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분석 [1365933] · MS 2024 · 쪽지

2025-10-20 10:20:59
조회수 22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5147558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91)


자기혐오가 최대로 달할 시즌입니다.

여러분 모두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니 

너무 자기자신을 미워하지 말아요!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