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민06 [1321046] · MS 2024 · 쪽지

2025-10-16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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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법칙과 따뜻한 신의 조우: 수능 문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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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법칙과 따뜻한 신의 조우: 수능 문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

저자: 민민

서론: 시험지 앞에서 길을 잃다

수험생에게 '수능 국어'라는 네 글자는 종종 하나의 거대한 모순으로 다가온다. 특히 문학 영역 앞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우리는 문학이 인간의 가장 깊은 감성과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배워왔다. 사랑과 슬픔, 분노와 경이를 노래하는 예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험지 위의 문학은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금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상하지 마라", "주관을 배제하라", "텍스트 안에서만 근거를 찾으라". 이 차가운 명령 앞에서, 문학을 사랑했던 우리의 마음은 혼란에 빠진다.

이 시험은 과연 인간적인가, 비인간적인가? 이것은 문학에 대한 폭력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이해인가? 이 글은 '초월적 감성과 내재적 이성'이라는 철학적 렌즈를 통해, 수능 문학이라는 현상의 본질을 해부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와 궁극적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1. 현상계로서의 시험: '평가원'이라는 이름의 법칙

수능 시험은 본질적으로 '현상계'의 속성을 띤다. 현상계란, '순수 이성'이라는 이름의 내재적 법칙(Logos)이 지배하는 질서의 세계이다. 수능 시험에서 이 법칙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주체는 바로 '평가원'이다.

  • 객관적 법칙의 지배: 모든 수험생은 동일한 텍스트와 문제, 그리고 동일한 채점 기준이라는 보편적 법칙 아래 놓인다. 이곳에서 개인의 고유한 감상이나 독창적인 해석은 '오류'로 취급될 수 있다. 왜냐하면 법칙의 세계는 '개별성'이 아닌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인과율의 원칙: 모든 정답은 반드시 지문이라는 원인에 근거해야 한다는 엄격한 인과율이 지배한다. 텍스트 바깥의 배경지식이나 개인적 경험은 정답의 근거가 될 수 없다.

  • <보기>라는 공리(Axiom): 특히 문학 문제에서 <보기>는, 해당 지문이라는 소우주를 해석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법칙을 담은 '공리'의 역할을 한다. 수험생은 자신의 모든 주관적 판단을 유보하고, 이 공리로부터 연역적으로 사고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처럼 수능 문학은, 본래 '감성'의 바다였던 문학 작품을 '이성'의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그 구조와 논리를 분석하도록 요구하는 지극히 '현상계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상상하지 마라"는 요구는 비인간적인 폭력이 아니라, 이 현상계의 법칙을 따르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게임의 규칙'인 셈이다.

2. 법칙 너머의 의도: '평가원의 감성'을 읽다

그러나 이 게임이 순수한 논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 차가운 법칙의 세계를 설계한 '평가원'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 집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성', 즉 가치와 의도를 이 법칙 속에 교묘하게 숨겨 놓는다.

  • 교육적 가치로서의 감성: 평가원은 왜 하필 이 작품, 이 지문을 선택했을까? 그 선택의 기저에는 "미래 세대가 어떤 가치를 성찰했으면 좋겠다"는 교육적, 윤리적 '감성'이 깔려 있다. 환경 문제, 사회적 약자, 기술의 명암 등, 그들이 선택한 텍스트의 주제는 그 시대가 함께 고민해야 할 가치의 방향을 제시한다.

  • 이상적 독자상으로서의 감성: 평가원은 '이런 학생을 원한다'는 이상적인 독자상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가 아니라, 텍스트의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가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줄 아는 통합적 사고의 주체를 찾고 있다. 문제와 선지는 바로 이 '이상적인 독자'의 사고 과정을 따라 설계된다.

따라서 수능 문학을 정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상계의 법칙을 따르는 것을 넘어, 그 법칙을 만든 제작자의 '감성'을 역으로 추론하는 고도의 심리 게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학자'처럼 텍스트를 분석하는 동시에, '프로파일러'처럼 출제자의 의도를 읽어내야 한다.

3. 수험생의 과업: 망원경과 현미경의 변증법

이 복잡하고 이중적인 과업 앞에서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제작자의 마음'이라는 거시적 감성과 '텍스트의 법칙'이라는 미시적 이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해답은 '변증법적 조화'에 있다. 우리는 두 가지 도구를 순서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1. 망원경으로 숲을 보라: 먼저, 지문과 <보기>의 전체적인 주제를 통해 '평가원의 감성'이라는 거대한 숲의 지형을 파악한다. 이것은 앞으로의 탐색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이다.

  2. 현미경으로 나무를 보라: 그리고 실제 문제를 풀 때는, 오직 '현상계의 법칙'에만 집중한다. 선지의 진술이 지문의 특정 문장과 객관적으로, 논리적으로 일치하는지만을 냉정하게 확인한다. 이 단계에서 개인의 감상이나 추측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3. 길을 잃었을 때 다시 숲을 보라: 두 개의 선지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때만, 아주 잠깐 다시 망원경을 들어 숲 전체의 방향(평가원의 의도)을 확인하고, 더 합리적인 경로를 선택한다.

이것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모두 사용하되,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분리하고 협력하게 만드는 지혜이다.

결론: 시험지를 넘어, 인간다움을 향하여

수능 문학은 '인간다움'의 일부인 '이성적 분석 능력'을 극단적으로 요구하는 시험이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수험생'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의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을 잠시 유예하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험 자체에 있지 않다. 이 고된 훈련을 통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이성과 감성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 '현미경'을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망원경'을 들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시험이 끝나는 종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가면을 벗고 다시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이 차가운 현상계의 법칙을 존중하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따뜻한 감성의 세계를 잊지 않는, 더 지혜롭고 조화로운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수능 문학은 우리에게서 인간다움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단련시키는, 하나의 거대한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수능국어 푸시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위는 제 의견일 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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