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7번 문제제기에 대해 교수님께 드리는 답변입니다. 출제 오류가 아닌 이유.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5688286
손태랑(랑샘국어) 수능 국어 17번 문제 출제 오류 없음 증명.pdf

안녕하세요, 국어 강사 손태랑입니다.
최근 이충형 교수님께서 감사하게도 저의 의견을 존중해 주시면서,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쟁점으로 논의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어제 공개하신 문제제기의 글 상당 부분에 저와 논의한 내용이 포함되었기에, 저도 이에 대한 답변을 작성했습니다.
저의 해당 문제에 대한 설명이 이 논란 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추가적으로 교수님과 논의가 이어진다면, 얼마든지 좋은 자료로 정리해서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첨부 파일에 해당 내용이 전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앞서 이 내용에 대해 논의를 했던 글과 전반적으로 쉽게 설명한 유튜브 영상이 있으니 이전 논의는 아래 글과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이전까지 논의에 대한 글: 수능 국어 17번 출제 오류 논란 종결합니다. 출제 오류가 아닌 이유와 수능의 독해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 오르비
처음 논란에 대해 정리한 영상: 2026학년도 수능 국어 오류 논란 종결. 문제에 이상 없음
1.출제 오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 (정확히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이유)
(핵심 1) 출제 오류 주장은 대부분 문제에서 물어 보지 않은 내용에 대한 논증입니다. 문제의 정답이 없음을 증명하려면, 문제에서 물어 본 내용에 한정해서 논증해야 합니다. 발문, 보기, 선지에 적힌 내용 그대로 물어 본 것에 대해만 판단한다면, 정답은 명백히 3번입니다.
-> 3에서 설명합니다.
(핵심 2)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이하 ‘칸트 이전’)에 대해 잘못 이해한 논증입니다. 특히 ‘생각하는 나’와 영혼, 그리고 지속의 개념을 칸트 등 다른 철학가, 또는 외부 배경지식을 통해 설명한 논증이기에 출제 오류의 근거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 2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칸트 이전’의 핵심과 3번 선지를 판단하는 방법
먼저 제시문의 1문단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칸트 이전’은 ‘영혼’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한다.
- 즉, 영혼이라는 존재만으로 인격이 동일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 이때, 영혼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
- 모든 ‘영혼’은 ‘생각하는 나’이다. (제시문에서 명시한 “‘생각하는 나’인 영혼” 때문에)
* 여기서 교수님께서 반박하신 내용의 핵심이 나옵니다.
<모든 ‘영혼’은 ‘생각하는 나’이다.>는 참이지만, <모든 ‘생각하는 나’는 ‘영혼’이다.>를 도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생각하는 나’는 ‘영혼’이다.>를 도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2문단, 3문단까지 읽으면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글 전체에서 파악한 맥락을 바탕으로 ‘칸트 이전’의 견해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평가원의 의도입니다.

‘그러나’를 통해, 2문단은 ‘칸트’와 ‘칸트 이전’의 차이점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칸트의 입장의 핵심은 <자기의식은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입니다.
따라서 ‘칸트 이전’은 <자기의식은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라는 입장임이 명확해집니다. 여기서 자기의식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인데,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를 통해 모든 ‘생각 하는 나’는 영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칸트 이전’에 따르면 모든 ‘생각하는 나’는 영혼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나의 지속’은 ‘영혼의 지속’과 같은 얘기가 됩니다.
이것이 ‘칸트 이전’이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만약 ‘칸트 이전’이 <모든 ‘생각하는 나’는 영혼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생각하는 나’이지만 영혼이 아닌 경우가 있다>라고 생각했다면 맥락이 깨지고, 잘못 작성한 글이 되어 버립니다. 영혼이 아닌 ‘생각하는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자기의식을 하는 인격이 있는데도 영혼이 아닌 경우가 있는 생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할 수 없고, 이는 ‘칸트 이전’과 ‘칸트’의 입장이 차이가 없고 똑같다가 됩니다. 완전히 틀린 독해가 되는 것이죠.
* 실제로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나’가 지속해도 영혼은 지속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고 반박을 하실 때, 칸트의 견해를 가져 오셨습니다. 이는 칸트의 입장이지, ‘칸트 이전’의 입장이 아닙니다. 칸트의 입장은 당연히 ‘칸트 이전’의 입장과 차이가 드러납니다.

위와 같이 ‘생각하는 나’가 지속해도 영혼은 지속하지 않는 반례는 칸트가 주장한 것입니다. 만약 ‘칸트 이전’이 여기에 동의한다면, 마찬가지로 모순이 발생합니다.
“‘생각하는 나’가 지속해도, 영혼은 지속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혼의 실재함은 보장한다.”
위와 같이 성립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칸트 이전’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3. (핵심 1) 17번 문항이 물어 본 내용
17.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보기>의 갑: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
[평가원의 평가하고자 한 의도]
1.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는 조건에 대해, ‘칸트 이전’과 갑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가?
2.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
-> 여기서 해당 관형절이 갑의 입장이 맞는지 알고 있는가?
여기까지가 평가원이 평가하고자 한 의도입니다. 이는 그동안 평가원이 출제한 인문 제재의 <보기> 제시형 문제에서 흔히 있었던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내용에 대한 증명이 더 중요 하기도 하니, 이에 관해서는 기존 유튜브 영상으로 갈음하겠습니다.
[평가원의 의도를 차치하고, 논리적으로 필요한 판단]
3.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명제 자체에 ‘칸트 이전’은 동의하겠는가?
여기까지만 이 문제의 선지를 통해서 판단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넘어서서 추가로 검증하는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의 정답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다음 쟁점에 대해서는 모두 증명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문제에서 물어 본 내용과 관련이 없는 쟁점]
‘칸트 이전’은 <보기>에서 제시된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이하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으로 보겠는가?
-> 이 판단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 선지였다면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지는 그것을 물어 보지 않았죠.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으로 보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 이처럼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으로 보았는지를 물어 봤을 때 판단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기존 선지에서는 우리는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할 필요가 없지만,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칸트 이전’은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으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3번이 정답이 됩니다.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에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칸트 이전’은 이것 외에도 갑의 입장을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갑은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이라고 했기 때문에, ‘칸트 이전’은 갑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4. 기타 반박에 대한 재반박

위와 같이 선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오류를 증명할 수 있다는 반박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제 자체가 틀린 판단인 것 같습니다.
‘칸트 이전’은 ‘생각하는 나’의 지속 = 영혼의 지속 = 인격의 동일성 보장이라고 보기 때문에, 프로그램 재현이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고 본다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고 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칸트 이전’은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고 애초에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프로그램 재현이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고 본다면”라는 전제를 ‘칸트 이전’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이죠. 이처럼 철학적 오류에 대한 판단은 제가 아닌 교수님께서 정확히 판단하실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성만 열어 두겠습니다.
이렇게 적용할 수 있고 철학적 오류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칸트 이전’은 갑의 입장을 옳다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칸트 이전’에게 있어서 ‘생각하는 나’란 영혼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가 지속된 것이라고 본다더라도 여전히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합니다.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 자체를 ‘칸트 이전’은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는 철학사적으로 칸트 이전, 예컨대 데카르트 등의 철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지문에 제시된 ‘칸트 이전’이라는 견해를 바탕으로 한 판단입니다.
마치며
이 글을 공유한 이후에도 재반박이 이어진다면, 저도 기꺼이 교수님과 논의를 이어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의 의견도 존중해 주시면서 논의를 이어 주신 이충형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다른 분들의 추가적인 의견이나 질문에도 앞으로 최대한 답변을 드리면서, 학생 분들의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1월 19일
랑샘국어 손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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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는’ 이라는 서술어에 주목해보면 어떨까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한다” 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되기 위한 어떤 조건들을 표현한 게 아니라 인격의 동일성 그 자체를 기술한 것, 즉 인격의 동일성에 대해 사전처럼 설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다면 그건 영혼이자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하는 거고, 그게 곧 인격의 동일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만약 무언가가 ‘지속’하긴하는데 단일한 주관으로서가 아니거나, 영혼이 아니라면 그건 애초에 인격의 동일성에 대한 ‘설명’(유사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니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아닌 겁니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단일한 주관‘은 인격의 동일성의 양태를 나타낸 말일 뿐 조건은 아닌 거 같습니다. 갑이 여차저차해서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칸트 이전 견해의 입장에선 애초에 ’생나지‘=’인격동일성‘ 이기 때문에, 3번 선지의 갑의 견해는 성립조차 하지 않는 말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갑이 무슨 프로그램에 업로드 하건 생쇼를 했건 간에 칸이견한테는 반례로 기능하질 못하는 겁니다.
다른 분께 댓글로 단 내용인데 아마 선생님 의견이랑 비슷한 거 같아서(솔직히 정독은 안 했음) 남겨봅니다. 수능에서 ‘설명한다’는 문제들 발문에서도 그렇고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걸 말하는 듯해서 저는 거기에 주목해서 풀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저의 판단과 동일하십니다. 다만 "조건을 표현한 게 아니라 사전처럼 설명한 것이다"라는 설명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을 통해 결국 '자기의식'이라는 것이 인격의 동일성의 조건이라는 추론할 수 있으니까요.
칸트이전에선 ‘생나지’는 인격의 동일성 그 자체였던 반면, 칸트는 저런식의 설명으론 영혼의 실재성을 보장하지 못하니깐 생각하는 나(자기의식)와 영혼의 실재성을 분리해서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의식은 칸트 이후의 논의에서 비로소 조건으로 기능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주관으로서~~”는 칸트의 견해에서 자기의식이 동일성의 조건이라는 걸 추론하는데 필요한 내용이긴하지만 그 자체로는 조건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암튼 답변 감사드립니다 ㅎㅎ
칸트 이전의 유력한 견해를 반드시 칸트와 (다소 차이는 있더라도) 정반대의 견해로 파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칸트 이전의 유력한 견해에서 자기의식과 영혼 사이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문제화되지 않았던 것은 수긍할 수 있고, 칸트가 비로소 의문을 제기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해당 표현을 근거로 칸트 이전에는 자기의식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고까지 독해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교수님의 위 자료에서도 칸트의 반례(수특)를 제시하며 칸트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고 당시에도 존재하던 연속창조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서술하신 바 있습니다. 결국 칸트 이전의 유력한 견해는 자기의식이 인격 동일성의 높은 개연성을 보여주는 고려사항 정도로 생각했을 지는 몰라도 인격 동일성이 논리적으로 보장된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문상으로도, 실제 역사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 부분은 저도 교수님과 의견이 다른 것 같은데) 칸트 이전의 유력한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 중에도 자기의식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 충분히 양립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칸트 이전’은 이것 외에도 갑의 입장을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갑은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이라고 했기 때문에, ‘칸트 이전’은 갑의 해당 입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3번 선지는 위의 신체 관련 내용을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지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A가 B의 특정 결론에 동의하기 위해서, B가 활용한 논거들에 대해서 A가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고, A가 B는 동의하지 않았을법한 별개의 논거를 통해서라도 (이른바 우연히)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면, 충분히 "A는 B의 특정 결론에 동의했다", 혹은 "A와 B의 주장은 특정 결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보니 이해황 선생님의 게시글에 반례로 제시된 연속창조가 칸트 이전의 견해와도 충돌하지 않는다는 서술도 있습니다.
따라서 ‘칸트 이전’은 <자기의식은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라는 입장임이 명확해집니다. 여기서 자기의식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인데,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를 통해 모든 ‘생각 하는 나’는 영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글 발췌본
여기서 제 생각에 오류인 것 같은 부분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자기의식을 ‘생각하는 나‘의 활동이라고 전제하셨는데
그렇게되면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실재할 때 할 수 있기에
칸트를 설명하고 있는 글인데 칸트의 입장과 상충합니다. 따라서 거기에 대한 부정으로 칸트 이전 철학자들의 견해도 도출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칸트는 자기 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고 보지 않으므로 자기 의식이랑 생각하는 나의 활동은 별개이며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를 통해
생각하는 나 = 영혼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이는 지문에서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생략) 보장하지 않는다“로도 설명 가능합니다
칸트의 입장을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칸트는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했지,
자기의식이란 ‘생각하는 나’의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닙니다.
1. 자기의식이 ‘생각하는 나‘의 활동이 필연적으로 맞다면 자기의식이 ‘생각하는 나‘의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칸트의 서술과 상충되지 않나요?
이는 [A]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a. 칸트는 영혼이 인격이라는 견해를 반박한다.
b. 칸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의식 하는 것은 인격이다.'와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두 전제 모두 납득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전제들로부터 '영혼이 인격이다.'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글에 언급된 대로 칸트는
영혼이 자기의식을 하는 것이지(전제로 인정)
생각하는 나의 활동이라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만약 두 개를 같다고 본다면
영혼 = 생각하는 나인데
a,b에서 영혼과 인격을 구분하는 칸트와 상충합니다
따라서 칸트는 자기의식이 ‘생각하는 나‘의 활동이 아닐 수도 있다를 주당한 것이 맞다고 판단됩니다
2. 또한 자기의식 = 생각하는 나의 활동이란 서술은
지문 내에서 찾아볼 수 없지 않나요?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을 칸트 이전은 모두 영혼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지만, 칸트는 그렇게 보지 않았죠. 따라서 상충되지 않고, 자기의식은 '나는 생각한다'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것이 존재하려면 '나는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나가 있어야 하죠. 그것이 '생각하는 나'입니다.
일단, 칸트 이전에는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이 영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라고 보았습니다.
==============================
[근거 제시문 발췌]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
그 뒤에 부정한 것이 인격과 영혼은 다르다는 내용입니다
본래 '그러나'라는 연결어는 칸트의 입장에서 인격과 영혼이 다름을 서술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
[근거 제시문 발췌]
그러나 칸트는 ‘나는 생각한다.’, 즉 ‘자기의식’은 인식이 이루어
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한 조건 자체는 무언가가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
기에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고,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핵심근거)"이를 바탕으로 칸트는 영혼이 인격이라는 견해를 반박
한다"(핵심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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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칸트가 반박한 것은 '생각하는 나'는 인격이고 '자기의식'은 영혼의 활동이니 구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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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제시문 발췌]
칸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의식
하는 것은 인격이다.’와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두
전제 모두 납득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전제들로부터 ‘영혼이
인격이다.’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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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라는 것이 존재하려면 '나는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나가 있어야 하죠. 그것이 '생각하는 나'입니다.
-> 저는 이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최초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칸트는 ‘나는 생각한다.’, 즉 ‘자기의식’은 인식이 이루어
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한 조건 자체는 "무언가가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 제시문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나가 있어야 하니 그것이 '생각하는 나'이다. 라는 선생님의 진술은 칸트 이전의 견해와 동일하고
자기 의식이 무언가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제시문 내 칸트의 입장과는 맞지 않습니다
'실재함'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구분하셔야 합니다. <'생각하는 나'가 자기의식을 한다.>와 <'생각하는 나'가 실재한다>는 다른 개념입니다. '생각하는 나'에 의해 자기의식이 존재하는데, 이때 '생각하는 나'는 실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칸트 이전은 그것이 실재함을 영혼을 통해 증명하려고 한 것이고, 칸트는 영혼이라는 개념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뉴스로 접하고 블로그에 글을 이충형 선생님의 반박에 대해 글을 쓰다가 선생님의 글을 보고 잠깐 첨언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대해서
-> ‘칸트 이전’은 이것 외에도 갑의 입장을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갑은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이라고 했기 때문에, ‘칸트 이전’은 갑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격의 구성 요소를 신체로 본 갑과 '칸트 이전의 견해'의 차이점을 통해 갑의 의견에 '칸트 이전의 견해'가 반대한다고 보기 보다는, 주관의 동일성과 복수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갑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을 보이면 어떨까 합니다.
만약 신체가 인격의 구성 요소임을 '칸트 이전의 견해'가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의견에는 동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관의 동일성이 영혼 혹은 '생각하는 나'의 필연적인 조건이 아니라면, 복제된 인격과 또 다른 '생각하는 나'가 파생될 수 있으며 이것은 이충형 선생님의 손흥민 예시 조건에 맞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문에서 계속해서 '단일한 주관'이라는 단서를 달아 놓고 있기 때문에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는 단일한 주관이 영혼 혹은 '생각하는 나'의 필수적인 속성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갑의 입장은 '생각하는 나'의 복수 존재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고, 이에 대해 '칸트 이전의 견해'가 반대할 것이라는 취지입니다.
'2026 수능 국어 17번 (이충형 선생님에 대한 재반박)'
https://blog.naver.com/zsxa1100/224081568980
동의합니다. 선지에서 말하는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영혼‘의 단일한 주관의 지속을 함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나 = 영혼
지속 = 단일한 주관의 지속
이렇게 가정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한다고 하여도
그렇게 되면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인식'은 '앎'을 말한다.
라는 문장이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영혼'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단일한 주관으로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라는 동어반복 비문이 됩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생각하는 나‘는 영혼 중 일부로
지속과 단일한 주관은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단일한 주관 없는 지속은 실재성이 불확실한 지속으로
칸트 이전 견해에서 동일한 인격체를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나 = 영혼이라고 말한 것은 일상적인 표현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충형 교수님께서 지적해 주신 대로, 엄밀하게 논리학에서 사용하는 등호의 의미로 생각한다면 사용할 수 없음이 맞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 = 영혼”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칸트 이하의 주장은 “모든 x에 대하여 x가 생각하는 나이면 x는 영혼이다”라는 주장이다] 입니다.
제 의견을 짧게 요약해서 올리느라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적어도 '본문에서 소개하는' '칸트 이전의 견해'는 영혼과 '생각하는 나'는 동일하며, 필연적으로 단일한 주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신 비문이 너무 충분하게 설명해주신 거라고 봅니다.
좀만 더 다듬어서 "(단일한 주관인)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되므로 인격은 동일하다."가 칸트 이전의 견해의 입장으로 보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실재성 개념은 적어도 본문에서는 칸트가 제기한 비판이고, 칸트 이전에는 이러한 실재성에 대한 재고가 부족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갑은 동일한 주관이 아닌, 복수의 주관의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지속만으로는' 동일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주관의 단일성' 개념을 해결해야 하고 그 재료가 신체라고 제시합니다.
이에 대해 칸트 이전의 견해는 주관의 단일성 개념은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 혹은 '생각하는 나'는 단일하기 때문입니다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아직 의문점이 풀리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답변을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선생님 말씀 발췌본]
따라서 ‘칸트 이전’은 <자기의식은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라는 입장임이 명확해집니다.
여기서 자기의식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인데,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를 통해 모든 ‘생각 하는 나’는 영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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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해석해보면, 자기의식 = '나는 생각한다'이고, 자기의식 = '생각하는 나'가 하는 것
따라서.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 = '생각하는 나'가 인식하는 '나는 생각한다'는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
이렇게 해석 됩니다.
여기서 선생님께서 '나는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려면 '생각하는 나'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꼭 그것이 '생각하는 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지 못 하겠습니다.
지문에서 칸트가 인정한 건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 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기의식은 그냥 '나'의 의식일 수도 있고 '나'에게 영혼을 통해 주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굳이 '생각하는 나'를 전제할 당위성을 모르겠습니다.
둘 째로, 선생님의 전제대로 자기의식= '생각하는 나'가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자기의식이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 = '생각하는 나'가 인식하는 '나는 생각한다'는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
이것을 통해 모든 '생각하는 나'는 영혼임을 도출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서술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떠한 논리로 이렇게 해석하신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B가 인식하는 A가 C의 실재함을 보장하는 것이 B=C이다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추가로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이 선지에 표현된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실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생각하는 나'가 인식하는 자기 의식이 실재를 보장하는 것이지 '생각하는 나' 자체가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독해했습니다.
선생님 전제대로 '생각하는 나'='영혼'으로 해석하면
영혼의 지속 =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하는 것 이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지문 중에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동일한 표현을 반복한 비문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기의식은 그냥 '나'의 의식일 수도 있고”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생각하는 나’가 아닌 ‘나’가 생각을 한다는 것인데,
생각을 하는 ‘나’가 ‘생각하는 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오류입니다.
이와 별개로, 왜 자기의식이 있으면 ‘생각하는 나’가 있어야 하냐면,
칸트 이전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식이 있으면 영혼이 실재함을 보장합니다.
이는 자기의식이 있으면 생각하는 나가 실재한다는 말입니다.
= ‘생각하는 나’만이 자기의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1. 자기의식이 있으면 영혼이 실재함을 보장한다를 통해
‘모든 생각하는 나‘가 영혼임을 도출하셨는데
자기의식이 있으면 영혼이 실재한다->
이는 자기의식이 있으면 생각하는 나가 실재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을 바꿀 수 없지 않나요? 영혼 = 자기의식을 하는 주체가 생각하는 나를 도출하는 과정이니까요.
결과가 왜곡될 거 같습니다.
2. 1.이 올바른 추론이라 하여도
자기 의식이 있으면 생각하는 나가 실재하는 것과
생각하는 나‘만‘이 자기의식을 하는 것은 무관하지 않나요
정사각형은 직사각형이지만 직사각형만이 정사각형은 아니다 처럼요.
늦은 시간까지 수험생에게 좋은 인사이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유의미한 공부가 되고 있고
의도치않게 제가 주로 오독하는 부분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저도 덕분에 타인에게 내용을 설명하는 방법을 계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좋는 논의를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설명드리는 내용들은 글 전체에 맥락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내용 함께 존재함으로써 의미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개별 내용에 대해 독립적으로 해석하면서 오해가 발생하신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나 이외의 것이 자기의식을 함을 상정해 버린다면,
결국 자기의식이 영혼이 실재함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나가 아닌 것이 자기의식을 할 수도 있다”와
“자기의식은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는
동시에 참이 될 수 없는 관계이죠.
”생각하는 나가 아닌 것이 자기의식을 해도 생각하는 나가 실재함을 보장한다“
-> 성립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