가 아니라 그저 당시의 유행을 반영하는 거울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반도체 관련 학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전통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실리콘 사이클'을 타는 대표적인 시클리컬 산업입니다. 업황이 좋을 땐 연봉의 50%를 성과급(OPI)으로 뿌리지만, 업황이 꺾이면 거짓말처럼 0%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험생들은 고작 4년, 군대 포함하면 6년 뒤에나 사회에 진출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성과급이 잘 나온다는 건 현재 반도체 사이클이 '정점'에 와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고, 반대로 성과급이 안 나온다는 건 지금이 바텀이라 향후 상승 여력이 남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주식 고수들은 모두가 환호할 때 팔고 공포에 살 때 사는데, 입시 시장은 정반대로 '뉴스에 나온 호재'에만 반응하여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학과 입결이 성과급 뉴스 한 줄에 출렁인다는 건, 대다수의 대중이 산업의 장기적인 펀더멘탈이나 인력 수급의 희소성을 분석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마시멜로 개수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4년 뒤의 내 연봉은 지금 입학하는 해의 선배들 성과급 봉투 두께가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이 "지금 망했다"라고 외면할 때가 해당 산업의 인력 공급이 줄어들어 훗날 졸업 시점에는 희소가치가 높아지는 '블루오션'의 진입 적기일 수도 있다는 역발상이 통계적으로 훨씬 유의미한 전략일 것입니다. 지금의 1차원적인 입결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내가 사회에 나갈 5~6년 뒤 세상이 필요로 할 기술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바라보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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