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깎는노인 [1325791]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5-12-17 19:38:41
조회수 159

저희나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법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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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만인이 ‘틀렸으니 쓰지 말라’고 언도한 표현 몇 개를 변론해 보려고 한다. 이런 변론으로 이 ‘틀린 말’이 당당히 복권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너무 심려치는 말라. 다만 이러한 문제아들에 시선을 돌림으로써, 그것이 우리가 언어를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의도나 연원에 따라 말을 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이러한 변론은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말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랑이 오직 ‘예쁜 얼굴’만을 보는 것일 수는 없다. 전면적 사랑은 잠에서 갓 깨어난 부스스한 얼굴, 뒷간에서 끙끙대며 일보는 모습, 사소한 일에 세상을 뒤집어 엎을 듯 성질부리는 장면 모두를 허용할 때 가능하다. 우리가 우리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가늠하려면 ‘틀린 말’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를 보는 것도 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


 둘. ‘저희 나라’는 안 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을 듣다 보면 출연자가 사회자의 타박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제일 많은 지적을 받는 표현이 ‘저희 나라’이다. 대담자가 ‘저희 나라’라는 말을 할 때면 그 말이 거슬리는지 아나운서는 ‘우리나라죠’ 하며 끼어든다. 어떤 때는 ‘우리나라’라고 고쳐 줘도 계속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학창 시절 어느 선배는 모꼬지에서 ‘한마디’ 한다며 “저희 학과가 …”라는 말을 하다가 교수의 ‘열 마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저희 학과’면 난 뭐냐? 난 국문과 아니냐?"하는 비아냥거림을 당해야 했다. ‘저희 나라’, ‘저희 학과’를 써서는 안 되는 이유로 두 가지가 제시된다. 하나는 ‘저희’라는 뜻이 ‘듣는 사람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낮추는 것이므로, 우리끼리 말할 때 쓰면 겸손한 표현이 아니라 자기 비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버지, 마당은 저희가 청소할게요’처럼 ‘저희’가 듣는 사람을 제외한 모두를 뜻할 수 있어 한 모둠의 구성원일 경우에는 기분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틀린 말’을 자주 쓸까? 다른 이유는 없을까? ‘저희 나라’가 쓰이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표현이 ‘우리나라’가 쓰일 때와 똑같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저희 나라’는 아무 조건 없이 쓰이지 않는다. ‘저희 나라’를 쓸 때는 항상 상대방이 존대 받는 위치에 있을 때에만 쓰인다. 나이나 지위 따위에서 듣는 이를 존대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 쓴다. 손윗사람이나 다수 대중 앞에서 ‘저희 나라’라고 쓰지, 친구나 아랫사람들 앞에게 이 표현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희 나라’는 틀린 말이 아니라, 이유 있는 사용이라고 볼 수 있다. 담화상의 책략에서 나온 것이지 ‘아무 생각 없이’ 쓰지 않는다. (이상은 국어학자 목정수, 백낙천 교수와의 술자리 담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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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말들은 굳어 있지 않고 항상 흔들리고 있다. 국어학자들은 “오늘 저녁은 내가 쏠게”처럼 럭비공처럼 불쑥 엇나간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으면서도, 규범의 덫에 걸린 의미의 작은 떨림에는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관용의 최대치는 존재의 이유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틀렸다고만 하지 말고 그 말이 왜 언중들에게 널리 쓰이는지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말을 바꾸고 의미를 변경하려는 사람을 응시할 때, 우리의 언어놀이를 우리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왜 이리 ‘틀리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 건가? ‘차이’보다는 ‘차별’ 의식의 반영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진해(2007) 문제아들을 위한 변론





본고는 규범주의자들의 이야기도 경청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술주의자의 입장에서 한국어의 ‘-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그것의 본질을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이것과 관련하여 수년 전에 네티즌들의 권상우 비난 악플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건의 발단은 배우 권상우가 일본 기자단과 공식 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우리나라’가 아닌 ‘저희 나라’라고 했다고 해서 왜 ‘한국’을 낮춰서 말했느냐, 그것도 일본에서라고 하면서 권상우를 밀어붙인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필자는 누리꾼의 국어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목정수, 2014b: 341-351). 한국어 사용자 권상우는 ‘한국’을 낮춰 말하려고 한 의도가 전혀 없었을 것으로 보았고, 권상우가 ‘저희 나라’라고 한 것은 공식적인 기자 회견장에서 말의 상대가 되는 기자단에 대해 권상우 자신을 낮추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저희 나라’라고 한 것으로 풀이했다. 이것이 ‘우리 X’와 ‘저희 X’ 명사구 문법의 정수(精髓)인 것이다. 이것도 규범 문법가와 기술 문법가의 시각의 차이를 보여 주는 한 사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목정수(2017) 높임말을 다시 생각한다-이른바 ‘사물 존대’ 현상에 대한 상념





물론 언어 규범을 선호하는 꽤 많은 사람들은 저희나라를 지양하도록 권고하긴 합니다만 재밌는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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