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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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때부터 이곳에 적어도 5년에 한 번 꼴로는 돈과 부(wealth)에 대해 변해가는 나의 생각을 적어나가왔기 때문에 43살에 드는 이런 저런 생각도 아무 두서없이 남겨본다.
1. 사람이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은 공리다. 자유는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원초적인 자유를 보통 liberty라 부르고, 그 liberty가 보장된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확장된 자유를 freedom이라고 부른다.
2. 자유의 크기는 선택지의 숫자와 비례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지의 숫자는 돈의 크기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행복은 주관적이지만 선택지(option)는 객관적이다. 더 큰 돈을 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탐욕이라기보다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생물학이다. “사람은 자유를 갈망한다”는 공리에 기반하기에, 그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not humane but human)인 문제다. 자유를 원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다만 포기했을 뿐이다.
3. 어떤 선택지는 그 선택지를 이미 가진 사람에게만 보인다. 10억 달러로만 가능한 선택지는, 평생 100만 달러를 다뤄본 경험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미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큰 돈을 향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교환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점이, 아직 그 선택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돈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더 큰 자릿수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proxy를 동원한다. 가장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꿈’이다. 화성 개척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4. 자유가 일정 크기를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privacy라는 우산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privacy가 없는 부는 자유에 대해 음의 볼록성을 갖기 때문이다. 돈이 늘어날수록 선택지가 늘어나 자유는 커지지만, privacy가 보장되지 않으면 돈이 더 많아질수록 자유가 커지는 속도는 점점 둔화되고,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자유가 위축되기 시작한다. (엄밀한 수학적 정의라기보다, 자유의 체감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로서 말하자면) 그래서 일정 규모 이상의 부를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돈(W)이 자유(F)를 얼마나 키워주는가(dF/dW)”보다 “돈이 많아질수록 자유가 어떻게 변형되는가(d²F/dW²)”를 더 중요하게 보게 된다.
5. 한 세대 안에서 부를 일군 사람들을 흔히 자수성가라 부르거나, 반대로 졸부라 부르곤 한다. 전자는 과도한 미화이고, 후자는 과도한 폄하일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들을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표현인 NR(nouveau riche)이라 부르겠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NR는 처음에는 급격히 늘어난 선택지로 인한 자유를 탐닉하며 과시의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부의 size와 vintage가 늘어가면서, 자유에 작용하는 음의 볼록성을 인식하게 되고, 그 결과 그들은 public에서 private로 이동한다. 낯선 사람의 관측이 많아질수록 자유를 끌어내리는 마찰계수가 커지기 때문이다. 늘어난 부를 온전히 늘어난 자유로 치환하려면, 그 마찰계수는 작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SNS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public persona와 private persona를 분리한다. 이것은 NR과 old money의 공통점이며, 차이라면 old money는 그 분리를 유전처럼 체화했다는 점이다.
6. NR가 부를 일군 초기에 보인 행동들은 대개 그 사람의 본성에 가장 가깝다. “돈을 던져주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보라. 그게 그의 본모습이다.” 처음으로 산 것이 가장 그가 좋아하는 것이고, 처음으로 챙긴 사람이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다. 돈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드러낸다.
7. “찐부자는 이렇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부자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public persona를 본모습으로 오해한 경우가 많다. public persona는 가짜는 아니지만 부분일 뿐이다. 본모습은 언제나 public과 private의 조합이다.
8. 사람이든 기업이든, 어떤 entity의 재무제표는 숫자로 쓴 전기(biography)다. 그 안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항목은 자유현금흐름(Free Cash Flow)과 투자수익률(Return on Investment)이다. FCF는 “현실이 요구하는 모든 비용을 치르고 난 뒤에도, 얼마나 많은 선택지(자유)가 남아 있는가”를 의미한다. 회계적으로 말하면, 채권자도, 설비도, 유지보수도 모두 만족시킨 뒤 경영자의 의지에 자유롭게 복종하는 현금이다. ROI는 “제한된 자유 한 단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기 자신을 증식시키는가”를 의미한다. 곧 FCF는 “오늘의 자유”, ROI는 “내일의 자유”를 가장 간결히 설명하는 지표이다. 나는 이 두 원소를 바탕으로, "자유의 속도(the velocity of freedom)"를 측정한다. 그리고 그 속도가 가장 빠른 곳에 자본을 투하해왔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범위 내에서, 그 속도가 가장 빨랐던 entity는 언제나 나(myself)였다. (어떤 자산에 투자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
9. 부를 누리기 위해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임계선 아래의 건강은 대부분의 선택지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경우, 손실된 건강은 자유의 증식을 위해 부채처럼 동원된 결과이기도 하다.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건강을 비용으로 지불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을 희생해 얻은 돈은, 엔트로피가 써준 어음과 같다.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음에도, 몸으로 치르는 경험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10. Privacy와 tax는 자유의 마찰계수다. 이 둘은 자유의 ROI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부의 크기에 비례해 증가하는 마찰로 작동한다. 그래서 큰 부를 가진 사람들은 높은 privacy와 낮은 tax를 가진 법역으로 이동한다. 정보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들의 이동 속도 또한 더 빨라질 것이다.
11. 더 큰 부는 더 큰 시간 주권(time sovereignty)을 낳는다. Sovereignty란 외부의 강제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최종 권한이다. 시간 주권이 커질수록 내가 선택한 일(chosen)에 쓰는 시간의 비중은 커지고, vs 억지로 하는 일(forced)에 쓰는 시간은 줄어든다.
12. 부채는 음의 볼록성을 갖는, 미래로부터 빌려온 자유다. 미래의 자유 한 단위를 담보로 현재의 선택지 한 단위를 당겨온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FCF를 더 크게 늘리지 않는 한, 모든 부채는 자산이 아니라 오용된 자유다. 좋은 부채는 극히 제한적이다. 교육을 위한 학자금, 매출을 늘리기 위한 의료장비 리스, 비용을 줄이기 위한 영업용 차량 같은 경우가 그 예다. 부채는 설계가 완벽할 때에 한해 더 큰 부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레버리지이며, 조금만 어긋나도 시간 주권을 앗아가는 칼이 된다.
13. 보험 역시 기대값의 관점에서만 보면, 구조적으로 casino와 같다.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보험을 들지 않는 것이 확률적으로 옳고, 감당할 수 없다면 보험보다 먼저 그 사건을 감당할 수 있는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자동차보험 외에 어떤 보험도 들지 않았다.
14. 잘 설계된 선택은 시간 t라는 변수를 품은, 자유에 관한 좋은 함수 x=f(t)와 같다. 그 함수를 시간에 대해 적분(∫xdt)하면 더 큰 자유가 나온다. 다시 말해 좋은 함수를 가진 자에게, 더 큰 부를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시간의 흐름뿐이다. 그 함수를 쓰는 데 필요한 것이 지식이다. 지식이 부족할수록 불확실성과 운의 비중은 커진다. 어떤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판단할 때 지식이 없는 사람은 0~100% 로 측정을 하지만(완전히 운에 맡기지만), 지식이 더 있는 사람은 확률의 측정 정밀도를 45~58% 구간으로 좁힐 수 있고, 더 지식이 있는 사람은 비로소 51~52% 구간까지 좁힐 수 있다. 50% 이상의 확률로 이득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선택만을 반복하면, 처음 서너번은 누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지만, 큰 수의 법칙에 따라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계속 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15. t를 잘 배치한 좋은 함수 x를 쓰기 위한 것 - 지금 시점에서 열심히 수험 생활을 했던 25년 전을 돌이켜 보면, 그것이 공부를 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16. 그래서 자유는 선물도, 권리도 아니다. 설계의 결과다. 운에 의존해 우연히 부자가 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거대한 선택지, 거대한 자유, 거대한 부를 가진 집단은 대개 그들의 인생에서, 혹은 가문의 인생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값이 증가하는 아주 잘 설계된 “공식 x=f(t)”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집합이었다.
이상 스파에서 90분 간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던 시간 동안 들었던 생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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