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망령 [1326110]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5-07-25 22: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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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재수할때 가출한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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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https://orbi.kr/00073980465

2편 : https://orbi.kr/00073980940


일단, 재수를 망쳤습니다.


여친한테도 차였어요.


삼반수 비용을 마련해야했기에 평일 편의점 알바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수능 끝나자마자 지원했던 조교에 대한 합격 소식도 들었어요.

물론 지금처럼 컨텐츠팀이나 검토팀 조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게 너무나도 기뻤어요.


2달동안 평일엔 편의점, 주말엔 웨딩홀 알바를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은 결과, 고시원을 탈출하고 괜찮은 원룸을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대학에도 합격했습니다.


대학에 붙으니 일단 놀아야겠죠?


알바때문에 축제나 술자리는 자주 갖진 못했지만, 그래도 대학생으로서 할건 다 해봤습니다.

(미팅도 해보고요..ㅎㅎ)


그런데 더이상 이렇게 살수가 없는거에요.


제가 대학생이 된다면 제일 해보고싶었던건 과외였어요.

학벌이 딸려서 과외가 안잡히는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휴학을 하고 삼반수를 결정했습니다.


6월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인스타 스토리로 대학 동기들이 즐겁게 술을 마시는걸 보면서 저도 소주 한병 사서 집에서 펑펑 울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그렇게 다시한번 강남대성에 들어가서 약 천만원 정도를 내고 삼반수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학원에서 어떤 여자아이를 만나서.. 술을 마시고.. (생략)


네. 이번엔 연애때문에 수능을 망쳤습니다. 

사실 연애라고 하면 핑계고 그냥 제가 나태한 탓이었죠.

그렇게 저의 세번째 수능이 끝났습니다.


정말.. 정말 죽고싶었어요. 재종을 다니려고 빚까지 져가면서 돈을 썼는데

정작 성적은 전적대도 못가는 성적이 나왔으니까요.


생명과학만큼은 꼭 1등급을 받아서 과외를 하고싶었는데, 1점이 모자라더라구요.


그래서 조교인데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전적대조차 갈 수 없는 성적이 나왔다+천만원을 빚까지 져가면서 날렸다 등등의 심리가 합쳐져서 정말 폐인처럼 지냈어요. 눈물도 안나더라구요.


그래도 혹시나 나를 필요로 해주는 학생들이 있지 않을까 하고, 정말 간절하게 과외를 구했습니다.


당연히 성적표를 전부 까고 들어갔어요. 난 2등급을 맞았다. 그래도 정말 배울 생각이 있다면 배워라.


요즘 들어오는 학생들에게도 제가 2등급이라는걸 알리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안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라서요.


왕복 2시간이어도, 시급이 낮아도, 악착같이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제 성적은 이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건 정말 자신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자랑스럽고 너무 고마운 제 첫 제자가 3모랑 5모를 둘다 50점을 받아온겁니다.


원래 물화였고, 생명은 완전 노베이스였는데도요.


이 친구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다들 경력이나 실력보단 학벌을 먼저 볼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어느덧 7월..

23명이라는 학생 수와, 월에 천만원 이상이라는 수입을 거둬들이게 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난이도를 평가해주려고 전날에 술 좀 마시고 재미로 봤던 6모도, 

강남대성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는 성적이 나왔구요.


그래서, 지금 4번째 도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여러가지가 있을거에요.


악으로 버티면 살긴 살아진다.

좌절하지 말자.

등등....


하지만 제가 여기서 얻은 교훈은

'누구나 자신의 때가 있다'입니다.


전 가출했을때도, 노숙을 했을때도, 편의점 알바를 했을 때도, 고깃집 알바를 하면서 진상 손님의 주정을 받아줄 때도


반드시 좋은 날이 올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좋은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난날들에 비하면 확실히 좋은 상황이구요.


여러분에게도 이런 날이 오기를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에서 말했던 '그분'이란.. 아버지를 말합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를 할때 아버지랑 아들이 사이좋게 들어오는 걸 보면 울컥하더라구요.

아직도 그런 사이좋은 부자관계를 보면 종종 눈물이 고입니다.


부모님이랑 사이좋게 지내셔요. 진심입니다.

지금은 아버지라고 부르고싶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될 관계이기에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는 중이에요.


좋은 날이 오겠죠.


긴 시리즈 재밌게 보셨나요..?ㅎㅎ 그냥 심심해서 써봤어요

다들 수능까지 화이팅해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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