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수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느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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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진 것도 있지만, 사실 나는 고1, 2 때까지만 해도 내 내신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공부보다는 음악에 빠져 있어서 지금까지 음악 채널 운영하면서 구독자 1만 6천 명까지 찍어봤으니까. 그러다 첫 정산을 받았는데 통장에 10만 원 딱 찍히는 거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3년 전 이맘때는 원서 영역에서 흔히 말하는 스나이핑이나 펑크 같은 것에 꽂혀 있었다. 적성이나 전공 따위는 뒷전이었고,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간판을 따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현역 때 한양대 2칸짜리를 합격했던 것도, 반수 때 문과 입시가 터져나가는 와중에 어찌저찌 서강대로 들어간 것도 전부 그런 마인드였다.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건 전공이랑 별개로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막상 그렇게 대학에 와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여기는 복수전공이 워낙 자유로워서 그런지, 점수 맞춰서 어영부영 들어온 것 같은 친구들도 각자의 길을 무섭도록 잘 찾아가더라. 원서 쓸 때의 나는 그저 대학 간판 하나 따겠다고 점공계산기 두드리며 아등바등했는데, 캠퍼스에서 만난 동기들은 이미 자신의 색깔을 찾아서 달리고 있었다.
입학하고 나서 겪은 일인데,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인문계열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흔치 않은 쪽을 복수전공하면서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는 녀석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누가 무슨 전공이냐고 물으면 그냥 적당히 잘 되는 무난한 학과라고 대충 둘러대곤 했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설계한 전공 로드맵을 확신에 찬 눈으로 설명하더라. 단순히 학교 타이틀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학교의 시스템을 씹어먹으면서 진짜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모습이 꽤 충격이었고 부끄럽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그렇다. 반수해서 힘들게 들어왔든, 정시로 문 닫고 들어왔든, 막상 들어와서는 누구 하나 허투루 사는 법이 없다. 미디어 쪽으로 진로를 잡는 애, 스타트업 판에 뛰어든 애, 로스쿨이나 전문직 시험 준비하는 애... 다들 입시 점수라는 숫자는 이미 지워버리고 자기 이름으로 된 인생을 기획하고 있더라.
내가 당시에는 무조건 높은 대학, 무조건 합격만 외치면서 공격적으로 원서를 썼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그때의 간절함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건 맞지만, 만약 지금 이 머리를 가지고 다시 고3 때로 돌아간다면 선택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맹목적으로 점수를 좇기보다는, 음악이나 디자인을 살릴 수 있는 예체능 기반이 탄탄한 대학의 자유전공학부 같은 곳을 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유튜브 하던 적성을 살려서 좀 더 멋드러지게 음악이랑 디자인을 병행하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ㅋㅋ
물론 입시판에서 구르며 얻은 경험으로 재미있게 살고는 있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 가지 않은 길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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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투타임즈님께도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한 해 남은 지리도,
앞으로 진행될 통합사회도 화이팅입니다!
현타오네
음음 그래그래 투타임즈야 유튜브좀 자주 올려보거라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