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퍼플 [1429079] · MS 2025 · 쪽지

2025-12-12 00:30:08
조회수 98

내가 올해 가장 공감되었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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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 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불현듯 불꽃나무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 놓은 권력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문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엽록소를 버린 겨울나무들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뿌리로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겨울이 교란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광화문 겨울나무 불꽃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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