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soen [1249064]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5-11-27 18:23:21
조회수 89

한탄할 곳이 필요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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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며칠째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있어요

점점 하루하루를 지내는 게 버거워지기만 하는데

제가 지금 이렇다는 걸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여기에라도 털어놓고 싶었어요. 혹시 클릭하셨다면 긴 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꼭 가고 싶었어요.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제겐 지난 몇 년간 꿈에 그리던

삶의 이유와도 같은 것이었어요.


작년 수능땐 12111이라는 성적을 받고 간발의 차로 떨어졌어요

그 후로 하루에 15시간씩, 종종 밥까지 거르며 공부를 해서

올해 6평에서 11111, 9평에서 12121이라는 점수를 받았고,

9평때 평소보다 많은 실수를 했음에도

연세대 경영학과까지 파란색 99% 합격 확률이 나왔어요

이 정도면 평소 실력만큼만 수능을 봐도, 아니 거기에서 몇 개 더 실수를 하더라도

연세대에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서울대에도 지원해 보고 싶어서 한문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공부하는 와중에 방심을 하거나 자만을 했던 건 아니에요.

오히려 서울대에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수능 전날까지 계획한 대로 무사히 공부를 했고

수능을 봤어요.

수능 시험장에서 쉬는시간마다 했던 생각은

'잘했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승복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어.' 였어요.

탐구 2선택 시험이 끝나고 답안지를 걷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한문은 거의 울면서 시험을 봤던 것 같아요.


그날 밤 채점을 해보니

예측 등급이 13213으로 나오더라고요.

왜, 시험을 보면서 어느 정도 제 점수가 예측이 되잖아요?

미적은 84점이겠네, 사문은 47점이겠네. 하는 것들 말이에요.

근데 단 한 과목도 예상한 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항상 99 이상의 백분위가 나오던 국어는

백분위 96이 됐고...

지금까지 받아본 수학 점수 중 최저 백분위가 95였는데

이번엔 88이라네요.

영어는 처음으로 2등급을 받아봤어요.

사문은 도대체 뭘 어떻게 틀렸는지 모르겠는데... 39점이에요.

분명 시간이 부족해서 한 문제를 버리고,

나머지는 깔끔하게 풀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 와중에 한문은 또 다 맞았어요.

'한문I 원점수 50'을 바라보면서 어찌나 비참하던지.


채점한 직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2시간동안 멍하니 있다가

안방으로 가 어머니께 제 점수를 말하면서 펑펑 울었네요.


그 후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요.

수능 끝나고 읽으려고 중고로 사 놨던 장편 소설도

한 권도 채 읽지 못하고 있고요

영화도 드라마도 집중이 안 돼요.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 와 봤는데 안 읽히더라고요.

그냥 집중을 해야 하는 모든 것을 못 하겠어요.

머릿속이 수능 점수로 가득 찬 바람에...

유튜브도, 인스타도 잊을 만 하면 수능 얘기, 대학 얘기가 나와서

정말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공부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제 최선을 다했어요.

실력보다 더 큰 결과를 감히 바란 것도 아니고,

딱 실력만큼 나오기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제 실력보다 조금 더 점수가 안 나오더라도

충분히 목표를 이룰 수 있을 만큼 연습해왔어요.


그래서... 더 무서워요.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제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을까요?

어떤 게 원인이 돼서 낮은 점수가 나온 건지조차 모르겠는데

삼수를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요?

그때 지금보다 더 좌절하게 되면 어떡해요?


작년에 12111로 연세대 문과에 떨어진 것부터,

올해 믿을 수 없는 점수가 나온 것까지

지금은 그냥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제가 행복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차라리 누가 '넌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이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수능이, 대학이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아요

근데 저는 대학 하나만 바라보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 공부해왔어요

중학교 때 코로나로 학교를 가지 못할 때에는

지금이 기회다.. 라는 생각으로 방에서 하루종일 공부만 했어요.

제가 기억하는 제 인생에서는, 대학이 제 삶의 전부였단 말이에요.

그 대학에 가서 꼭 하고 싶은 공부도 있고, 그렇게 해서 이루고 싶은 다음 단계의 목표들도 있고요.


한 번 더... 해야겠죠?

될 때까지 하면... 언젠가는 되겠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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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아- · 1390853 · 1시간 전 · MS 2025

    힘내요

  • 적당히살래 · 1328227 · 1시간 전 · MS 2024

    저는 고2이지만 내신 6등까지 1등급인데 7등만 몇번을 한지 모르겠어요. 그럴때마다 울고불고 하다보니깐 저도 전생에 죄를 크게 지었나 싶더라구요. 근데 결국 행복하려고 이런 짓을 하는 건데 1등급 받았다고 행복하고 대학 어디갔다고 행복하고 전교 1등한다고 행복하고 그런데서만 행복의 이유를 찾으면 결국 자신을 갉아먹을 수 밖에 없더라구요. 사실은 지금도 그 등급들에 미련이 넘치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시험기간이든지 수험기간이든지 조그만한 행복은 찾기로 했어요.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떠들고 그런 일들 말이에요. 이겨내라는 말, 힘내라는 말이 다 도움이 안 될 거 같아요. 저도 특히 이겨내라는 말은 진짜 짜증나더라구요.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시면 좋겠네요. 오르비에 저도 비슷한 글 써봤기에 제 모습이 겹쳐보여서 어린 나이지만 한 말씀 올립니다.

  • 개적폐교과의대 · 1331243 · 1시간 전 · MS 2024

    나 내신할때같네 8등까지 1등급인데 9등뜨고 그래서 짜증났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