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구 [1261228] · MS 2023 · 쪽지

2025-05-30 1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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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기력하고 지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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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고3 수험생이다. 많은 분들이 고3이 공부 안하고 왜 오르비질인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 겨울방학 시작 때와는 달라진 나의 마음가짐과 의지, 그리고 정신을 재무장하기 위해, 또 지친, 무기력한 내 마음에 활력을 넣기 위해 잠깐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글을 써본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니 관심 없는 분들은 정중히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란다.



나는 공부를 잘 못한다.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전국단위자사고 합격이라는 목표를 갖고 시험기간 때마다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중3 2학기 마지막 중간고사에서 대차게 말아먹고 전사고 지원 자체를 포기 할 뻔 했으나, 그간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학교가 있었기에 나는 기말고사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에 단 1점차이로 겨우 A 사수에 성공했다. 어떤 분들에겐 뻔하디 뻔한 고등학교 입시 과정의 지루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정말 드라마 같은 고등학교 입시였다.



여튼, 그렇게 난 내가 꿈에 그리던 고등학교에 합격해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의 내가 그렇게나 가고 싶어했던 그 학교에 지금 재학중인데 요즘은 아무 감흥 조차 없다. 아니, 난 내 스스로에게 문을 닫고 그냥 마지못해 사는 죄수처럼 하루하루를 이 학교에서 보내는 중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마지못해 하고, 또 그냥 하기 싫은 날엔 자습시간 내내 유튜브만 보다가 그날 자기 전, 침대에 누운 상태로 또 현타가 엄청 심하게 오고 죄책감에 휩싸여 눈물 한 두 방울 흘리는 내 바보같은 삶.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생각해보니, 난 항상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주변의 유혹에 눈을 돌렸던 것 같다. 난 공부를 잘 못한다. 내 내신등급은 5점대 후반, 최근 본 5월 모의고사 등급은 322246이다. 우리학교에서 내신 3등급 이내는 메디컬 + 카이스트 + 서울대, 4등급 이내는 연고대 + 포스텍, 5등급 초반까지는 서성한 + 유니스트,디지스트,지스트 에 합격한다. 근데 구제 불능인 내 내신점수인 5점대 후반 부터는 대학의 '대'조차 꺼낼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 놓여있는 처지이다. 이러한 현실을 난 아직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엔 아직도 서울대 로고가 선명히 빛나고 있는데, 막상 나는 그에 대응되는 노력과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 이미 지금 뭘 해봤자 그 곳은 가지도 못할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인들은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착각을 한다. 아니, 철없던 과거의 내가 학교 뽕에 차올라 가스라이팅을 엄청 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부터 주변 친척, 지인들까지도 전부 나는 '예비 서울대생'이라는 각인이 되어있다. 현실은 재수각인데..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외할머니께서 나에게 '할머니 친구 손자 이번에 서울대학교 갔다드라. XX(내이름)이도 가야지!' 라고 하셨던 그 순간을. 애써 웃어보며, '네' 라고 답했던 그 때 그 상황을. 엄마 아빠한테도 미안하다. 비싼 학비에다 학원, 인강비까지. 1년에 수천만원을 나에게 쓰는 우리 가족에게 보답하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고, 압박감에 나 자신이 견디질 못하겠다.



공부를 못하게 된 원인이 단지 내가 노력을 많이 안했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당연히 노력은 꾸준히 해왔다. 매 시험기간마다 새벽 3시, 4시에 자고, 이해도 안되는 어려운 대학 심화과정들을 수강하면서 나름 내 생기부를 채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나마 우리 학교에서 중~중하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주변에 머리 좋은 애들을 볼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내 속이 가득찼다. 영재고, 과학고 떨이들이 우리학교에 대부분 모이게 되는데 그런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수업을 안 듣고 맨날 패드로 딴짓해도 교과우수상을 척척 받아낸다. 난 내 머리가 나빴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학교 오기 전까지는.



수시도 수시지만, 정시와 재수를 바라보고 당연히 수능준비를 빡세게 해야된다. 그런데 정말 우리학교에선 정시 준비가 많이 힘든 것 같다. 3학년 때도 정시대비 과목들이 다 열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기숙사 생활 때문에 내가 듣고 싶은 시대인재 단과 수업도 마음대로 다 듣지 못한다. 이런 저런 핑계와 환경이 안 맞아서 매번 모의고사 칠 때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조졌을까?'라는 생각부터 떠오른다. 나도 자신있게 주변 친구들하고 시험 난이도를 평가하는 위치에 오르고 싶다. 그런데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그치만 인생이 다 그런거 아니겠나. 안 풀릴 때도 있고 잘 풀릴 때도 있고. 무기력할때 꿋꿋이 공부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나는 다시 한 번 꿈과 목표를 갖고 이 어려움에 정면돌파를 해 볼 생각이다. 



나와 비슷한 사정 혹은 말 못할 사연을 가진 수험생들이 수두룩할 것이라 생각한다. 난 그 모든 분들께 힘내라고 전하고 싶다. 뭐가 되었든 시간은 결국 흘러 입시판을 떠나게 될 것이다. 자유를 찾게 될 그날까지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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