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옹 [1408728] · MS 2025 · 쪽지

2025-10-03 1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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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글] 최악의 수능날, 수의대 합격 성적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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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백두옹입니다.

저는 n수생이었습니다.

대학을 걸지 않고 2번 이상 수능을 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2번째, 3번째 수능은 오히려 현역 때 수능보다 그 부담감이 큽니다.

가뜩이나 망해 본 기억이 있는 탓에 시작 전부터 두려운데

이번에도 망하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공포스럽습니다.

돌아갈 대학도 없는데 부모님께는 뭐라고 할 것이며 더 나아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나쁜 생각들이 자꾸만 올라옵니다.

그런 탓에 저는 n수를 거듭할수록 예민해져 갔고, 더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요, 

오늘은 제가 본 수능 역사상 최악의 경험을 써볼까 합니다.


1. 코피로 여는 수능 아침

그날 아침, 일어나자 거짓말처럼 코피가 흐르더군요.

코 혈관이 약한 편이라 종종 코피가 나는 사람이라 평소라면 별 거 아니라고 넘길 일인데 새삼 두렵더군요.

큰 병은 아닐까 하는 공포까지 밀려왔습니다. (오두방정 맞습니다.)


2. 수능 날 강제 다이어트 하게 생김

애써 진정하고 밥을 먹으러 나갔는데 전날 누른 줄 알았던 밥솥의 취사 버튼이 눌려있지 않았습니다.

당장 먹을 밥은 고사하고 수능 도시락은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니께서 전날 저녁에 반찬은 미리 싸두었으니, 밥만 퍼가라고 하셨는데 퍼갈 밥이 없습니다.

가끔 있을 수 있는 착오가 하필 오늘 일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서 가려고 하는데 하필 오늘 물류가 늦게 들어온다더군요.

가뜩이나 먼 고등학교에 배정 받았는데, 기다릴 수 없어 감자칩 두 봉을 사 가방에 우겨넣고 출발했습니다.


3. 길치의 고사장 찾아 삼만리

고등학교에 도착했는데, 처음 오는 학교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상태인데 제길.. 학교가 너무 넓습니다.

길치인 저는 한참을 응시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길을 잃은 건지, 감독관도 다른 학생들도 보이지 않더군요.

시계를 보니 입실까지 15분 남은 상황.

식은땀이 흐르고 배가 아파 오더군요.

다행히 감독관을 만나 (후광 때문에 얼굴 제대로 못 봤는데.. 진짜 감사했습니다 ㅠㅠ) 고사장에 들어가긴 했습니다


4. 어서와 내가 24 수능이야

그리고 본 첫 시험은 그 유명한 24 수능.

22 수능에 데인 후로 언매부터 푸는 습관을 들였는데, 세상에 하필 언매가 지옥 용암입니다.

사실 그 순간부터 멘탈 나가서 무슨 정신으로 수능을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엄마가 학교 앞에서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정말 정신 없는 하루였는데, 채점해보니 1 중간 중간 2가 낀 성적이 나올 것 같더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은 최고의 수능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피가 금방 멈췄고,

감자칩이라도 물류가 남아 있었고,

정말 우연히 감독관 한 분을 만났고,

가장 못하는 국어가 어렵게 나왔는데도 1컷에 걸렸으며

영어도 딱 90점으로 1등급이 나왔죠.


그 성적으로 결국 전 지금 대학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람 마음 먹기에 따라 순간들은 모두 다르게 기억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너무 힘들다 생각 말고,

아직 겨울도 아닌데 길가다 붕어빵 가게를 만나서, 채점하느라 친 동그라미가 좀 예뻐서, 오늘 목표한 공부를 다 끝내서.. 이런 소소한 이유를 되새기며 오늘 하루를 조금은 좋게 기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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