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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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에타에서 봣는데 인상적이라 퍼와 봄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라고 한다. 할아버지 집에 가면 문 앞에 참전용사의 집이라는 문패 같은 것도 걸려잇다. 참전용사라니 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어린 시절에 나는 할아버지가 무려 드레노어의 전쟁 군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전장에 뛰어나가서 도끼로 적의 머리를 무참히 도륙내는 그런 강인한 전사이자 살육머신 말이다
그러다 문득 언제인가 술을 마신 할아버지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잇엇다. 막상 할아버지로부터 들엇던 전쟁 이야기는 내가 생각한 것이랑 완전히 달랏다. 내가 생각하는 전쟁은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들이 용맹하게 뛰어나가서 따발총으로 적들을 몰살시키는 그런 것,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군들이 특수 작전을 수행 하듯이 어디론가 잠입해서 적을 마구 사살하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한 전쟁은 그렇지 않앗다. 남한 북한 군인 모두가 참호 안에서 무서워서 머리를 땅에 박은 채로 팔만 들어서 참호 밖으로 총구만 내놓은 채로 조준도 안하고 그냥 총만 쏘는 식으로 전쟁을 햇다고 한 다. 군대 가면 다들 사격 훈련 받긴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는 얘기를 들엇다
당시 모든 군인들이 다 이렇게 총을 쐈다고 한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전방에서 교전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후방으로 가기 위해서 간장 다섯 바가지를 원샷 때린 다음에 식중독 걸려서 의무대로 빠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 때 그 짓을 안 햇으면 너네들이 없엇을 수도 있엇지 하하핫' 하는 식의 얘기도 한마디 하셨다
그 때 당시에 나는 에이 그게 뭐임;; 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가 상상한 전쟁의 모습도 아니엇고 무섭고 도망치고 싶어서 일부러 간장 원샷을 햇던 할아버지가 약간 실망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생각해보니 이것이 전쟁이고 이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만일 내가 전쟁에 참여햇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도망 갈 방법도 없어서 징집돼서 전쟁 나갓지 나엿으면 끼에에엑 존나 시러!! 하면서 외국으로 도망을 갓을 것이다. 전장에 가서도 할아버지와 당시 군인들이 그랫듯이 나도 땅에 머리 쳐박고 팔만 들어서 따발총 쏠 것이다. 생각해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가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거 하나 뿐 아닌가?
그러니까 사실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마린들이 미친 놈들인 거다. 얘네들은 명령 한다고 스팀팩 먹고 뛰어 나가서 막 히드라리스크나 질럿이랑 싸우자나. 그게 제정신인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실제 군인들은 아마 참호 안에서 총 장전하면서 제발 뭐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걍 살게만 해줘 흑흑 이러고 잇엇겟지 싶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엿을 것이고 아마 내 친구들도 그 상황이 되면 똑같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니 '참전용사' 라는 말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용사가 아니다. 그냥 시발 어디서 알바 하다가 온 일반사람들, 그것도 나이도 존나 어린 탈급식한 사람들이엇을 뿐이다. 지금 태어낫으면 삼삼오오 피시방 가서 롤이나 하고 있었겠지. 갑자기 근데 나라에 전쟁이 터졌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들을 용사라고 부르더니 징집해서 전장으로 걍 보내버린 것이다. 참전용사들 중에 용사이고 싶었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용사는 존나 짱 세고 정의감도 뛰어나고 옆에서 도와주는 존예 엘프 마법사도 있고 모두에게 응원 받고 신임 받는다. 현실의 용사는? 걍 나약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개멸치에 정의감은 하나도 없고 옆에 존예는 커녕 홀홀단신에 사람들은 그들을 응원하기는 커녕 걍 전쟁터로 보내버리고 지들 살자고 죄다 도망가기 바빳다. 이게 현실의 용사다
그들이 전쟁터에서 무슨 공을 세웠을까? 그냥 총알받이 하고 사람들 시간이나 끌다가 무참히 살해됐겟지. 우리가 아는 용사님은 마왕 죽이고 사람들에게 영웅 되고 모두의 귀감이 되어 후대의 용사들에게 영감을 줬겠지만 현실의 용사는 마왕을 토벌하긴 커녕 걍 시간 벌이나 하다가 폭탄에 맞고 겟엠프드 폭탄 맞아 죽을 때처럼 시체도 없이 가루가 되거나 붙잡혀서 죽기 싫다고 엉엉 울면서 살해됐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귀찮은 짐 덩어리가 되고 후대의 사람들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타산지석이 되어간다
문득 용사라는 말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용사엿지만 흔히 말하는 용사가 아니엇다. 그냥 살기 위해서 간장 드링킹 하고 뺑끼나 부리는, 전투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은 폐급 용사엿을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용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엇다. 그런데 모든 놈들이 죄다 입을 모아 용사님이라고 하면서 갑자기 용사가 되라니 할아버지는 걍 자기가 해야 할 거 같은 행동을 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용사님들이 그렇게 하지 못햇다. 용사님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존나 무섭지만 여기서 내빼거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기를 용사라고 불럿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니까 그냥 참호에 머리 박고 총이나 쏘다가 죽거나 다쳐서 장애인이 됐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용사님이 아닌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용사라면서 치켜세워주고 총 쥐어주면서 용사로서 행동하라고 하는 것은 존경 존중이 아닌 걍 폭력이다. 근데 자꾸 참전용사 전쟁용사 하면서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따봉을 날리고 의장대가 와서 총 돌리고 별 생쑈를 다 하는데 그렇게 은근 슬쩍 우리가 이렇게까지 리스펙 하는데 너네가 목숨 안 바칠거야. 라고 온갖 방법을 다 해 외쳐대는 것 같아서 갑자기 매우 입맛이 떨어진다
할아버지는 100살이 넘엇다. 할아버지는 컴퓨터로 인터넷 바둑을 하다가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다가 한다. 한달에 한 번 참전용사에게 주는 지원금 20만원이 입금 된다고 한다. 종종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할아버지를 본다.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아마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나에게는 너무 옛날의 사람이다. 가끔 하는 대화에서도 할아버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고 나도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나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이 전쟁을, 거기에 참여햇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너무 옛날의 일이고 우리가 그것을 직접 겪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잘 모르겟지만 강 살아잇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용사가 되고 싶지 않앗던 용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숙연하는 것 뿐이겠지. 그들을 거창하게 용사님이라고 부르며 쑈하는 것 보다 그들을 그저 나약한 하나의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 집 대문에 붙어있는 참전용사의 집이라는 문패를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언제나 그랫듯이 아무런 생각도 없는채로 문을 닫고 집으로 간다. 언제나 늘 그래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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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웬리, 타나카 요시키 작. 윤덕주 역. 《은하영웅전설》. (서울문화사, 2000)

명언이군요무슨생각으로 썼는지는 알겠는데
맘에는 안드네..
어떤 점이요
일단 중간에 추측으로만 글을 쓴 점도 그렇고
저는 약간의 신격화로 대중의 애국심을 고취시켜서 선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였으면 하는데
저렇게 상대적으로 초라한? 사실같은걸 보여주면
별거아니야~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아서요
그런 신격화가 맘에 안든다하는 글이라 애초에
그리고 어케 별게 아니게 느껴요 폭탄맞고 가루가 돼야한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