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문학)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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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침침한 학원 책상에 앉아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자정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곳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무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다 푼 실모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학생A,B,C는 참 잘들도 생겼다. 틀린놈은 틀린놈대로 맞은놈은 맞은놈대로 다 미소지으니 보기 좋았다. 틀리진 않은 1페이지에 학생ABC는 지엽개념에 복습 의무를 내려주었다. 동그라미는 확신과 함께 불안함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 문제의 선지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어깨가 뭉쳐온다.
나는 또 뒷페이지의 오답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안타까운 가위표가 똑 부러진 나뭇가지같이 아파보였다. 한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자료들은 엉켜서 해석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답의 교훈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행동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현역의 가채점표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슬한 최저와 후기논술
우리들은 서로 절망하고 있느니라. 설마 최저가 아슬한 상황에 논술을 준비해 왔을까? 나는 그것을 해내기 어렵다. 논술을 뚫을 실력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행운을 노리나? 정말이지 서럽다.
우리 정시는 숙명적으로 해내기 어려운 가시밭길인 것이다. 내나 N수생이나 시험 한번에 인생을 걸 필요는 없다. 좌절할 필요도 없다. 성적은 성적대로 인생은 인생대로 그저 끝없이 가시를 버텨가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수능에 진심인 것이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봐야하나? 이렇게 힘이 드는데도 봐야하나
이때 뚜우 하고 학원 마감 종이 울었다. 학생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가방과 발걸음과 렌턴과 실모와 아이패드가 부산히 움직이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하원이다.
나는 불현듯 허리가 아프다. 아하, 그것은 내 1년의 노력이 만들어낸 흉터다. 상당히 나빠진 건강.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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