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NEO [1430888] · MS 2025 (수정됨) · 쪽지

2025-12-11 02: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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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遡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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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 시절 때까지만 하더라도, 단조로운 무채색 빛 인생이었어서 색감과 채도를 더하고 싶었어요. 이 분야 저 분야 관심을 가져보고, 함께 같이 뛰어놀기도 하고, 마시며 즐겨보려고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그러한 행동들은 내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참 행복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음에 오늘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순간이 없다는 것은 뇌리에 박힐 만큼 행복했던 날이 없었다는 말이겠죠. 내가 정말 바랐던 꿈 또한 없었음을. 매 순간 되뇌는 말. ㅡ 나는 과거에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내일의 나의 모습도 알지 못한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기에,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ㅡ 어쩌면 행복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여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 순간이 특별했다면, 그렇게가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겠죠.


 나는 아직도 본인의 심장이 뛰는 일을 안다는 분들이 굉장히 부러워요. 부럽다는 표현, 굉장히 어리고 서툴지도 모르겠으나 정말 부럽습니다. 어떤 일에 흥미가 생기면 금방 뜨거워지지만, 그만큼 금방 식어버리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니까. 그랬기에 이 분야 저 분야 넓게 발을 담그기만 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물론 앞으로 푹 잠길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언제 나오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무채색 빛 인생에 여러 색감과 채도를 더하려 노력했지만, 내 삶은 아직까지도 무채색 같습니다. 무지개처럼 보이고 싶은 무채색.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보고, 듣고, 느끼며 삶을 음미하고 싶었던걸지도 모르겠어요. 태어난 김에 배탈 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다양한 것을 맛보고 싶습니다.


 책상에 앉아 슥슥 거리는 것만이 배움이 아닌 것을. 피폐해지는 삶 속에서도 배울 것은 많았음을. 인간의 피폐한 삷부터, 추악함까지 배워보겠다고 다짐했음을. 그 안에서 분명 얻어 가는 것들이 있을테니까. 앞으로의 인생, 여러 색상을 더하더라도 되돌아보면 또 다시 무채색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그냥 무채색인 채로 살래요. 내 마음을 뜨겁게 불태우는 무언가를 찾기 원했고 여러 경험을 해봤지만, 금방 식어버리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잔잔하게 미지근한, 은은하게 오래가는 그러한 것들로 인생을 채우고 싶습니다. 적당히 불행하고, 적당히 행복할게요. 욕심 없이 잔잔히, 완벽이라는 환상을 인정한 채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아도 잔잔하게 살아가는 것, 하기 싫은 일들 또한 묵묵하게 수행하는 것, 더 이상 특별한 것들을 바라지 않는 것.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먹고, 사람은 변합니다. 그저 천천히, 다양한 것들을 음미하다 입맛대로 살아갈래요. 끝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끝이 날 것이 인생 아닌가요. 그래서 내년에는, 더욱이 조금 천천히 여유로이,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보며 멀리 보내주려 합니다.


 미지근한 인생을 지향할래요. 뜨겁지 아니하면서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는, 더운 사람들을 식혀줄 수 있으면서 추운 사람들을 데워줄 수 있는, 그런 미적지근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쾌락과 향락이 아닌, 좋은 자극들로 인생이란 도화지를 가득 메우길 소망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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