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하게 다짐하는 올해의 목표, 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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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은 정말로 결과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시험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노력한 것 이상의 학교를 가게 된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던 때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나는, 수능은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한 시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리 언질하자면, 나는 재수 끝에 적당한 대학교에 합격해 마음 맞는 동기를 사귀고, 여러 방면에서 행사를 참여하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두 번의 수능을 준비하던, 오직 그 초라했던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이유로 휴학을 하고 다시 수능판에 뛰어들기를 택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내가 거쳐온 2년의 수험 생활은 아주 허무했다.
현역은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이다. 내신을 소홀히 하는 핑계는 수능, 수능을 소홀히 하는 핑계는 내신이었다. 회피할 수 없는 시점에서야, 아주 어려운 교재를 샀다. 그저 보여주기용. 내가 얼마나 어려운 교재를 푸는지 과시할 목적이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교재를 읽지도, 풀지도 않았다. 깨끗한 교재에 남긴 낙서가 눈에 거슬려 교재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렇게 책장에는 풀지 않은 교재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고 허영심은 넘쳤다. 내신 성적으로는 턱도 없는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었다. 최저 조건이 빡센 인서울, 이름 있는 대학교. 3, 4, 5등급으로 구성된 9월 모의고사 성적으로 역부족인 곳이었다. 그럼에도 수능 때까지 문제집 한 권이라도 더 보겠지, 한 등급이라도 올리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전부였다.
그렇게 찾아온 2023년 11월 16일.
9월 모의고사 이후로 더 푼 문제집은 없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편하게 시험을 쳤다.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기에 오히려 편했다. 수능이 끝나고는 울었다. 간절하게 공부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고생했다'는 부모님의 말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최저 따위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다. 결론적으로 주어진 것은 6장의 불합격 통보. 최저를 못 맞춘 4개의 원서는 합불조차 확인하지 못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굳건했다. 여유가 없어야 할 상황에서 그저 태연했다.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공부하는 척'은 잘해왔기에, 신뢰를 얻는 건 쉬웠다.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 호기롭게 재수를 선언했다. 재수는 당연한 것이 아닌데, 부모님의 지원을 당연하다 여겼다. 교재 하나 제대로 풀지 않고, 낙서뿐인 2024학년도 교재를 전부 버리고 2025학년도 수능을 대비하는 새 문제집을 샀다.
그렇게 찾아온 20살의 봄. 호기롭게 독재 학원에 들어갔다. 그마저도 부모님이 전부 지원해주셨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공부 방식은 비효율적이었다. 약점은 회피했고 아는 문제를 반복해서 풀었다. 이 시기의 나는 학원에서 제공하는 어려운 교재에 손을 대며 뿌듯했다. 풀 수 있는 문항이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한 뼘씩 높아졌다. 못 푼 문항이 7할을 넘어가지만 오답 따위 하지 않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아직' 못 푼 것이고, 그 문제는 다음 달의 내가 풀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나마의 열정이 살아있던 봄도 그저 한때였다.
6월 모의고사 이후, 저녁을 먹으면 항상 졸았다. 잠깐의 산책이 졸음을 덜어준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나, 온갖 핑계를 대며 움직이지 않았다. 스탠딩 책상에 서 있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통학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항상 후회했다. 하루를 낭비하며 보낸 자괴감에 혼자 눈물을 닦았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모순적이게도, 도착한 집에서는 새벽까지 유튜브를 봤다. 비몽사몽 채비를 하는 아침이 되면 지난날의 회고를 잊었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면 또 후회했다. 그렇게 재수 생활은 한없이 일그러졌다.
녹음이 피어나는 6월의 끝자락. 여름의 열기를 느끼고서야 위기감을 느꼈다. 실질적으로 마친 문제집이 한 권도 없다.누구보다 빠르게 시작한 내가 지금은 누구보다 뒤쳐지고 있다. 기말고사 전날의 학생처럼 손이 떨리고 마음이 조급했다.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지나친 압박감에 오히려 속도는 더디어졌다. 부담감을 이기지 못 하고 갖가지 이유로 학원을 빠지기 시작했다. 깊이 있는 공부의 중요성을 알면서 행하지 않았다. 조급함이 몸을 누를수록 나는 문제집의 양에 집착했고, 강사의 풀커리를 타야 한다고 믿었다. '하루에 문제집 한 권 끝내기' 같은 말도 안 되는 목표로 나를 괴롭혔다. 2배속의 인강은 들릴 리 없었다.
학원에서 의례적으로 치르는 실모가 거추장스럽게 다가왔다. 난 시간이 없는데, 조급해 미치겠는데. 예민해졌고 불만이 늘었다. 학원의 방식에 대한 의심이 생겼고 그럴수록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결국 지나친 압박감은 공황 증세로 나타났다. 학원에 있으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동아줄인 학원마저 놓아버렸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학원을 나온 7월 초반을 기점으로 독서실과 도서관을 전전했다. 그러나 예민해진 몸은 작은 소리와 소음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결국 현역 때와 비슷한 상태로 2024년 11월 14일, 수능을 맞이한다. 그 시점의 나는 기출도 다 들여다보지 못 한 상태였다.
이처럼 내 현역, 내 재수 생활은 절실하지 못 했고, 간절하지 못 했다. 떨어진 자존감은 돌아오지 않고, 새 것인 채로 버려지는 올해의 문제집들을 보고 있자니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렇기에 일종의 회고록을 작성하며 삼반수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올해는 마지막 수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130일의 기간이 단순히 '짧다'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130일 동안 변하고 싶다. 변하게 할 거다. 문제집 양에 대한 욕심은 버릴 것이고, 완벽주의와 강박을 타파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얘기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이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이전의 수능들과 달리, 적어도 과정에서의 후회는 없기를. 오만하지 말자. 한눈 팔지 말자.
부디 2025년 11월 13일에는 정말로 후련한 끝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짧은 기간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나아가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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