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문학 <<새벽, 대칭을 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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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훈은 새벽 잿빛이 아직 벽을 물들이기 전, 어둠 속에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시계 초침이 규칙적으로 귀를 긁고 있고, 책상 위 문제지는 희미한 윤곽만 남긴 채 불청객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섯 줄짜리 조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는 숫자를 읽지 않는다. 시야 중심에서 ‘주어진 점’, ‘기울기’, ‘단조 증가’ 같은 단어만 끊어낸 뒤 종이를 뒤로 한 번 젖혀 본다. 겉모습은 얌전해도 분명 숨겨둔 발톱이 있을 거야.
잠깐 눈을 감고 기억 창고를 뒤적인다. 고등학교 시절 올림피아드 기출, 대학 초년 논문 예제—유사 문제가 메타데이터처럼 튀어오르고, 불필요한 가지들은 머릿속 빨간 펜으로 지워진다. 좌표 기하냐, 미분 방정식이냐? 갈림길에서 잠시 멈추다 그는 세 갈래 시나리오를 동시에 돌린다.
A안, 교과서 정석. 계산량이 순식간에 근사되고 “시간 낭비” 딱지가 붙는다. B안, 역함수 미분 공식. 핵심 열쇠 같지만 경계 조건 불일치가 붉게 점멸한다. 계획은 즉시 휴지통행. 마지막 C안, 대칭성. 중심을 축으로 접으면 복잡도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뇌 한가운데서 ‘딩’ 하는 전류가 흐른다.
그는 연습장에 한 줄도 쓰지 않은 채, 홀함수 조건을 머릿속에 입혀 본다. f(−x) = −f(x). 대칭 구간에서 적분이 사라져 버리는 그림이 선명해지자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뛴다. 하지만 곧 스스로를 붙잡는다. 직관은 증명 없이 빈 껍데기일 뿐.
펜을 잡고 종이에 첫 식을 적는다. 논리 기호와 미분, 극한, 대칭성을 순서대로 배치하고, 특수값과 경계값을 거꾸로 대입해 구멍을 찾는다. 자그마한 논리 결절이 보이면 곧장 세 번째 시나리오로 회귀해 구조를 재검토한다. 몇 번의 왕복 끝에 모든 퍼즐 조각이 빈틈없이 맞물린다.
마지막 부등식이 깔끔히 정리되자 그는 펜을 내려놓는다. 새벽빛이 책상 모서리를 비추고, 긴 숨이 새어 나온다. 끝났다. 그리고… 조금 더 성장했다. 손목 깊숙이 피로가 박혔지만, 머릿속엔 따뜻한 전류가 맴돈다. 문제지는 더 이상 적수가 아니라, 한 편의 시처럼 조용히 누워 있다.
병훈은 등을 기대고 천장을 잠시 바라본다. 책 더미 사이에서 다음 퍼즐이 자신을 부르는 기척이 느껴진다. 좋아, 다음 무대는 어디쯤일까. 다시 숨을 들이쉬자 사고의 톱니가 ‘찰칵’ 하고 맞물리고, 뇌는 곧바로 가속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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