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샘국어 [1046188] · MS 2021 · 쪽지

2025-11-17 13:28:16
조회수 1,074

수능 국어 17번 출제 오류 논란 종결합니다. 출제 오류가 아닌 이유와 수능의 독해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5633076




안녕하세요, 랑샘국어입니다.


2026학년도 수능 국어 17번 문제의 3번 선지가 출제 오류 논란이 있습니다. 


학생 분들이 혼란스러우실까봐, 제가 관련해서 분석을 마쳤고, 


이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수능의 출제 방식,


그리고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도 좋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영상을도 제작했습니다.


영상이 정리가 잘 되어서 글로는 간략하게 적겠습니다.



출제 오류가 아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보기>의 맥락을 고려해서 해석하면 깔끔한 문제입니다.


<보기>를 보시면, ~가 아니야. ~기 때문이지. 그리고, 즉, ~일 수 없어. ~될 수 없고, ~돼야 하거든. 


-> 주장 뒤에 주장의 근거를 붙인 거예요. 너무나 간단한 논증 구조죠. 주장과 근거를 두 번 반복했어요. 친절하게 두 번이나 설명해 준 거예요.

-> 근거의 핵심은 뭔가요? 신체죠. 이게 핵심이에요. 그냥, 칸트 이전의 견해에다가, 신체라는 조건까지 포함시킨 게 갑이에요. 


칸트 이전의 견해는,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 있으면 되는데, 갑은 그것만으로는 보장하지 않는다고 했네? 그래서 옳지 않다고 보는 거예요.


예상 반박:  <보기>와 선지에서는 단일한 주관이라는 용어를 안 썼잖아? 

그러니까 그냥 '지속만' 얘기하면, 칸트 이전의 견해도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볼 거야. 




2) 수능 문제의 기본을 고려해서 해석하면 오류의 여지가 없습니다.


수능 문제를 풀 때는요, 무조건 발문을 정확히 따라야 합니다. 

이 문제는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반응을 묻습니다.

오로지 윗글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다른 배경지식을 끌어 오면 안 되죠.

윗글을 바탕으로 이해하면, 단일한 주관이라는 용어가 그런 쟁점을 다룬 게 아니에요. 


그래서 단일한 주관이라는 조건을 넣든 안 넣든, 둘 다 그냥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에요.



더 자세히 설명해 볼까요? 1문단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생각하는 나’ = 영혼이에요. 


근데 이 영혼은요.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라고 생각한 거예요.


이거는 “단일한 주관으로 지속해야 된다”, “그래서 단일하지 않게 그냥 지속되면 안 된다” 이게 아니에요. 핀트 잘못 잡은 거죠.


이건 그냥 칸트 이전이 주장한, ‘생각하는 나’, 그리고 ‘영혼’의 특징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생각하는 나’가 지속된다고만 해도, 칸트 이전의 견해가 보기에는, 

‘생각하는 나’란 영혼이니까, 당연히 단일한 주관으로 지속하는 거죠.


자, 그러면 이 생각을 바탕으로 판단해 봅시다.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맞았나요 틀렸나요?


‘생각하는 나’ -> 이건 영혼이고, 영혼이 지속하면 인격이 동일한 거죠. 끝났죠.


칸트 이전의 견해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간단하죠. 


이렇게 지문에 근거를 두지 않고, 그냥 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판단하면 엉뚱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서 위험해요.



참고로 EBS 연계 지문이기 때문에 EBS 원문을 참고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 더 자세히 정리한 영상이 있으니,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올해도 좋은 강의와 자료로 여러분에게 계속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zx5l0zifmUg?si=V3d_NaJuttBVE2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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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러치 능력 · 1305014 · 11/17 13:29 · MS 2024

    수능 국어는 배경지식 측정하는 시험이 아님
  • もりかわさん · 1334430 · 11/17 13:32 · MS 2024

    결국에 단순화하면

    지문: A1이므로 B
    보기: A2이므로 B

    선지: A2라는 보기의 입장은 지문입장과 맞냐 틀리냐

    이해황T 주장: 둘 다 결론이 B이므로 지문입장에서 동의할것이다
    -> (A2라는) 보기의 입장은 / 지문 입장에서 동의할 것이다
    A2를 단지 부가설명정도로 취급하신듯…?

    출제자 생각: (A2라는 보기의 입장은) 지문 입장에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한정기술구로 해석하라는게 의도인것같습니다

    추가로, 논리학적 개념이나 철학적 원리를 가져오는것 자체는 가능한 추론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식이라기보단 생각의 방법이니까요.

  • もりかわさん · 1334430 · 11/17 13:34 · MS 2024

    아마 본문 문장이 단일한 주관을 정의하는 구조로 되어있는거로 알아요. 해황쌤께서 이 부분을 조금 잘못 분석하셨으려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 랑샘국어 · 1046188 · 11/17 14:00 · MS 202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부연을 하자면, 사실 이러한 논란이 생긴 건 절대 평가원이 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저도 꼭 <보기>를 저렇게 써야만 했나 싶었습니다. 맥락적으로 납득할 수 있기는 하지만, 오류가 아니기만 능사인 것도 아니구요.

    100% 확신을 하려면 결국 칸트 이전의 견해와 칸트의 주장에 대해 완벽히 이해해야 합니다. 시간 안에 절대 할 수 없다고 봅니다.

  • もりかわさん · 1334430 · 11/17 14:05 · MS 2024

    선생님 말씀에 깊게 동의합니다. 출제원안이 뭐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 형태는 아니었을것 같다는 예측은 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 글도 한번 읽어 보시면 좋을것 같아요!

    https://orbi.kr/00075616586

    https://orbi.kr/00075615678

  • 랑샘국어 · 1046188 · 11/17 14:18 · MS 2021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정기술구에 대해 말씀해 주신 의견과 저의 생각을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에는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여러 주장을 비교해서 “A는 B인 C에 대해 D라고 생각하겠군” 식의 문제를 출제할 때는 항상 C가 B인지만 고려하면 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갑의 입장을 수식하는 관형절에 대한 판단도 갑에 대해서만 어울리는지 판단하면 됐습니다.

  • もりかわさん · 1334430 · 11/17 14:19 · MS 2024

  • 어그 · 1109737 · 11/17 13:52 · MS 2021

    깔끔한 문제 ㅇㅈ

  • cornerguy · 1426459 · 11/17 20:07 · MS 2025 (수정됨)

    '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는 표현을 ‘생각하는 나’ = 영혼이라고 해석해 문제를 푸셨는데 이런 해석이 일반적인 해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는 표현은 먼저 "독일인인 칸트"처럼 영혼은 생각하는 나이지만 모든 생각하는 나는 영혼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이번 수능 국어의 다른 문항 가령 10~13의 지문에도 "합금인 인바(invar)", "순수한 금속인 알루미늄"과 같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순수한 금속인 알루미늄"이라는 표현은 모든 알루미늄은 순수한 금속이지만, 모든 순수한 금속은 알루미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에 알루미늄 말고도 다른 순수한 금속이 존재한다는 사전지식을 사용하면, "순수한 금속인 알루미늄"이라는 표현을 모든 알루미늄은 순수한 금속이지만, 모든 순수한 금속이 알루미늄인 것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 ‘생각하는 나’인 영혼'을 영혼은 생각하는 나이지만 모든 생각하는 나는 영혼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사전지식을 전제하지 않는 표준적인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영혼의 지속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로부터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동일성을 보장한다'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하는 나가 영혼인 것이 아닐 수도 있기에 '영혼의 지속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생각하는 나가 영혼 없이 존재하는 경우가 가능하고, 이 경우 생각하는 나의 지속 여부가 동일성을 보장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표준적 해석을 하는 경우,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 여부가 동일성을 보장한다'고 추론할 수 없고, 따라서 ③번 선지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 '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는 표현을 수험생들이 ‘생각하는 나’ = 영혼이라고 해석하게 하려 했다면,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는 표현 대신, ‘생각하는 나와 영혼은 동일한 하나인데’ 등의 표현을 사용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생각하는 나’인 영혼'을 사용했다면 위의 일반적인 해석을 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랑샘국어 · 1046188 · 11/17 23:16 · MS 2021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이 글에는 간략히 적었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생기신 것 같습니다. 영상에 더 자세한 설명을 해놨으니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 = 영혼, 즉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모두 영혼이고, 모든 영혼은 ’생각하는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다는 것을 단순히 “’생각하는 나인 영혼” 부분만으로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해 주신 논리는 완벽합니다.

    그러면 왜 ‘생각하는 나’ = 영혼이라고 봐야 하는지 부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맥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용어는 오로지 주어진 텍스트 내에서 해석해야 하며, 모든 해석은 텍스트의 맥락 속에서 통일성을 갖춥니다.

    둘째, 1번으로도 증명에 무리가 없지만, 논리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학문적인 이해를 원한다면 EBS 연계 지문에는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는 ‘생각하는 나’ = 영혼이라는 것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 랑샘국어 · 1046188 · 11/17 23:17 · MS 2021

    1문단에서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된다는 것이었다.“라고 나옵니다.


    i) 영혼이 단일한 주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그렇다면 이 문장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단일하지 않으니까요. 모순이기 때문에 영혼은 항상 단일하게 지속됩니다.


    ii) 이번에는 모든 ‘생각하는 나’가 반드시 영혼인 것은 아니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영혼이 아닌 ‘생각하는 나’를 설명할 수 없죠.

    그렇지만 증명의 완결성을 위해, 이 가정이 아직 유효하다고 보겠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개연적으로 “혹시나 이것이 칸트 이전의 견해가 가진 한계는 아닐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 또한 2, 3문단까지 연결했을 때 맥락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당장 1문단과 2문단만 연결해서 읽어도,

    2문단에서

    “그러나, 칸트는 자기의식은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한 조건 자체는 무언가가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기의식은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칸트 이전의 견해와 큰 차이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칸트는 ‘자기의식’ -> ‘영혼의 실재함’이 성립한다고 보지 않았고,

    칸트 이전의 견해는 이와 반대인 ’자기의식’ -> ‘영혼의 실재함’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함이 자연스럽습니다.

  • 랑샘국어 · 1046188 · 11/17 23:18 · MS 2021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 ”칸트 이전의 견해도 모든 ‘생각하는 나’가 영혼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라고 한다면,

    결국 칸트 이전의 견해도 ”자기의식을 하는 인격이지만 영혼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자기의식을 해도 영혼이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하면 칸트의 견해와 전혀 차이가 없죠. 맥락이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

    EBS 연계 지문을 보면 (수능특강 98페이지)

    데카르트는 영혼이 실재함을 믿었고, 모든 사유는 영혼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 지문에서 말한 칸트 이전의 견해입니다.

  • cornerguy · 1426459 · 17시간 전 · MS 2025 (수정됨)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말씀하신 것 수긍합니다. 뒷 부분 칸트 논의 맥락을 고려할 경우,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가 있으면 영혼도 존재한다 >, <생각은 반드시 영혼에 의해 가능하다> 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칸트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가 영혼의 존재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보는 반면, 칸트 이전의 견해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가 영혼의 존재를 보장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는 지적하지 않았던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생각이 영혼에 의해서만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즉, '생각하는 나'가 존재하면 생각을 하는 영혼이 존재하고, 영혼은 생각을 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영혼의 지속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친 견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매순간 새로운 영혼이 창조되고 소멸되면서도 생각이 이어지면, '생각하는 나'는 지속해도 영혼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말씀해 주신 수특 99쪽 지문에 관련 견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칸트는 우리가 스스로 동일한 인격성을 인식하는 것은 사실 단 하나의 주관이 아닌, 복수의 주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선행하는 주관에서 사유된 내 용이 후행하는 주관에 온전히 전달되고 그 사유가 동일하게 ‘나’라는 이름하에 사유된다면, 복수의 주관으 로 구성된 사유 주체가 이를 동일한 인격을 마주치는 것으로 의식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칸트의 독창적 견해는 아니고 당시 상당히 유행했던 연속창조론(매순간 세계가 소멸하고 새롭고 창조된다는 견해)이라는 견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경지식은 차치하고, 핵심은, 모든 생각이 영혼에 의해서만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영혼의 지속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갑은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영혼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에,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면 갑이 틀렸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앞에서 잘 지적해 주신 맥락에 대한 이해와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지문에 소개된 칸트의 견해와 칸트 이전 견해의 차이는 생각하는 나가 영혼의 존재를 보장하느냐의 문제에 대한 것이지, 영혼이 지속하느냐에 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cornerguy · 1426459 · 14시간 전 · MS 2025

    위의 글을 보시고, “아니, ‘생각하는 나’=영혼이면,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면 영혼은 지속하는 게 당연한 거지 무슨 이상한 논리냐?”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나’=영혼’이라는 표현은 지문과 보기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이 표현은 (등호를 이렇게 ‘자유롭게’ 사용하시는 분이 많긴하나) 잘못된 표현입니다. 등호‘=’를 사용할 때는 ‘1=2’처럼 등호 양쪽에 개체(존재자)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를 사용하거나 ‘a=b’처럼 개체가 할당되는 변수나 개체상수를 사용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나’와 ‘영혼’은 개체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기에 ‘‘생각하는 나’=영혼‘은 등호를 적합하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 대신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는 표현을 <모든 x에 대해서, x가 ‘생각하는 나’이면 x는 영혼이고, x가 영혼이면, x는 ‘생각하는 나’이다>를 함축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x에 대해서, x가 ‘생각하는 나’이면 x는 영혼이고, x가 영혼이면, x는 ‘생각하는 나’이다>라고 해서,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면 반드시 영혼이 지속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매순간 새로운 영혼이 창조되고 소멸되면서도 생각이 이어지면, <모든 x에 대해서, x가 ‘생각하는 나’이면 x는 영혼이고, x가 영혼이면, x는 ‘생각하는 나’이다>는 여전히 참이라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나'는 지속해도 영혼은 지속하지 않습니다. 건방진 말씀을 드리자면, 등호의 무분별한 사용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 이런 논리적 오류를 범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 랑샘국어 · 1046188 · 11시간 전 · MS 2021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라고 한 문제인데, 이 견해에 따르지 않고 다른 견해로 (칸트와 같은) 용어 해석을 반복하시다 보니 오해가 해소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 = 영혼입니다.

    헷갈리신다면 ‘생각하는 나’를 ‘자기의식을 하는 나’라고 생각하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면

    영혼이 아니면서 자기의식을 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아니면서 ‘생각하는 나’인 존재는 없습니다.

    ’생각하는 나‘의 지속은

    영혼의 지속입니다.

    영혼의 지속은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합니다.


    이것이 칸트 이전의 견해인데, 영혼이 아니어도 생각하는 나가 지속되는 반례가 있음을 칸트의 견해로 보이시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칸트 이전의 견해가 아니니까요. 선지에서 묻는 기본적인 조건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 cornerguy · 1426459 · 11/17 20:12 · MS 2025 (수정됨)

    설사 '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는 표현을 ‘생각하는 나’ = 영혼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 하더라도 여전히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해석했을 때 3번이 바로 나오니까 이 문제는 오류가 없다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면 어떤 주장으로부터 A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해서, A의 부정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주장에 모순이 있을 경우에는 이로부터 A와 A의 부정이 둘 다 도출될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나’인 영혼'을 '생각하는 나=영혼'이라고 해석하고 동시에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를 <보기>에서 갑이 언급하고 있는 의식을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상황에 적용하는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즉 '‘생각하는 나’인 영혼'을 '생각하는 나=영혼'이라고 해석해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로부터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동일성을 보장한다>를 이끌어 내고, 동시에 이 견해를 프로그램 재현 상황에 적용해 <‘생각하는 나의 지속’은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하는 나’인 영혼'을 '생각하는 나=영혼'이라고 해석하면,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로부터 갑이 말하고 있는 의식 복제 상황과 결합해 모순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러면 문항에 오류가 있는 것이 됩니다.

  • 랑샘국어 · 1046188 · 11/17 23:35 · MS 2021

    이 또한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 벗어난 오해입니다.

    생각하는 나 = 영혼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나‘의 지속 = 영혼의 지속이고,

    영혼의 지속 = 단일한 주관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되어 인격의 동일성 보장

    따라서 칸트 이전의 견해는 보장한다고 봅니다.

    ”칸트 이전의 견해는 프로그램의 재현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을 애초에 할 필요가 없습니다.

  • cornerguy · 1426459 · 18시간 전 · MS 2025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cornerguy · 1426459 · 18시간 전 · MS 2025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cornerguy · 1426459 · 17시간 전 · MS 2025 (수정됨)

    이 점도 선지의 표현에 대한 자연스럽지 않은 특정 해석에 기인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칸트 이전의 학자들은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상황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으므로, 이 상황에 대해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전혀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③번 선지는 칸트 이전의 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어떠한지를 묻고 있습니다.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는 당시에만 존재했었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인 영혼론은 현재에도 여러 종교에서 강력하게 지지받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은 (1) '칸트 이전에 이 견해를 피력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 당시 견해에 따르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2) '칸트 이전까지는 유력했던 하지만 지금은 유력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견해에 따르면'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의 반론은 (1)의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의 해석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오히려 이 해석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2)의 해석을 할 경우 갑이 말하고 있는 의식 복제 상황에 대해 이 견해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를 추론해 보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칸트 이전의 학자들은 <보기>에서 갑이 다루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했을 리가 없으므로 <보기>에서 다루는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지문과 보기를 연계해 문제를 푸는 평가의 방식에 반하는 해석입니다. 결론적으로, (1) '칸트 이전에 이 견해를 피력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던 당시 견해에 따르면'이라는 해석을 따르고, 갑이 말하는 의식 복제는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해석이며 평가 방식에 반하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훨씬 더 자연스럽고 평가 목적에 맞는 (2)의 해석을 할 경우, ③번 선지는 답이 될 수 없습니다.

  • cornerguy · 1426459 · 17시간 전 · MS 2025

    3번 선지가 답이 될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면, 본래의 나와 재현된 의식 둘 다 존재하게 됩니다. 이 경우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하지 않을 경우, 인격의 동일성은 보장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이 옳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이 점은 사전지식을 사용하지 않고 지문과 보기의 내용만을 사용해 논리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사항입니다.

  • cornerguy · 1426459 · 17시간 전 · MS 2025

    긴 글 정말 죄송합니다만 보다 상세한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기>에서 갑은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경우를, 의식을 스캔 당한 사람이 스캔 전에 가졌던 의식과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 사이에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는 경우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앞의 주장에 대한 설명/이유로 제시되는 마지막 문장,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 포함되어야 하거든"은 앞의 주장과는 무관한 주장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보기>로부터, 갑은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경우, 의식을 스캔 당한 사람이 가졌던 스캔 전 의식과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 사이에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는 경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기>에는 의식을 스캔 당한 사람이 스캔 과정에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거나 하는 제한 조건이 없습니다. 따라서 <보기>로부터, 갑은 스캔 당한 사람이 스캔 과정이나 그 이후에 계속 살아있게 되는 경우까지도 포함해, 스캔 당한 사람이 가졌던 의식과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 사이에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갑은 이 경우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신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 아니기에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cornerguy · 1426459 · 16시간 전 · MS 2025

    참고로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갑의 주장은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는 모든 상황에서 동일성이 깨진다는 주장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인격의 동일성이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 적어도 하나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이런 상황이 하나라도 있으면 갑의 주장이 맞게 됩니다.

    ③번 선지는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가 과연 이러한 갑의 생각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지문 중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를 설명하는 부분은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라는 부분입니다. 이는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하지 않을 경우, 인격의 동일성은 보장되지 않는다>를 함축합니다.

    이제 17번의 ③번 선택지가 맞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갑이 말하고 있는 의식을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상황에 대해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가 과연 어떻게 판단할지를 고려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상황에서 과연 스캔 당한 사람이 스캔 전에 갖고 있던 의식과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 사이에 영혼이 지속하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갑은 스캔 당한 사람이 스캔 과정 후에도 계속 살아있게 되는 경우에도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므로, 이 경우에도 과연 영혼이 지속하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갑의 주장은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인격의 동일성이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 적어도 하나라도 있으면 성립합니다.

  • cornerguy · 1426459 · 16시간 전 · MS 2025

    그런데 스캔 당한 사람이 스캔 이후에도 살아 있고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과 공존하는 경우,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영혼은 지속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스캔 당한 사람은 스캔 이후에도 살아 있으므로 계속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이 영혼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상황은 스캔 당한 사람의 의식과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 사이에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영혼은 지속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따르면 이 상황은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고, 따라서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만약 스캔 당한 사람이 스캔 전 가지고 있던 영혼이 스캔을 통해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으로 옮겨 간다고 누군가 주장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같은 결론이 성립합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스캔 당한 사람은 스캔을 통해 영혼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왜냐면 영혼이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으로 옮겨 갔으므로), 그렇다면 스캔 당한 사람은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지만 영혼은 지속하지 않게 되어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동일성이 성립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이 경우를 스캔 후에 스캔 당한 사람의 의식과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이 하나의 영혼을 공유한다고, 즉, 하나의 영혼이 두 개의 의식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하면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문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해야 동일성이 보장되는데, 하나의 영혼이 두 개의 의식을 갖는 상황은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 cornerguy · 1426459 · 17시간 전 · MS 2025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모순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죄송합니다만 다시 말씀 드리면, 3번 선지가 지문으로부터 따라 나온다고 바로 17번 답이 오류없이 3번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항에 모순이 있을 수도 있고, 이 경우 3번과 3번의 부정이 동시에 도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3번의 부정이 도출되는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 cornerguy · 1426459 · 16시간 전 · MS 2025

    그리고 이 문제 논의해 주시고 위에 답변도 친절히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 랑샘국어 · 1046188 · 10시간 전 · MS 2021

    저도 좋은 논의 감사드립니다 ㅎㅎ

    답변 최대 개수를 초과하여 여기에 답을 드리면,


    보기와 선지 어디에도 칸트 이전의 견해 (이하 전통) 에 따르면, 프로그램의 재현을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 것이라고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선지는 전통이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고 보겠는지 물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에서 전제하지 않은 것을 전제한 채로 판단하니 오해가 해소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 보겠지“라는 전제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하고 논증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전제를 무시한 이 논증은 철학이나 논리학에서 매우 유의미하겠지만 이 문제의 판단 범위가 아닙니다.

  • cornerguy · 1426459 · 5시간 전 · MS 2025

    이 반론에 대해서는 제가 수능 국어 문제를 풀 때, 암묵적 전제를 어떻게 수용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몰라서 수긍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보기>의 갑의 말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합시다

    갑: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 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문자 그대로 해석할 때, 위에서 갑은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는 것, 이를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것 등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갑은 을에게 이를 상상해 보라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갑의 말을 이해하는 방법은 갑의 주장을 ‘...이면 ...이다’ 라는 조건언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갑: 만약 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경우, ... 그리고 이것이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는 경우라면 ...

    이 경우, 갑의 주장은 다음이 됩니다.

    <만약 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 경우가 이것이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는 경우라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③번 선지는 다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만약 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 경우가 이것이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는 경우라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칸트 이전 견해를 의식의 프로그램 상황에 적용해 문제를 푸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cornerguy · 1426459 · 5시간 전 · MS 2025

    둘째, 이런 식의 반론이 맞다면 17번 문항은 풀이가 단순해집니다. 17번의 선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만으로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갑의 입장은 옳겠군.
    ② 스트로슨의 견해에 의하면, 신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에게 인격이 귀속될 수 없다는 을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④ 칸트의 견해에 의하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은 그것에 대한 가정이 선행될 필요 없이 사고 기능의 동일성을 통해 판단된다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⑤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과 상이한 존재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수행될 수 있는 사고 기능이 인격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지문에는 롱게네스가 프로그램으로 의식의 재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따라서 반론에서 말하는 방식대로 문제를 풀면, ①이 답이 될 수 없음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롱게네스가 인간과 상이한 존재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수행될 수 있는 사고 기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⑤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이렇게 풀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colorful · 1083361 · 11/17 23:59 · MS 2021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전 학자들이 프로그램 재현을 어떻게 생각할지' 물어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면 생각하는 나는 두 종류가 되버렸는데 암만봐도 옛날학자들이 그걸 인정해줄거 같지 않거든요??

    근데 이게 뇌피셜인가? 이 느낌의 시작이 어딘가? 라고 본문을 보면 단일한 이라는 단어의 아우라 때문인걸 공감시켜주고 싶어서에요

  • 랑샘국어 · 1046188 · 11/18 00:17 · MS 2021

    네 맞습니다. 칸트 이전의 견해의 사람들은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건 동일한 인격이라고 보지 않을 거예요.

    근데 문제에서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단일한 주관인지 아닌지 고민해야 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 colorful · 1083361 · 11/18 02:36 · MS 2021

    사실저두 보자마자 3번을 왜틀림? 이랬는데 뭔가 미묘해서 어디서 이상한게 나온건지 감상중입니당

    생각하는 나라는게 사실 단일대상이기에 당연히 고유하게 지속됐을텐데
    보기입장에선 생각하는나 라는게 두개의 종류가 있어서
    이게 누구관점에서 말하는건지가 포인트가 될듯요

    그러니깐 다른방면으로보면 옛날학자들은
    '생각하는 나'라는게 프로그램 과 실제 각각 두개로 쪼개서 보면 각각의 생각하는나는 인격이 유지된다볼수도 있어보이고 별문제가 없어보여요

    하지만 보기가 말하는 '생각하는나'는 2개를 총칭해서 말하는걸로 보이거든요
    만약 이 복수대상을 가르키는 말이였으면 그러면 인격이 2개가 지속됨에도 (더 나아가 같은 경험과 생각을 가지는 연속성 발생하더라도) 다르다고 보아 보기에 동의했을 것 같고 이것이 '단일성'에 대한 설명인 것 같네요


    근데 수능갬성상 오류없음해도 낫베드일듯

  • 오늘도 좋은 · 1419123 · 7시간 전 · MS 2025 (수정됨)

    본문에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속에 지속한다. 명백히 -인 영혼 으로 표현, 생각하는 나 =영혼이라고 하시면서, 단일한 주관으로서 --로서 라고 인격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데요.(그 다음 단원에도 반복적으로 단일한 주관을 제시함) 바로 뒷 문장에는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즉 단일한 주관은 단일한 인식의 주체를 의미한다고 부연설명도 나와있는데 왜 이 부분은 별게 아니라고 넘어가야 한다는 건가요? 단일한 주관이 있든, 없든 똑같다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심지어 보기에는 명백히 단일한 주관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두뇌 복제를 예시를 들었고요. 보기에서 갑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이 부분은 칸트 이전과 칸트 동일)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이 부분이 다른거)"라고 논리적으로 생각되고 본문에도 단일한 주관에 대한 부분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께서)
    ”칸트 이전의 견해는 프로그램의 재현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을 애초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냥 보기 내용을 무시하고 글을 읽으라는 말씀이실까요? 실제로는 저 논문에서 가져온 동일성이라는 개념이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고, 과학 지문도 가져올 때 과학적으로도 옳은 내용을 가져오지 완전히 틀린 내용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3번 선지는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 배경지식으로 봤을때도 단일성은 중요한 개념이라 두뇌 재현을 인격이 동일하다고 보지않고(배경지식의 관점에서는 아애 틀린 선지), 이의를 제기하신 교수님이 이 부분을 너무 잘 알기에 출제 오류를 금방 발견하신 거구요. 만약에 단일한 주관이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배경지식으로 푸는 게 아니므로), 심지어 본문에도 단일한 주관이라는 얘기가 여러번 나와있는데 무시해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 랑샘국어 · 1046188 · 5시간 전 · MS 2021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 = 영혼입니다.

    또, ‘생각하는 나’를 ‘자기의식을 하는 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칸트 이전의 견해에 따르면,

    영혼이 아니면서 자기의식을 할 수 없습니다.

    = 영혼이 아니면서 ‘생각하는 나’인 존재는 없습니다.

    = ’생각하는 나‘의 지속은 영혼의 지속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지속은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합니다.

    = ’생각하는 나‘의 지속은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합니다.

  • 랑샘국어 · 1046188 · 5시간 전 · MS 2021

    보기와 선지 어디에도

    “칸트 이전의 견해 (이하 전통) 에 따르면, 프로그램의 재현을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 것이라고 본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선지는 전통이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고 보겠는지”를 물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즉, 이번 출제 오류 논란은 ”프로그램 재현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 보겠지“라는 전제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하고 논증한 결과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을뿐더러,

    문제에서 물어 보지도 않은 사실에 대한 검증입니다.

  • 오늘도 좋은 · 1419123 · 5시간 전 · MS 2025

    이 문제가 보기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인데, 어떤 보기이든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실까요?

  • 랑샘국어 · 1046188 · 5시간 전 · MS 2021

    문제에서 물어 본 바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지를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 오늘도 좋은 · 1419123 · 5시간 전 · MS 2025 (수정됨)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나의 지속이 프로그램 재현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면, 저 선지에 오류가 있다는 말씀이실까요? 단순히 선지 앞에 프로그램 재현을 명시하지 않아서 오류가 없다는 견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