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칼럼] 연결하며 읽는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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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의대 키노트국어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국어 강사라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얘기하는
“연결하며 읽기”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합니다.
그읽그풀이던 구조독해던 그 어떤 방법이던,
연결하며 읽지 않으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그읽그풀, 구조독해, 미시독해 등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칼럼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500명 넘는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연결하면서 읽는다"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 학생은 많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연 연결하면서 읽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앞에 있는 문단의 내용을 왔다갔다하면서 두 번 읽는 것이 연결하면서 읽는 것일까요?
지금 아래에 한 단락의 글을 드려보겠습니다.
잠깐 멈추고 무슨 뜻인지 한 번 읽어주세요.
- 디지털 데이터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기법을 가리키는 선로 부호화는, '0'과 '1'이라는 이진수 디지털 데이터를 전기 신호의 펄스에 대응시키는 것이다.
- 펄스는 클록이라는 단위로 표현되는 짧은 시간동안 나타나는 전기적 진동을 뜻한다.
짧은 글이지만 생각보다 정보량이 많습니다.
만약 시험이었다면 본인이 어떻게 읽었을지 한 번 상상해보세요.
"데이터에 동그라미, 선로 부호화 동그라미, 0과 1 괄호, 펄스 동그라미..." 이렇게 읽는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읽는 것보다 글에 표시하는 것이 먼저인 학생들은,
안타깝지만 연결하면서 읽을 수 없습니다.
써져있는 글에 표시만 하는 학생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표시한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나만의 방식대로
글을 처리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형광펜으로 중요한 내용에 따로 밑줄을 긋고 노트에 정리를 하면서 읽어야
작가가 수십 페이지동안 강조한 내용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 표시나 메모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만 읽는다면
짧은 소설 하나 읽기도 벅찹니다.
하물며 책도 이런데, 여러분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에 나온 글을
따로 처리하지 않고 읽는다?
이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글을 연결하면서 읽는다는 말은,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말들을 지워나간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겠습니다.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말은 지우면서 읽어야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윗 글에 적용해보겠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기법을 가리키는 선로 부호화는
이 문장의 핵심, 목적은 무엇일까요? 선로 부호화가 중심일까요?
아닙니다. 선로 부호화던 산타 클로스던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그래서 선로 부호화가 뭐하는 건데?"를 읽어내야합니다.
선로 부호화는 데이터를 전기 신호로 바꾼다는 말입니다.
좀 더 쉽게 따로 정리하자면 데이터 -> 전기 신호 이렇게 표시되겠네요
앞으로 선로 부호화가 나오면 머리 속에는 저 내용이 떠올라야합니다.
위 내용과 선로 부호화는 같은 말이니까요.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 머리 속에서 선로 부호화라는 낯선 단어는 이제 지워도 됩니다.
이어서 읽어보겠습니다.
'0'과 '1'이라는 이진수 디지털 데이터를 전기 신호의 펄스에 대응시키는 것이다.
이 문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잠깐만 멈추고 분명히 같은 정보를 지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읽어주세요.
생각해보면, 이진수가 0과 1로 표현된다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이진수로 표현되려면 디지털화
되어있어야한다는 것도 당연한 말입니다.
디지털이라는 말 자체가 불연속, 이진수화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0과 1, 이진수, 디지털은 모두 같은 정보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모두 갖고 가는게 아니라
하나의 대표적인 정보만 가져가면 됩니다.
저는 가장 직관적인 0과 1을 가지고 가겠습니다.
전기 신호의 펄스에 대응시킨다는 말 역시 너무 간단합니다.
전기 신호 = 펄스라고 준 문장이니 둘 중 하나만 가져가면 됩니다.
저는 그냥 전기 신호만 가져가겠습니다.
따라서 위 문장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0, 1 데이터를 전기 신호로 바꿔야 한다."
펄스는 클록이라는 단위로 표현되는 짧은 시간동안 나타나는 전기적 진동을 뜻한다.
위 문장도 빠르게 바꿔보겠습니다.
펄스=전기 신호였고, 클록이라는 단어가 길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같은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워나가야합니다.
클록의 설명을 보니 "짧은 시간동안 나타나는 전기적 진동"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진동이 애초에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을 수 있나요?
진동은 상식적으로 당연히 짧은 시간 동안만 나타나야 합니다.
진동이라는 단어 안에 "클록이라는 단위로 표현되는 짧은 시간동안 나타나는..."
이라는 내용이 같은 말로써 함축되어 있음을 당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문장을 아래와 같이 바꿨습니다.
"전기 신호(펄스)는 진동이다."
처음에 볼 때는 어렵고 복잡한 문장이었지만,
같은 정보를 담은 말을 지우고 나니
너무 쉬운 문장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정리한
"0, 1 데이터를 전기 신호로 바꿔야 한다."
"전기 신호(펄스)는 진동이다."
이 두 문장을 연결해봅시다.
쉬운 말로 바꿔놓고 두 문장을 비교해보니
비로소 전기 신호라는 단어를 징검다리 삼아 문장이 연결됩니다.
결국 이 문장이 하고자하는 말은
"데이터를 진동으로 바꾼다"
입니다.
앞으로 아마 0이 나올 때에는 "웅" 1이 나올 때에는 "웅웅"
이렇게 전개되는 글이 나오겠죠?
이것이 바로 글을 제대로 연결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꼭 명심합시다! 단순히 글에 표시한다고,
눈을 왔다갔다한다고 가만히 있던 글이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나 스스로가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말을 지우고,
처리해나갈 때 비로소 글은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연결하면서 읽는 것이고,
글쓴이와 대화하며 읽는 것이며,
예측하며 글을 읽는 것입니다.
위 세 가지는 사실 모두 다 같은 말입니다.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말을 지워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쓰다보니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다음에는 더 좋은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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