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수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느꼈을 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6201109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진 것도 있지만, 사실 나는 고1, 2 때까지만 해도 내 내신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공부보다는 음악에 빠져 있어서 지금까지 음악 채널 운영하면서 구독자 1만 6천 명까지 찍어봤으니까. 그러다 첫 정산을 받았는데 통장에 10만 원 딱 찍히는 거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3년 전 이맘때는 원서 영역에서 흔히 말하는 스나이핑이나 펑크 같은 것에 꽂혀 있었다. 적성이나 전공 따위는 뒷전이었고,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간판을 따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현역 때 한양대 2칸짜리를 합격했던 것도, 반수 때 문과 입시가 터져나가는 와중에 어찌저찌 서강대로 들어간 것도 전부 그런 마인드였다.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건 전공이랑 별개로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막상 그렇게 대학에 와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여기는 복수전공이 워낙 자유로워서 그런지, 점수 맞춰서 어영부영 들어온 것 같은 친구들도 각자의 길을 무섭도록 잘 찾아가더라. 원서 쓸 때의 나는 그저 대학 간판 하나 따겠다고 점공계산기 두드리며 아등바등했는데, 캠퍼스에서 만난 동기들은 이미 자신의 색깔을 찾아서 달리고 있었다.
입학하고 나서 겪은 일인데,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인문계열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흔치 않은 쪽을 복수전공하면서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는 녀석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누가 무슨 전공이냐고 물으면 그냥 적당히 잘 되는 무난한 학과라고 대충 둘러대곤 했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설계한 전공 로드맵을 확신에 찬 눈으로 설명하더라. 단순히 학교 타이틀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학교의 시스템을 씹어먹으면서 진짜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모습이 꽤 충격이었고 부끄럽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그렇다. 반수해서 힘들게 들어왔든, 정시로 문 닫고 들어왔든, 막상 들어와서는 누구 하나 허투루 사는 법이 없다. 미디어 쪽으로 진로를 잡는 애, 스타트업 판에 뛰어든 애, 로스쿨이나 전문직 시험 준비하는 애... 다들 입시 점수라는 숫자는 이미 지워버리고 자기 이름으로 된 인생을 기획하고 있더라.
내가 당시에는 무조건 높은 대학, 무조건 합격만 외치면서 공격적으로 원서를 썼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그때의 간절함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건 맞지만, 만약 지금 이 머리를 가지고 다시 고3 때로 돌아간다면 선택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맹목적으로 점수를 좇기보다는, 음악이나 디자인을 살릴 수 있는 예체능 기반이 탄탄한 대학의 자유전공학부 같은 곳을 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유튜브 하던 적성을 살려서 좀 더 멋드러지게 음악이랑 디자인을 병행하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ㅋㅋ
물론 입시판에서 구르며 얻은 경험으로 재미있게 살고는 있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 가지 않은 길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사탐런 과목 추천 2 0
기말끝난 고2 입니다 2학년 내신으로 물화생을 들었지만 정시로 대학을 갈 생각이라...
-
이게 내가 3년 내내 개고생하고 생기부채우고 공부한 결과라고?ㅅ1발 자살하고싶다 7 6
어따가 말도 못하고 재수하려고 했는데 그냥 재수도 하기 싫고 대충 붙은 대학...
-
"마지막 생리일 신고하라"…'출산율 비상' 中 생리 주기 추적 논란 4 2
[서울=뉴시스] 강세훈 기자 = 중국의 한 지역에서 산모들에게 '마지막 생리일'을...
-
"몸짱달력 멤버가 첫 목표" 95년생 경찰 사진 공개...누적 기부금 1억 훌쩍 3 2
올해도 '몸짱 경찰 달력'이 나왔다. 서울 12기동대 소속 95년생 최하용 순경은...
-
상상을 초월함 ㄹㅇ
-
기출 풀때는 정답률 보면서 까먹는게 꿀맛인데 ㄹㅇ
-
오늘의 노래 추천 6 0
그것은 바로 Official髭男dism의 Pretender JPOP GOAT 중의...
-
그거아세요? 2 1
저도좀알려줘요
-
10분뒤 후임 과외해줘야댐 6 3
귀찮다 그래도 숙제랑 교재는 다 준비했어
-
스블스블스블스블스블 2 0
복습할 때 자꾸 기억에 의존해서 하는거 같은데 이거 맞나요...? 해설 들을 땐...
-
이유는 다음과 같음. 1) 24고경의 대폭발로 인해 너무나 많은 고대 지원자들이...
-
자가치료 6 1
따뜻하구나
-
젖지젖 3 1
지
-
원광대에 가는게 꿈이에요 5 4
현역때도 상향으로 질러본거 빼고 현실적으로 가능성 꽤나 있는 학교들중에서는...
-
와,,, 번개장터 이름없는 화가 미술작품도 500만원이나하네,,, 4 0
걍 심심해서 보는데 ㄹㅇ 그냥 유명하지도않은 어렸을때 미술학원 열심히다녔을꺼같은...
-
큰일났네 3 3
벼락리기 해야할때 오히려 회피스킬 발동해서 오늘 암것도안함..... 우우....개백수가되
-
경영 수시 붙은사람 4 2
와서 연락하면 밥 안사줌
-
서울대식 397~401 5 0
이신분들 혹시 어느 학과 쓰려고 생각하고 계시나요??
-
변수가 생겻음 3 1
수능때 가져갔던 필통 그대로라 빨간 색연필이 없음 그거없으면 공부 못하는데


투타임즈님께도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한 해 남은 지리도,
앞으로 진행될 통합사회도 화이팅입니다!
현타오네
음음 그래그래 투타임즈야 유튜브좀 자주 올려보거라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