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오노스 [904605]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5-05-23 16: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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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진짜 달라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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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이오노스입니다.

이 글 내용은

고인의 가족분들의

상황 때문에

수정됐습니다.

제 친척의 명복을 빌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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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외고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제 공부를 어머니가 케어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지원해서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름 성실하게 다녔지만,

점차 공부를 내려놓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미지 메이킹을 잘했던 게,

매년 봉사상 또는 선행상을 받으며

졸업할 때 교감선생님께서

모범생이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놀면서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점차 기력을 잃고 맨날 배탈나고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겪었습니다.

원래 그렇게 해주지 않지만,

추운 환경에 있으면 몸이 아파져서

저 혼자 자습실이 아닌

작은 교실을 하나 통채로 쓸 수 있도록

허락까지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했으니

수능을 잘 봤을 리가 없죠.

결국 재수를 했습니다.

재수를 할 때 인강이란 걸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습니다.

인강과 수험생 커뮤니티에 중독되어

공부하는 시간보다

공부법, 인강 후기 등을 찾는 시간이

많은 날들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에게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갈 거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이렇게 공부를 하니 수능을 잘 볼 리가 없죠.

운이 좋아서 집 근처인

인천의 모 명문대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대학은 커녕

이름 못 들어본 대학에 갈 성적이라고

판단하셨는지, 원서를 쓰기 전에

저를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은

"나는 널 믿었는데,

너가 날 배신했다." 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비판을 들으며

반박할 수 없던 저는,

제 스스로를 저주하고

밥을 굶기를 자주 하며

어떻게 하면 덜 고통받고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매일 그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걸어다녔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동네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는데,

약을 먹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됐기 때문에

뇌피셜로 제가 우울증 약을

먹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도 안 갔습니다.


대학 원서를 쓰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연세대, 한양대, 중앙대 등

제가 가고 싶었던 대학을 다니는,

또는 합격한

친구들이 연락을 많이 해줬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겨우 여기밖에 못 간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울한 날들이 지속됐고

어느 날 읽은 책에서

우울한 얘기를 하는 친구는

멀리하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에

SNS를 다 탈퇴하고 잠수 탔습니다.

교회도 안 나갔어요.


20학번으로 들어가서

OT, MT 등 어떤 행사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가 터졌거든요.

온라인 수업을 듣는데,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팠습니다.

전공 수업은 

영문학 책의 한글번역본을

읽어주시는 걸로 진행됐는데,

유튜브가 더 유익한 것 같았고

이래서 취직이 잘 안되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12년을 같이 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외할아버지가 생전에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외할머니의 인생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어머니와 같이 있기 싫어서

할아버지의 빈 자리를 대체할 겸

학사경고를 받고 휴학해서

부산에 내려가 할머니와 같이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할머니에게 화를

냈습니다.

할머니께서

고생하신 얘기들을 하시면서

당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비판하기는 커녕 감쌌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도 힘든 걸 이겨냈는데

저도 힘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 다 나쁜 인간들이에요.

그리고 저는 힘이 없으니까

힘내라고 하시지 마세요!!!"

하며 언성을 높였고,

할머니는 상처 받고 

방에 들어가 우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기에

우울증 약을 꾸준히 먹으며

회복에 힘을 썼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수능을 치려고

대성패스를 끊고

수능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3시간을 한 것도

많이 공부한 날일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재수 때보다

도파민에 중독되어

맨날 수학 문제가 안 풀리면

수험생 커뮤니티 눈팅이나 하고

ㅈㅇ를 하지 않으면 잠이 안와서

매일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했습니다.


그러다가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인천에 돌아갔습니다.

인천에 돌아오니

이제 고1인 친동생이

어머니와 학업 문제로

매일 갈등을 빚어내는 걸 봤습니다.

동생은 수학 내신이 바닥을 쳤고,

제가 판단했을 때,

이렇게 내신을 망치면

저처럼 대입을 망치고

결국 저처럼 우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동생을 설득해서

수시에서 정시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제가 아는 공부법과 인강 커리로

동생을 코칭하려 했지만,

동생은 매번 새롭게 저를 화나게 만들었고

결국 저는 동생을 코칭했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했습니다.


동생을 코칭하지 않는 시간에

오르비에 코칭받으실 분을 모집했고,

지금 코칭받는 멘티분을 알게 됐습니다.

그분은 저보다 더 심하게

마음이 상한 분이라서

수능까지 제대로 완주를 해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도 수능 공부한다고 말하면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고,

20수능을 마지막으로

수능 응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인생의 목표는

저처럼 대입을 실패해서

우울한 시간을 겪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수험생분들을 하나라도 줄이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그건 목표가 아니라

그럴싸한 변명이었습니다.

사회보다 익숙한 수험판에

머무를 핑계였죠.


결국 동생 코칭도 실패하고,

지금 멘티분도 끝맺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25수능을 응시했지만,

변명도 못할 정도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수능판에 더 이상

있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알바를 하려고 하다가

지금 멘티분과 교류하면서

다시 한 번, 어쩌면

마지막 코칭이 될지 모르는 선택을

했습니다.


작년 말부터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일들을 겪어가며

정신건강이 많이 회복됐습니다.

인지기능이 회복됐는지

작년에는 어려웠던 뉴런이

올해는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코칭을 하면서 내일이 기다려지고

아침 늦게까지 자던 제가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 국어를 가르치려 했지만,

제가 소위 말하는 '재능러'인 점에서

과연 얼마나 중위권, 하위권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이 됐습니다.


최근에 수학에 재미를 붙여서

한때 수포자였던 제가

수능에서 만점, 혹은 1등급을 받는다면

그 경험을 살려 가르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제가 올해

수능 수학 1등급을 받는다면

뭘 하든지 응원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저는 최선을 다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수특 평가원화 작업도

진작에 끝낼 수 있었을텐데,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아직 완성을 못했죠.

수학 문제가 안 풀리면

넘어가면 되는데

자꾸 불안한 마음에

쓸데없이 안 풀리는 것에

시간을 많이 쓰며

순공시간이 적었습니다.


서론이 길었죠?

짧게 말씀드린다고 했는데

제 TMI가 길어졌네요.

학업 문제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의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오늘 어떤 일로

제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에게

그리고 여러분들께 다짐합니다.

앞으로는 다른 인생을 살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만나게 될

학생분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자료를 제작하겠습니다.


앞으로 매일

스스로에게 물어볼 겁니다.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나.'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서

나중에 누구의 인생에 기여할 수 있는가'

를 말이죠.


오늘부터

오르비에 매일 공부시간과

한 것들을 인증하겠습니다.

(잡담 태드 달구요)


제가 나태해지면 꼭 댓글이 아니어도

좋으니 저를 비판해주세요.

귀가 간지러울 때마다

비판을 받고 있구나 생각하겠습니다.


앞으로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공부 문제로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전 사람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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