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 수능 국어를 공부하는 자세에 관해 몇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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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시 수갤·빡갤 등지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국어 강사입니다.
매년 7모가 끝난 이맘때면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무수히 받습니다:
"지금 6평·7모 국어 X등급인데 4개월 동안 빡공하면 수능에서 Y등급 가능할까요?"
"여름방학 동안 실모 몇 개나 풀어야 1등급 나올까요?"
"OOO 강사의 XXX 인강 좋아보이던데 완강하면 점수 오를까요?"
이런 질문을 받다보면 '중간 과정은 알 바 아니고 수능날 국어 45문제 잘 찍어서 좋은 점수 받고 메디컬·명문대 가고 싶다.'는 얕은 생각이 뻔히 보입니다. 동기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신분 상승이나 인생역전을 꿈꾸고 공부하든, 부모님이 시켜서 공부하든, 공부 그 자체에 흥미를 느껴서 공부하든, 제게는 그 동기를 평가할 기준도 자격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원 자격도 없는 무명의 수능 국어 사설 학원 강사이고, 가르치는 학생들의 수능 국어 점수를 올려주는 것이 본업이지요. 그래도 15년 넘게 수능판에 발을 담그고 있고 만으로 10년 가까이 수능 국어를 가르치면서, 수능 국어를 공부하는 자세에 관해 드는 제 생각을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올바르게 국어 공부를 한다는 건 뭘까요? 어떻게 공부를 해야 수능 국어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매일 유명 강사의 국어 강의 몇 개씩 듣고, 교재 문학 비문학 몇 지문씩 풀고 채점하고, 중심 문장마다 밑줄 긋고 역접이나 부정적 시어에 세모 치는 걸 120일 동안 반복하기만 하면 수능날 국어 성적이 알아서 잘 나올까요? 저는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일단 전제가 하나 틀렸습니다. '강사나 교재가 대학을 보내'주는 게 아닙니다, '학생이 스스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입학'한 겁니다. 물론 유명한 국어 강사 분들의 강의, 출판된 시중의 어떤 국어 교재든 충분히 검증을 거친 좋은 것들이고 학생이 꾸준히 학습한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결국 공부를 하는 건 여러분이고, 수능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여러분 각자뿐입니다.
저는 수험생 개인의 독서 체험을 '나무'에 은유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독서 경험이 확장되는 과정은 한 그루 나무의 성장과정과 같다."
그런데 '나무'는 단일한 생명체 '개체'입니다. 정체성이 완전히 동일한 개체 생물이 존재하지 않듯이, "1년에 메디컬·명문대 수백명 보냈다!"는 어느 명강사의 독해 비법과 필독서 목록을 입수해 아무리 열심히 따라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 독해법을 개발한 그 사람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저나 다른 국어 강사 분들과 똑같이 읽으실 수도 없고 읽어서도 안 됩니다. 물론 롤 모델이 되는 우수한 독해법을 참조하며 닮아가실 수도 있고, 어쩌면 청출어람으로 보다 좋은 독해법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Q.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읽으라는 거냐? 추상적으로 비판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설명 좀 해봐라!
A. "'나'는 대체 '누구'인가?"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읽기로 공부를 시작하는 걸 추천합니다.
여러분, 고3이면 솔직히 웬만큼 세상 경험하셨다는 생각 안 드시나요? 저는 그게 바로 여러분 국어 공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5년 7월 현재 오르비에서 제가 만난 이들의 절대 다수는,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연령에 해당하는 2026 수능 (예비)응시생'이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에 해당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각자의 사회적 위치는 본인 및 후견인의 지위/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고, 살아온 인생사, 그 와중에 형성된 가치관도 제각기 다르겠지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이 다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조숙해서 이성교제 경험이 빠른 사람도, 와일드하게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는, 띠동갑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제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으니 스스로 직접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수능 국어 공부에 노베이스(no base) 수험생은 없다.'는 것이 제 국어교육 지론 중 하나입니다. 다만 '자기 머리로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게으른 수험생이 있고, 그 수험생이 수능 국어 성적을 잘 받아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군요.
수갤·빡갤에서뿐만 아니라 여태 오르비에서도 질리도록 이야기했지요,
제가 재수하던 2006년에 6평·9평 언어(국어) 백분위 99 찍고 막상 2007 수능 언어 3등급 백분위 83 받았다는 사실.
그래서 삼반수하던 2007년에는 언어 영역 공부법만 거의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생각해서, 대강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시험'하는 평가 도구고,
국어 영역은 영어 영역과 함께 수험자의 '언어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영역입니다.
국어 영역은 한국사·탐구 영역과 같은 지식평가가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수험자가 초등학교 6년+중학교 3년+고등학교 3년 교육과정을 마쳤다."
이 전제하에 성립하는 역량평가입니다.
하지만 언어의 정보 전달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영어 영역 텍스트와는 달리,
국어 영역은 모국어 구사 능력을 총체적으로 묻기 때문에 텍스트의 깊이가 훨씬 깊지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수도 없이 교육과정이 바뀌어왔지만, 국어과 중등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학생이 장차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어·문화 공동체(ex-대한민국, 한민족)의 지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건전한 사고방식과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돕는 것'입니다.
(이건 매년 수능특강·수능완성 국어 개념편마다 똑같이 나와있는 내용입니다만, 절대 다수가 이 페이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지문으로 이해하기'나 적용편·실전편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때문에 다수의 수험생에게는 낯선 내용이겠지요.)
2020학년도 EBS 수능특강 문학 개념편 중
2020학년도 EBS 수능특강 독서 개념편 중
그래서 국어 공부, 나아가 인문·사회계열 전공을 공부한다는 것은,
언어(문서/대화·담화를 비롯한 컨텐츠와 미디어)로 구성된 세상을 꿰뚫어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것,
무대 위 화려한 공연을 위해 장막 뒤편은 어떤 이치로 굴러가는지 엿보는 것,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공을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계를 종합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인접한 타 학문은 물론, 자연계열에 관한 공부도 할 필요가 있겠죠.
이게 인문계와 자연계가 하나의 종합대학(라틴어 'Uni'versitas→영어 University)에 편제된 근본적인 이유이자,
현대 사회가 문·이과 구분을 넘어선 융합형 인재를 찾는 까닭 아닐까요.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직접이든 간접이든)을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을 쌓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자세로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2007년 수험생 시절 제가 들은 강남구청 인강에서 외국어 영역을 담당하셨던 김찬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방이 점점 작아보이도록 살아가는 나 자신이 되자."
저는 비록 몇백 명(어쩌면 천 명 이상?)을 가르친 무명의 국어 강사이지만, 수능 국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그 어떤 수험생도
여태 제가 이야기한 과정을 거쳐갔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국어 공부 자세에 대해 몇 마디 잔소리하려다가 잡설이 너무 길어졌네요;; 쓰는 저도 이렇게 장문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별 자격도 없는 무명의 국어 강사가 부끄러운 헛소리했다고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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