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N [1399732] · MS 2025 · 쪽지

2025-09-25 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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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신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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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 수능까지 49일 남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시점에 굳이 피곤하게 폭로를 하는 건 저에게도 부담이죠. 그런데 왜 했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문제를 지금 내치지 않으면, 수능 직전까지도 계속 끌려다니며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늦기 전에 이 고리를 끊고 싶었습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만든 문제에도 오탈자나 구조적 허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물이 상업적 의미에서 상품성이 매우 높다고 스스로 평가하지 않기도 하구요. 다만 그건 제 취미였고, 제게 문제 만들기는 마음의 숨통을 틔워 주는 놀이이자 공부였습니다. 문제는 그 취미가 어느 순간 강제성을 띤 일로 변하고, 더 나아가 값싼 외주—착취의 구조로 편입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때부터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닙니다. “하고 싶어서” 하던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고, 그 대가마저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될 때, 남는 건 피로와 환멸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흐름의 한복판에서, 저보다 더 어린 학생이 같은 경험을 겪는 장면까지 보았습니다. 갓 문제 만들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고2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문제 제작은 원래 설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설렘을 헐값으로 매겨 버리면, 남는 건 두 가지겠죠. “나는 싸구려인가?”라는 자존감의 균열, 그리고 “문제 만들기 따위 다시는 안 하겠다”는 냉소. 저는 그 아이가 저처럼, 혹은 저보다 더 깊게 싫증을 배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서둘렀죠. 누군가는 이 구조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폭로 글에서 저는 실명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실에 근거해 문제를 제기하되, 불필요한 소모적 싸움과 법적 공방으로 흘러가는 것을 피하고 싶었거든요. 제게는 공부해야 할 시간표가 있고, 그 시간표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동시에, 침묵이 또 다른 침묵을 낳는다는 것도 알구요.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나도 말하지 않는다”는 선택은, 착취의 구조 앞에서 가장 편안하고도 가장 위험한 방관이 됩니다. 저는 그 방관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특정 개인인 A씨를 망신 주기 위한 폭로가 아닙니다.  “입만 털어도 돈이 된다”는 말이 당연해지는 순간, 누군가의 노력이 값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 값의 하한선을 정하는 건 결국 우리여야 하구요. 문제를 만드는 학생이든, 그 문제를 사서 푸는 학생이든, 혹은 문제를 유통하는 어른이든. 우리가 최소한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취미는 산업에 삼켜지고, 산업은 쉬운 착취를 배운단걸 느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은 상식입니다.


1. 일을 시켰다면, 그 일의 난이도와 시간을 존중하는 정당한 대가.

2.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말의 무게.

3. 안 하겠다고 말했을 때 멈출 수 있는 권리.


저는 배신자일까요? 누군가의 입장에서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죠. 근데 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 주는 침묵, 다음 아이도 같은 일을 겪게 만드는 침묵, 나 자신에게조차 부끄러운 침묵. 저는 그 침묵을 배신하기로 한겁니다. (오글거리네요)


언젠가 수능을 끝내고, 정말로 제 이름을 걸고 N제를 내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 책의 첫 장을 넘기는 학생이 “문제를 만든 사람이 어떤 밤을 보냈는지”를 떠올리며, 그래도 이 가격은 정당하다고, 이 발문에는 애정이 있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의 저는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누군가의 취미와 수고가 다시는 헐값으로 팔리지 않도록, 우리가 상식의 편에 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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